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은 실력, 모함"…숙명여고 쌍둥이는 왜 법정서 당당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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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고 쌍둥이 동생의 1학년 1학기 ‘운동과 건강생활’ 과목 시험지에 적힌 '깨알 답안'. [사진 수서경찰서]

숙명여고 쌍둥이 동생의 1학년 1학기 ‘운동과 건강생활’ 과목 시험지에 적힌 '깨알 답안'. [사진 수서경찰서]

검찰 : 증인, 시험지에 저렇게 정답을 적어놓은 이유는 무엇이지요?

숙명여고 문제 유출 재판 4개월

A양(숙명여고 쌍둥이 동생) : 문제를 다 푼 후 시간이 남아 정답 개수의 분포를 살펴보려고 적었습니다.
검찰: 시간도 많은데 왜 저렇게 잘 보이지도 않게 기재한 거지요?
A양 : 그렇게 (글씨가) 작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검찰: 이게 작아 보이지 않는다고요?

지난 23일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의 피의자인 현모 교무부장의 공판에 쌍둥이 자매가 증인으로 나왔다. 이날 검찰 측은 증인신문 내내 진땀을 흘려야 했다.

"대답 좀!" "검사님이 질문을…" 신문 도중 얼굴 붉힌 검찰과 쌍둥이

양측은 문제 유출 의혹의 결정적 증거로 꼽히는 ‘깨알 답안’이 적힌 시험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사전 유출 정답을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미리 적어놓은 게 아닌지 추궁했다. 하지만 동생 A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며 부인했다.

변호인 반대 신문 차례가 되자 A양의 태도는 사뭇 달라졌다. 변호인의 질문에 “네” 또는 “그렇습니다”로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변호인: 만일 유출된 정답을 적어놓은 거면, 시험이 끝나고 지웠겠지 기념품처럼 집에 보관하고 있을 리가 없지요?
A양 : 네.
변호인: 증인은 원래 글씨를 작게 쓰지요?A양 : 네.

신문이 진행될수록 검찰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질문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A양은 “질문하시는 취지를 잘 모르겠다” “검사님이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알겠다”는 식으로 반문해 검사들을 당황케 했다. 급기야 검찰 측도 “질문은 저희가 하니까 증인은 묻는 말에 답을 해달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날 재판은 양측이 서로 팽팽하게 기싸움을 벌이다 끝났다.

4개월째 진실공방 한창인 숙명여고 재판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은 4개월 째로 접어들었다. [연합뉴스]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은 4개월 째로 접어들었다. [연합뉴스]

숙명여고 재판이 4개월 째로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법정에선 진실 공방이 한창이다. 이날 쌍둥이 언니는 “나는 실력으로 성적을 올린 건데 학생과 학부모들이 시기 어린 모함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까지 내놨다. 동생 A양 역시 검찰 조사 당시 “모 사이트 회원들과 학부모 등 특정 세력이 자신들을 몰아가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했다.

앞서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넘기며 문제 유출의 증거들을 다수 제시했다. 깨알 답안이 적힌 시험지와 암기장, 부실한 풀이과정, 휴대폰에서 발견된 영어 서술형 정답, 갑자기 1등으로 오른 내신 성적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아가 ‘음모론’까지 제기하는 현씨와 쌍둥이의 태도는 이례적이다. 탁경국 변호사(법무법인 공존)는 “통상 시험 문제 유출 사건에선 피의자들이 초반에 몇 번 혐의를 부인하다가도 결정적 증거를 들이대면 자백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그래야 어린 학생만이라도 기소를 피하거나 최소한 감형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쌍둥이 자신감 배경은 '정황 증거'…흉기 없는 살인현장인 셈"

현씨 측은 왜 다수의 증거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을까. 제시된 증거들이 모두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이기 때문이다. 앞서 경찰은 현씨가 어떻게 금고에서 답안지를 빼내 쌍둥이 자매에게 넘겼는지 구체적인 경로는 특정하지 못한 채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탁 변호사는 “살인 사건으로 비유하면 흉기는 없고 피의자들의 피 묻은 옷가지만 여러 개 발견된 셈”이라면서도 “정황증거를 모아봤을 때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유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숙명여고 재판은 정황증거의 공백을 얼마나 촘촘히 메우느냐가 관건이 됐다. 이를 위해 10여명의 증인들이 줄줄이 증언대에 올랐거나 오를 예정이다. 주로 쌍둥이를 가르쳤던 숙명여고 교사들과 학원 강사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현씨 측에 유리하게, 일부는 불리하게 진술하면서 법정에 긴장감을 더했다.

최종 진실은 하나…얼마나 촘촘한 퍼즐 맞추는지가 관건

지난달 12일 열린 첫 재판에선 숙명여고 물리 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검찰은 쌍둥이 중 한명이 푼 물리 과목 시험지를 보여주며 “정답 도출을 위한 풀이과정이 충분해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답을 구하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30년 가까이 교사 생활을 했지만 이 문제들은 암산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고 진술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푼 것 같지 않다는 의미였다. 이 순간 아버지 현씨의 표정은 굳어졌다.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의 증거들 [사진 수서경찰서]

숙명여고 문제유출 사건의 증거들 [사진 수서경찰서]

반면 숙명여고 현직 수학 교사는 “쌍둥이는 원래 공부를 잘하던 아이들이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성적이 튀어 오르는 학생을 여럿 봤다”며 현씨 측에 유리한 진술을 했다. 앞선 9일에는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쌍둥이 자매 등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양측이 서로 맞서는 가운데 숙명여고 재판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자매의 성적이 수직 상승한 비결은 정말 실력일까, 훔친 문제 때문일까. 이 중 어느 쪽 진실의 조각이 더 촘촘하게 맞춰지느냐에 따라 현씨와 쌍둥이의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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