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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시대에 버스가 하루 한번…서러운 농촌의 '교통약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45)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시외버스터미널의 배차 시간표. 농촌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은 좋아지고 있으나, 농촌 내부에서의 교통 불편은 여전히 크다. [중앙포토]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시외버스터미널의 배차 시간표. 농촌과 서울을 오가는 교통은 좋아지고 있으나, 농촌 내부에서의 교통 불편은 여전히 크다. [중앙포토]

도시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농촌, 산촌으로 떠나는 인구가 벌써 50만 명을 넘어섰다. 귀농·귀촌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역시 도시보다 맑고 좋은 자연환경을 찾아 건강한 생활을 하겠다는 이유가 압도적이다.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요양을 한다면 백약보다 으뜸일 수 있다.

귀농·귀촌 인구 50만 명엔 탈도시화가 가속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특히 요즘은 탈서울이 눈에 띈다. 2017년 기준으로 전국의 귀농·귀어·귀촌 인구 중 서울 출신(7만3709명)이 14.2%를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도로와 철도가 개설돼 교통이 좋아지니 강원도로 이주하는 도시인이 늘고 있다. 이전까지는 산촌의 마을 공동체가 보여주는 삶이 좋아 도시생활을 접고 산촌을 선택하고 싶어도 교통이 불편해 꺼리는 사람이 꽤 있었다.

TV프로 ‘자연인’은 방송용일 뿐

6년 전 강원도 정선으로 귀산한 A 씨는 처음엔 교통이 열악해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정선으로 이어지는 도로 사정이 좋아져 서울에 있는 친지와 왕래하기가 쉬워졌다고 한다. 게다가 산촌은 의외로 공동체 의식이 강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서로 버팀목이 돼 해결해 주기도 한다. 지금은 마을 주민 중 귀농·귀촌 인구가 40%에 육박하는데도 아주 오랫동안 지내온 것처럼 오손도손 잘 지낸다고 한다.

그는 산촌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절대 혼자 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함께 사는 재미가 없으면 외로워서 몇 달을 못 버틸 것이란다. TV에 나오는 소위 ‘자연인’은 방송용일 뿐이란다. 그렇지만 농촌과 산촌은 아무래도 도시보다는 이동의 불편이 너무나 크다. 대도시같이 전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버스가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니 어디를 가려면 무조건 차를 몰아야 한다. 노인은 더욱 어려움이 많다. 농어촌 거주자는 모두 ‘교통약자’인 셈이다.

고령자 교통사고 건수가 늘어남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이 보인다. '2018 어르신 교통사고 ZERO 캠페인'에서 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고령 운전자 최홍운씨, 임호선 경찰청 차장이 면허증 자진 반납 손팻말을 들고 있다(위). 농촌에서는 '100원 택시'를 운행하고 있으나(아래), 여전히 농촌은 고령자 운전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연합뉴스, 중앙포토]

고령자 교통사고 건수가 늘어남에 따라 다양한 움직임이 보인다. '2018 어르신 교통사고 ZERO 캠페인'에서 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고령 운전자 최홍운씨, 임호선 경찰청 차장이 면허증 자진 반납 손팻말을 들고 있다(위). 농촌에서는 '100원 택시'를 운행하고 있으나(아래), 여전히 농촌은 고령자 운전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연합뉴스, 중앙포토]

서울에서 시골로 오가는 교통편은 좋아졌으나 시골 내에서 오가는 교통편은 예전보다 더 열악하다. 도시와 멀수록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농촌에서는 시내버스가 거의 다 사라졌다. 시내버스 노선을 시외버스가 대신해 주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버스가 몇 분, 몇초 후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시대에 농촌은 버스가 하루에 한 번 온다. 교통약자인 어르신은 농어촌 삶이 더 힘들다. 내색을 안 할 뿐이다.

요즈음 고령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10만 원을 주는 제도를 시행한다고 뉴스에 나왔다. 좋은 제도이기는 하나 농촌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노인이 운전하기 싫어도 할 수 없이 운전해야 하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농업이나 축산업을 하려면 자재나 사료를 차에 많이 싣고 다녀야 하니 직접 운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할머니, 고령 여성은 운전을 못 하거나 차가 없는 경우 이동에 심각한 불편이 생긴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100원 택시’를 운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 달에 이용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돼 있고 관내에 있는 택시만 해당해 조금 아쉽다. 시행 초기 어느 지자체는 회사 택시만 되고 개인택시는 안 된다고 해 불만이 있었단다.

시골에 사는 사람 중 차가 없거나 운전을 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환경지원금과 교통지원금을 합해 월 100만 원씩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과하다고? 그동안 도시는 수십조 원의 세금을 들여 지하철·버스 전용차로를 만들고 지원금도 줬으니 그만큼 농촌에도 투자해야 한다. 기름을 아끼고 미세먼지를 줄이며 환경을 보호하는 이들이 바로 교통약자가 아닌가.

교통약자 지하철 환승지도 모바일앱 샘플지도. 서울디자인재단-눈디자인은 장애인, 유·아동, 임산부, 고령자 등 교통약자가 편하게 지하철을 환승할 수 있도록 지도를 제작했다. 이와 같이 교통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더 커져야 한다. [사진 무의]

교통약자 지하철 환승지도 모바일앱 샘플지도. 서울디자인재단-눈디자인은 장애인, 유·아동, 임산부, 고령자 등 교통약자가 편하게 지하철을 환승할 수 있도록 지도를 제작했다. 이와 같이 교통약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더 커져야 한다. [사진 무의]

시내버스는 거의 다 사라져

지난 토요일인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동에 제한이 많은 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은 건강 때문에 귀농·귀촌하는 경우가 꽤 있다. 노인은 병원을 정기적으로 가야 하는데 너무 멀어 불편을 느낀다. 그래서 귀농·귀촌할 때는 의료시설과 응급시설의 위치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귀농·귀촌을 일종의 사회적 이민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해야겠지만 도시인을 받아들이는 농어촌도 달라져야 한다. 과연 농어촌은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가.

몇 년 전 희한한 경험을 했다. 어느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을 켜 놓았는데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장애인 수용시설이라고 하면 주민들이 싫어해 간판을 달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서울시에서 장애인과 가족들을 위한 휴양소를 강원도 양양에 지으려고 했지만, 혐오시설이라고 지역 주민들이 반대해 사업이 좌초됐다. 장애인을 위한 휴양시설이 왜 혐오시설인가.

모든 사람은 장애인이거나 잠재적 장애인이고, 늙기 때문에 예비 노인이다. 그렇다면 서로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시골 어르신은 서로 배려하며 잘 산다. 어디 간다고 하면 옆집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차에 시동 걸고 모시러 온다. 그래도 불편하다. 취약 지역의 교통 문제라든가 장애인 복지와 의료 서비스 같은 것은 좀 더 과감하게 지원돼야 한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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