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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터뷰]'광대는 나의 운명' 거리의 행복 전도사, 퍼포머 함서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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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7일 여의도 벚꽃 축제 현장에서다. 거리는 벚꽃 아래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날씨도 화창했다.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자신이 공연 때 사용하는 모자,볼, 컵 등 다양한 저글링 도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변선구 기자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자신이 공연 때 사용하는 모자,볼, 컵 등 다양한 저글링 도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변선구 기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그의 몸짓에 사람들이 웃고 손뼉을 친다. 현란한 손동작으로 공을 허공에 던지고 받고 한다. 불방망이를 자유자재로 돌린다. 의도된 실수로 놀라게도 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관객의 시선을 고정했다.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 봄꽃 축제장에서 함서율씨가 불 저글링 공연을 하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 봄꽃 축제장에서 함서율씨가 불 저글링 공연을 하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 봄꽃 축제장에서 함서율씨가 불 저글링을 선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여의도 봄꽃 축제장에서 함서율씨가 불 저글링을 선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그는 잘 짜인 1인 드라마 한 편을 세련되게 거리에서 펼쳐 보인다. 그의 주 무기 중의 하나인 ‘사다리 서커스’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가 터진다. 관객들이 그에게 다가와 엄지를 세우며 “멋지다. 대단하다. 수고했다. 응원한다” 등의 찬사를 쏟아낸다.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팬들이 건넨 메모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함서율씨]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팬들이 건넨 메모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함서율씨]

그는 적지 않은 팬이 있다. 먼발치서 공연을 바라보던 관객들은 그의 마력에 빠져 또다시 공연장을 찾는다.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적은 메모지를 건네는 팬들도 많다. 몇 년 전 그의 공연을 보았던 남녀 커플은 다시 찾아와 부부가 되었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우울감에 시달리던 한 남자가 감사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어느 휴일 여의도에서 공연하던 그에게 특별한 인연이 찾아 왔다. 공연할 때마다 눈이 마주쳤던 한 여성 팬이 직접 만든 도시락을 건네고 사라졌다. 다음 날도 그녀가 찾아와 또 도시락을 건넸다. 인연이 이어지면서 여성 팬은 마침내 2017년 아내이자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아내는 현재 공연에 필요한 서류 작업과 소품을 제작하는 일 등을 도와주며 그의 옆을 지키고 있다.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의 팬들이 준 메모지. [사진 함서율씨]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의 팬들이 준 메모지. [사진 함서율씨]


“공연하는 나의 삶 속에서 관객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요. 저의 공연이 누군가에게는 치유가 되고 힘이 되고 기쁨이 되기에 행복해요”라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함서율. 나이 29세. 그는 경력 10년의 청년 저글링 퍼포머이다. 그는 스스로 거리의 광대로 불리기를 원한다.

어렵게 동료들과 함께 마련했다는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저글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저글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Q:저글링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A:“한창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다 기왕이면 이색적인 것을 하고 싶었어요. 궁리 끝에 이벤트 회사를 들어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피에로 분장을 하고 행사장에 나갔고, 풍선 불기를 하다가 저글링까지 접하게 됐지요.

처음에는 배우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갈수록 더 어렵더라고요. 하하…. 포기할까도 생각하다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 일도 못 할 것 같아 우선 이것만은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공을 던지고 받기를 석 달 했더니 나름대로 기술이 완성됐어요. 처음 성공을 할 때의 느낌이 너무 좋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죠. 군 생활을 제외하고는 거의 저글링만 한 것 같아요. 제가 살면서 경험한 첫 성공의 느낌이 지금까지 저를 저글링으로 이끄는 것 같아요.”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매직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매직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변선구 기자

Q:첫 무대 공연은 언제?


A:“제가 개인적으로 무대에 처음 선 것은 아마도 2009년 어린이날이었던 것 같아요. 강원도 속초에 있는 한 연수원 행사에 갔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려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너무 빨리 뛰어 고통스럽기까지 했어요. 이대로 도망갈까도 생각했는데…. 내가 언제 이렇게 가슴이 뛸 날이 또 있을까 싶어서 용기를 내서 무대에 섰어요. 정말 제가 연습했던 모든 것을 쏟아부었어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며 가슴이 쿵쾅거려요. 하하하 ”

함서율씨가 지난 7일 벚꽃 축제가 열린 서울 여의도에서 사다리 서커스 공연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함서율씨가 지난 7일 벚꽃 축제가 열린 서울 여의도에서 사다리 서커스 공연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Q: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A:“왜 없었겠어요? 지금도 반대하세요. 아버지는 ‘이 일을 해서 어떻게 먹고살 거냐?’며 반대하시지요. 제가 걱정하지 마시라. 잘해낼 것이다 말씀드리지만…. 또 어머니는 거리에서 몸으로 공연하니 다칠까 봐 많이 걱정하세요.
사실 저도 인정받고 싶어요. 아들로서. 언젠가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 실력을 인정을 받고 나면 마지막에는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요.”

Q:롤 모델이 있나요?


