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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청첩장 여니 신혼살림 리스트···"축의금 대신 펀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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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 송금 서비스 이미지. [사진 카카오페이]

카카오페이 송금 서비스 이미지. [사진 카카오페이]

“까똑. 축 결혼.”

달라지는 경조사비 문화<2> #결혼식 많은 5월 간편송금 두 자릿수 성장 #“계좌 몰라도 되고, 확인도 간단해 이용 급증” #업체는 축 결혼·부의 적은 ‘송금봉투’ 만들어 #잔액 없어도 경조사비 보내는 신용카드 #원하는 결혼 선물 펀딩해 주는 회사도 등장

직장인 이주현(32·여·서울 강서구)씨는 두 달 전 무심코 카카오톡 메시지를 열었다가 살짝 당황했다. 이씨에게 ‘축 결혼’이라는 노란색 봉투가 도착했다. 결혼 봉투를 터치하자 이번엔 동전 이미지가 튀어나오면서 ‘10만원 받기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 돈으로 송금도, 온·오프라인 결제도 가능하다는 안내도 함께였다.

“결혼을 앞두고 카카오톡 단체방에 청첩장을 돌렸는데, 친구 중 한 명이 ‘해외 출장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다’는 글과 함께 축의금을 보낸 거였어요. 메신저를 자주 사용하기는 하지만 경조사비를 받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그날에만 ‘메신저 축의금’을 4번 받았습니다.”

이씨는 “낯설지만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직 송금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꽤 편리한 방법인 건 확실하다”며 말했다.

대학교 4학년인 최광래(26)씨는 얼마 전 가까운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구에서 결혼식이 열렸는데 취직 필기시험과 겹쳤기 때문이다. 대신 최씨는 결혼하는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통화하고 나서 메신저로 축의금 7만원을 송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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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떠나 핀테크를 활용한 경조사비 송금은 이제 일상이 됐다. 실제로 핀테크가 경조사비 문화를 바꿔놓고 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15~17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74명의 시민을 심층 인터뷰했더니 ‘핀테크 발달로 경조사 문화에 변화가 생겼냐’라는 질문에 22명(29.7%)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특히 20대 이하와 60대 이상에서 각각 36.8%, 36.4%가 “그렇다”고 했다.

서울 중구에 사는 장세리(28)씨는 “핀테크 기술 발전으로 축의금이나 부조금 전달이 간편해졌다”며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 축의금을 전달해도 은행 계좌번호를 물어야 했는데 메신저로 송금하면서 이런 불편함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5060도 핀테크 발달에 영향을 받았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모(68)씨는 “예전에는 우편으로 청첩장을 주고받을 때는 청첩장이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등 번거로웠다”며 “이제는 모바일 청첩장을 주고받아 돈 부치고 받는 게 편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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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새 토스나 카카오페이 등 핀테크 업체가 주도하는 간편송금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결혼식이 잦은 봄·가을에 송금 서비스가 급증하는 추세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지난해 5월 전월 대비 송금 서비스 이용률이 16% 증가했다.

송수지 카카오페이 매니저는 “경조사비 송금만 따로 분석하지는 않지만 혼인율이 가장 높은 5월에 서비스 이용이 급증한 것은 축의금 송금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조사비 송금이 급증하면서 이 회사는 축의금·부의금을 표시하는 ‘송금 봉투’ 기능을 새로 만들었다.

조만간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금융상품도 등장한다. 신한카드는 이르면 올 9월 통장 잔액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경조사비를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한다. 신한카드 측은 “개인의 신용한도를 활용한 혁신 금융으로, 서비스 시작 후 일정 기간은 수수료 없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핀테크와 경조사비의 만남에 대해 일부에선 거부감도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사는 한빛나(28)씨는 “핀테크 기술 발전으로 송금이 쉬워져도 경조사 부조금은 직접 전달하는 게 성의 있어 보인다”며 “기술 발전이 빨라져도 경조사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광래씨도 “(메신저로 축의금을 보내고 나서) 아버지에게 축의금을 메신저로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냐는 핀잔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직은 다소 어색하고 성의가 부족하는 얘기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핀테크는 이미 경조사비 전달의 한 축으로 등장했다”며 “다만 경조사 소식을 공유하고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방식이 간편해졌을 뿐 경조사 자체를 간소하게 한다거나 인맥 관리 방식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조사 문화가 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결혼식 선물 플랫폼 회사인 &#39;체리미&#39;의 서비스 화면 예시. [사진 체리미 화면 캡처]

결혼식 선물 플랫폼 회사인 &#39;체리미&#39;의 서비스 화면 예시. [사진 체리미 화면 캡처]

경조사 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막 시작됐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안경민(32)씨는 은행을 그만두고 지난해 5월 결혼식 하객들에게 선물 펀딩을 중개하는 ‘체리미’라는 스타트업을 차렸다. 신동우(32)씨도 4년 간 다니던 대기업을 나와 창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미국·유럽 등의 ‘웨딩 레지스트리’를 한국으로 옮겨왔다. 웨딩 레지스트리(wedding registry)는 신랑·신부가 원하는 선물 리스트를 말하는데, 초청장에 희망하는 리스트와 판매점(백화점 등)을 지정하면 하객들이 해당 판매점에서 선착순으로 선물을 주문하는 방식이다.

서비스 운영은 간단하다. 모바일 청첩장에 신랑·신부가 원하는 신혼 살림 제품을 올려두면 초대 받은 하객들이 축의금 대신 선물 아이템에 펀딩을 한다. 하객들이 펀딩 모금액을 채우면 신랑·신부는 그 선물을 받는다. 창업 후 10개월 가까이 시범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축의금 대신 원하는 제품을 바로 살 수 있어 좋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었지만, 원하는 물건을 노골적으로 알리는 게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 달 결혼식 선물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안씨와 신씨는 “젊은 층은 아프리카TV·유튜브 등 동영상에 기반을 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펀딩, 후원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아직은 낯설지만 한국의 결혼 문화를 현금에서 선물로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재·박형수·김태호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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