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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 美FBI 쩔쩔맨 아이폰 암호 푼다···한국판 'NCIS' 들어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육군 과학수사센터에서 증거를 찾아내 채취하는 실습을 해봤다. 과학수사센터는 한국판 NCIS로 불린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육군 과학수사센터에서 증거를 찾아내 채취하는 실습을 해봤다. 과학수사센터는 한국판 NCIS로 불린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CCTV 영상에서 사람 수십 명과 차량이 빠르게 움직인다. 좁은 공간에 복잡하게 섞여 있지만, 여기에서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 영상 분석 수사관이 프로그램 설정을 변경하자 모니터에 단 한 사람만 남았다. 그가 바로 범인이다.

아이폰 암호 해독·분석 가능할까 #빅데이터 분석은 이미 실전 투입 #'드론'·'자율주행 자동차' 분석도 #"억울한 피의자·피해자 막아내자"

지난 10일 육군 중앙수사단 과학수사센터를 다녀왔다. 기자는 손에서 휴대폰을 놓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수사관이 기자 휴대폰으로 분석 시연을 보일까 두려웠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아이폰은 암호해독 못 한다던데'라는 기대도 생겨났다. 그러나 각종 첨단 장비를 보니 주눅이 들었다. 수사관은 암호를 해독하고 기록을 복원할 수 있을까.

영상을 복원하고 화질을 개선해 사고 원인을 규명한다. 추락 직전 항공기 계기판 정보를 확인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영상을 복원하고 화질을 개선해 사고 원인을 규명한다. 추락 직전 항공기 계기판 정보를 확인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낸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과학수사센터는 한국판 ‘NCIS’(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로 불린다. 미국 드라마 ‘미드’를 통해 널리 알려진 ‘NCIS’는 ‘해군범죄수사국’인데 미 해군과 해병대에 연루된 범죄를 수사한다.

과학수사 원조 격인 ‘CSI’가 일반적인 과학수사를 보여준다면 ‘NCIS’는 총기와 군대 및 테러 등 군 관련 범죄수사에 특화됐다. 한국에선 2007년 ‘완전범죄란 없다’는 구호를 걸고 창설된 육군 과학수사센터가 맡은 역할이다. ▶디지털포렌식 수사팀 ▶사이버 수사팀 ▶심리분석팀을 꾸려 정교화 및 지능화 범죄에 대응한다.

CCTV 영상에서 필요한 영상 객체를 압축하면 분석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CCTV 영상에서 필요한 영상 객체를 압축하면 분석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고개를 돌려보자. 어디에서나 CCTV가 눈에 들어온다.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찾는 증거 자료가 바로 CCTV 영상인 이유다. 그만큼 자료 분량도 많고 분석이 쉽지 않다. 과학수사센터 수사관은 “움직이는 객체를 압축해 분석할 능력을 갖췄다”며 “방향과 속도 및 크기 등 조건에 따라 선택된 대상만 골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연을 해봤다. 사람만 지정하자 화면에서 자동차는 사라졌다. 또한, ‘왼쪽으로 이동’ ‘붉은색’ ‘자동차’ 기준을 적용하니 왼쪽으로 이동하는 붉은색 자동차만 나타났다. 수사관은 “분석 시간은 기존보다 10%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며 효율성을 강조했다. 이젠 USB 저장장치 수십 개를 밤새워 볼 필요가 없다.

4차산업 시대 빅데이터 분석은 이미 실전에 배치돼 통화ㆍ금융 상호 관계를 규명할 수 있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4차산업 시대 빅데이터 분석은 이미 실전에 배치돼 통화ㆍ금융 상호 관계를 규명할 수 있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4차산업 혁명은 군 수사에도 영향을 준다. 빅데이터 분석은 이미 실제 수사에 적용됐다. 통신 및 금융자료를 분석해 범인을 찾아낸다.

