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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청첩장에 신혼살림 목록, 축의금 대신 선물 펀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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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달라지는 경조사비

경조사 디지털 시대

경조사 디지털 시대

“까똑. 축 결혼.”

경조사비 디지털·핀테크 시대 #선물 리스트, 판매점 등 지정하면 #친구들이 제품 주문하는 방식 #카톡으로 경조사비 보내기 급증 #38세 상주는 “조의금 톡 송금 당황”

직장인 이주현(32·여·서울 강서구)씨는 두 달 전 무심코 카카오톡 메시지를 열었다가 살짝 당황했다. 이씨에게 ‘축 결혼’이라는 노란색 봉투가 도착했다. 결혼 봉투를 터치하자 이번엔 동전 이미지가 튀어나오면서 ‘10만원 받기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 돈으로 송금, 온·오프라인 결제가 가능하다는 안내가 따랐다.

“결혼을 앞두고 카카오톡 단체방에 청첩장을 돌렸는데, 친구가 ‘해외 출장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다’는 글과 함께 축의금을 보낸 거였어요. 메신저를 자주 사용하기는 하지만 경조사비를 받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날에만 4명이 카톡 축의금을 보냈어요.”

이씨는 “낯설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직 송금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꽤 편리한 방법인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대학 4학년인 최광래(26·경기도 고양시)씨는 얼마 전 가까운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취직 필기시험과 겹쳤기 때문이다. 최씨는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전화를 하고 나서 메신저로 축의금 7만원을 송금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핀테크(fintech, 금융과 기술이 결합한 서비스)를 활용한 경조사비 주고받기가 확산하고 있다. 청첩장이나 부조금 봉투 전달의 번거로움을 줄여 편의성을 높인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대면 접촉을 줄여 인간관계를 메마르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일보가 지난 15~17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74명의 시민을 심층 인터뷰했더니 ‘핀테크 발달로 경조사 문화에 변화가 생겼냐’는 질문에 22명(29.7%)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통장 돈 없어도 신용카드로 경조사비=서울 중구 장세리(28)씨는 “핀테크 기술 발전으로 축의금이나 부조금 전달이 간편해졌다”며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 축의금을 전달해도 은행 계좌번호를 물어야 했는데 이런 불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런 편의성 덕분에 최근 2~3년 새 토스·카카오페이 등 핀테크 업체가 주도하는 간편송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결혼식이 몰려 있는 봄·가을에 송금 서비스가 급증한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지난해 5월 송금 서비스 이용률이 전달보다 16% 증가했다. 송수지 카카오페이 매니저는 “혼인율이 가장 높은 5월에 서비스 이용이 급증한 것은 축의금 송금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17년 2월 축의금·부의금을 표시하는 ‘송금 봉투’ 기능을 새로 만들었다. 한 발 더 나간 금융상품도 등장한다. 신한카드는 이르면 9월 통장에 잔액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경조사비를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5060 “핀테크가 경조사비 문화 바꿔”=5060세대도 빠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심층인터뷰에서 50, 60대 33명에게 ‘핀테크 발달로 경조사 문화에 변화가 생겼냐’고 물었더니 7명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서울 노원구 김모(68)씨는 “예전에 우편으로 보낼 때 청첩장이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게 번거로웠는데 이제는 모바일 청첩장을 주고받아 편하다”고 말했다.

모바일 청첩장이 부담이 덜하다는 사람도 있다. 경기도 안양시 김모(62)씨도 “카카오페이로 딸 결혼식 축의금을 받았을 때 거부감이 들거나 성의 없어 보이지 않았다”며 “얼굴 보면서 청첩장을 받으면 마치 청구서처럼 느껴지고 친하지 않은 사람도 꼭 가야 할 것 같은 부담이 드는데, 모바일 청첩장은 이런 압박이 덜하다”고 말했다.

때로는 상주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직장인 김영수(38·경기도 성남시)씨는 지난해 말 부친상을 치를 때 카카오톡으로 부조금을 받고 나서 당황했다고 한다. 김씨는 “선물도 아닌데 톡으로 받는 게 어색했다. 부조금을 받긴 했지만 ‘잘 받았다’고 답장을 하기도 곤란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한빛나(28)씨는 “경조사 부조금은 직접 전달하는 게 성의 있어 보인다”며 “기술 발전이 빨라져도 경조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최광래씨도 “아버지한테 ‘축의금을 카톡으로 보내는 게 예의가 아니다’는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핀테크는 이미 경조사비 전달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며 “다만 경조사 소식을 공유하고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방식이 간편해졌을 뿐 경조사 자체를 간소하게 한다거나 인맥 관리 방식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조사 문화가 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경조사 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막 시작됐다. 전직 은행원 안경민(32)씨와 전 대기업 직원 신동우(32)씨는 지난해 5월 결혼식 하객 선물 펀딩 스타트업 ‘체리미’를 차렸다. 미국·유럽 등의 ‘웨딩 레지스트리’를 본뜬 것인데, 신랑·신부가 모바일 청첩장에 선물 리스트와 판매점(백화점 등)을 지정하면 하객이 축의금 대신 선물을 주문하는 방식이다. 안씨와 신씨는 “젊은 층은 아프리카TV·유튜브 등 동영상에 기반을 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펀딩·후원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아직은 낯설지만 한국의 결혼 문화를 현금에서 선물로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재·박형수·김태호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356)에 접속하면 본인 경조사비를 타인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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