빅데이터 분석은 한 눈에 들어왔다. 수사관은 용의자 여러 명이 통화했던 자료에서 핵심 용의자를 찾아내는 과정을 선보였다. 통신 분석 프로그램으로 상호관계도를 만들어 수백명 통화 기록 속에서 범죄 구조를 손쉽게 파악했다. 핵심 용의자는 통화량은 많지 않아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용의자 여러 명을 연결하며 범죄를 지휘했다.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삭제된 정보는 다시 살려낸다. 디지털 데이터를 분석 및 복원하고 암호 파일은 해독하기 때문이다. 과학수사센터는 휴대전화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매체 증거 압수ㆍ수색 및 분석에 나선다.

휴대폰에서 대화 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오고 있냐?” “지금 네거리 거의 옴” “별로 없다” “큰일이다” 용의자들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초 단위로 드러난다. 대화창을 여닫은 기록도 그대로 남아있다.

휴대폰을 복원하면 대화 내용뿐 아니라 휴대폰으로 촬영했거나 저장된 사진도 복원된다. 완벽한 삭제는 불가능해 범죄 증거는 반드시 드러난다. [영상 캡처=강대석 기자]

휴대폰을 복원하면 대화 내용뿐 아니라 휴대폰으로 촬영했거나 저장된 사진도 복원된다. 완벽한 삭제는 불가능해 범죄 증거는 반드시 드러난다. [영상 캡처=강대석 기자]

“완전한 삭제는 없다.” 박승환 디지털 포렌식 분석관은 힘주어 말했다. 그는 “몰래카메라 범죄가 급증한다”며 “누가 설치했는지, 무엇을 촬영했는지는 삭제하더라도 복구돼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휴대폰은 블랙박스,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수사 대상자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디를 방문했고, 누구를 만났는지 모두 찾아낼 수 있다. 특히 포털 등에서 검색했던 흔적도 모두 복구돼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그려낸다.

의혹과 억울함은 씻어낸다. 정지섭 과학수사센터장은 “극단적 선택 사건이 발생하면 장병 유족은 참관인석 모니터를 통해 분석과정을 지켜본다”며 “인터폰으로 수사관과 대화하며 궁금한 점을 해소한다”고 말했다. 참관인석은 분석실 바로 옆 방에 마련됐다. 왼쪽 모니터는 수사관이 살펴보는 모니터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고, 오른쪽 모니터는 수사관을 비춘다.

“혹시 아이폰 휴대폰도 암호 해독과 포렌식 가능한가?” 기자는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봤다. 미국에서 휴대폰 암호를 풀지 못한 연방수사국(FBI)과 고객 정보 보호를 이유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던 제조 회사 간 논쟁이 생각났다. 수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전 기종 복구할 수 있다”면서도 “암호 해독은 수사기밀이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드론이 비행했던 기록이 복원돼 어디로 이동했는지, 속도와 고도 등 모든 정보(왼쪽 모니터)와 드론에서 촬영한 영상(오른쪽 모니터)도 확인된다. [영상 캡처=강대석 기자]

드론이 비행했던 기록이 복원돼 어디로 이동했는지, 속도와 고도 등 모든 정보(왼쪽 모니터)와 드론에서 촬영한 영상(오른쪽 모니터)도 확인된다. [영상 캡처=강대석 기자]

옆에는 문서파일 암호를 해독하는 컴퓨터가 작동하고 있었다. 첨단 수사기법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임한희 사무관은 “보통 4~5시간 정도면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며 “어떤 형식이라도 시간이 좀 걸릴 뿐 암호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센터 수사관은 모두 공인 자격을 갖추고 있어 이들이 분석한 내용은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된다. 박 수사관은 “억울한 피해자와 피의자를 만들지 않아서 실체적 진실을 찾았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새로운 위협은 드론이다. 지난 1월 영국 히스로 공항에 드론이 출몰하면서 공항 운용이 마비됐다. 2015년 4월 일본에선 드론이 운반한 방사성 물질이 총리 거처인 수상관저 옥상에 떨어지기도 했다. 북한은 드론으로 한국 군사시설을 빈번하게 정찰하기도 한다.

드론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 임 사무관은 “드론이 비행하면서 어떤 행위를 했는지까지 분석할 수 있는데, 시간은 이틀 정도 소요된다”고 말했다. 분석 자료를 보니 비행 고도와 속도 및 경로가 그대로 드러났다. 드론에서 촬영한 영상도 복원해 볼 수 있다.

중앙수사단 드론은 평소 군 범죄 수사에 쓰인다. 테러 및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정찰 역할을 맡는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중앙수사단 드론은 평소 군 범죄 수사에 쓰인다. 테러 및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정찰 역할을 맡는다.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수사기관도 드론을 활용한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이나 폭발 현장에 투입한다. 테러 현장에선 은밀한 정찰 활동에 나선다. 윤성용 수사관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위험한 지역에서 드론을 활용해 증거물을 판단한다”며 “대테러 작전과 같은 인질범 진압 작전에서도 현장 지휘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자동차 분석도 눈앞이다. 과학수사센터는 자율주행 자동차 분석 기술 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예산 당국과 논의 중이다. 이처럼 첨단 기술 변화를 주시하면서 다양한 능력을 갖춰갈 계획이다.

족적 채취 실습을 해봤다. 겉으로 보기엔 간단하고 쉬워 보였지만 실제로 해보니 정확하게 증거를 채취하는게 어려웠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족적 채취 실습을 해봤다. 겉으로 보기엔 간단하고 쉬워 보였지만 실제로 해보니 정확하게 증거를 채취하는게 어려웠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군에 특화된 과학수사는 이미 다양하다. 추락한 군 항공기 계기판 영상을 분석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거나, 소음 속에 가려진 대화 내용도 선명한 음질로 개선한다. 최면 기법으로 기억을 끌어내 분실된 총기를 찾아내기도 하고, 총기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감식에도 나선다.

기자도 간단한 현장감식 교육을 받고 실습을 해봤다. 광원 장비로 혈흔ㆍ침ㆍ타액 등 다양한 증거물을 찾아내고 지문과 족적을 채취했다. 쉽지는 않았다. 손끝이 조금만 흔들려도 지문이 뭉개지거나 족적 증거가 훼손됐다. 마스크 사이로 흐르는 땀과 답답한 호흡도 집중력을 놓치게 했다.

사이버수사팀은 각종 사이버 범죄를 24시간 관제하면서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사이버수사팀은 각종 사이버 범죄를 24시간 관제하면서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 [영상 캡처=공성룡 기자]

과학수사센터는 24시간 깨어있다. 사이버수사팀은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각종 군 관련 사건ㆍ사고를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인터넷 중고 시장에서 군부대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이 거래되는 사건을 포착해 막아내기도 했다. 또한, 사이버테러와 각종 범죄를 막아낸다. 주한미군과 공조해 미군 영내에 설치된 불법 무선 공유 장치를 찾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한국판 NCIS에 헌병이란 이름은 낯설다. 국방부는 헌병으로 불리던 병과 명칭 변경을 군사경찰로 바꾸는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일제 강점기에 유래한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업무 성격을 명확히 하는 등 조직을 쇄신하는 기회로 만들 예정이다.

육군 중앙수사단 특임대 대테러 작전 훈련 긴급 출동.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육군 중앙수사단 특임대 대테러 작전 훈련 긴급 출동. [영상캡처=공성룡 기자]

앞으로 군사경찰은 군기 확립과 질서 유지, 법률이나 명령 시행, 범죄 예방과 수사, 교도소 운영, 교통 통제, 포로 관리, 군사시설과 정부 재산 보호 등 군사 분야에 특화된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러나 장애물이 남아있다. 국방부는 최근 법제처와 법령 개정에 필요한 협의를 끝낸 뒤 국회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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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군대 처벌 중 인권 침해 논란이 있던 영창제도 폐지 방안도 내놨지만,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장병 인권을 개선하는 제도 개선에는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계룡=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영상=강대석·공성룡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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