A:“유튜브를 통해 보게 됐는데 ‘가말초바’라는 일본 공연팀이에요. ‘사일런트 코미디’를 하는 배우들인데 두 명이 말 한마디 없이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을 보고 감동한 것 같아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전 세계 사람들과 소통하는 꿈을 꾸게 됐죠. 새로운 공연을 만들며 현재는 저와 싸움을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을 무조건 따라 하다 보면 2등에 머물 수밖에 없으니까요.”

함서율씨가 지난 11일 서울 윤중로 벚꽃 축제장에서 디아블로 공연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함서율씨가 지난 11일 서울 윤중로 벚꽃 축제장에서 디아블로 공연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Q:현재 하는 공연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A:“제가 만든 공연은 ‘더 해프닝 쇼’예요. 일상에서 예상하지 못한 즐거운 일이 벌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디아볼로, 컵, 바운스볼, 볼, 모자, 불 저글링 그리고 마지막은 사다리 서커스로 구성했어요. 30분가량 공연하는데 말미에 저를 소개하는 것 말고 가능한 말은 하지 않아요. 몸짓과 행동으로 관객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죠. 관객들의 눈을 보면 감정을 읽을 수가 있어요. 진심으로 저의 공연에 공감하는 눈빛을 보면 굉장히 뿌듯해요. 하하…...”

함서율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서 공연 도중 자신을 소개하는 말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함서율씨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서 공연 도중 자신을 소개하는 말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그가 공연 말미에 자신을 소해하며 하는 말은 이렇다.

"저는 저글링을 10년 했고, 벌룬 아트를 3년 공부했고, 마임, 마술, 아크로바틱 등 여러 가지 예술을 하나로 종합하여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시는 '더 해프닝 쇼'를 만들게 됐습니다. 저의 꿈은 전 세계인이 누가 봐도 즐겁게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인데요. 오늘 이 30분이라는 시간에 제 공연 인생 10년을 담았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후 정말 마지막 순서의 사다리 서커스 공연을 앞두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커스는 어떤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굉장히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믿고, 또 그것이 여러분들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지금 제 목숨을 걸고 어떠한 장면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것이 저는 여러분들 삶에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랍니다." 

Q:이후 계획은?


A:“5월 4~6일까지 국내 서커스 축제인 ‘서커스 카바레’ 행사가 문화비축기지에서 있어요. 올해로 2회째인데요. 저는 4일과 6일 두 차례 ‘서커스 올림픽’을 제목으로 공연할 거예요. 초연한 적이 있는데 조금 더 보완해서 무대에 설 생각이에요.

지난해는 부산에서 열린 피즘(FISM)이라는 마술 올림픽에 참가했어요. 피즘은 3년에 한 번씩 올림픽처럼 세계 각 지역에서 공연자들이 참석해요. 저는 일본에서 유명한 마술사 슛 오가와의 원맨쇼에 게스트로 참가했었지요.  

올해 초에는 대만 초청 공연도 다녀왔는데 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에 조금씩 저를 알리며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려고 해요.”

함서율씨가 지난 11일 서울 윤중로 벚꽃 축제장에서 공연하며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변선구 기자

함서율씨가 지난 11일 서울 윤중로 벚꽃 축제장에서 공연하며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변선구 기자

Q:공연은 언제까지 할 예정?


A:“평생 할 생각이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 아무래도 몸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은 좋은 공연을 계속해야겠지만 좋은 선생님도 되고 싶어요. 아직 국내에는 저글링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어요. 제가 처음 배울 때도 아주 힘들었거든요. 사실 독학으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외국 동영상을 보고 연습하고, 직접 선배들의 공연장을 찾아가 눈으로 보고 연습하고 해서 배웠어요. 앞으로 계속 공부해서 알려주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하하”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자신이 공연 때 사용하는 모자,볼, 컵 등 다양한 저글링 도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변선구 기자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자신이 공연 때 사용하는 모자,볼, 컵 등 다양한 저글링 도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변선구 기자

Q:거리의 공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A:저는 후배라는 말보다는 공연을 하는 동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준비 없이 거리에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거리는 우리의 중요한 무대이기 때문에 정말 잘 준비해서 나와야 해요. 준비를 많이 해서 자신의 공연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고,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을 때 발표를 하면 좋겠어요. 조금 모순될 수 있는데, 때가 되면 실험 정신과 도전 정신으로 과감하게 할 필요도 있어요.”

Q:마지막으로 어떤 배우, 광대가 되고 싶은가요?


A:“저글링 기술도 중요하지만,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광대라고 생각해요. 저도 이제 배워가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를 끌어가는 광대가 되려고 해요. 공연 예술은 끝이 없는 길을 걸어가는 인고의 과정인 것 같아요. 창작하는 그 과정이 아름다워야 하죠. 그것을 하는 사람이 광대라고 생각해요.”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인터뷰 했다. 변선구 기자

저글링 퍼포머 함서율씨가 지난 9일 경기도 구리 연습실에서 인터뷰 했다. 변선구 기자

사진 촬영과 인터뷰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함께했다. 헤어지며 그에게 물었다. “혹시 광대라는 말을 듣는 것이 기분 나쁘지는 않나요?”
그가 답했다.

“광대는 내가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다른 모습을 통해 관객들에 다가갈 수 있어 좋아요. 제가 생각하는 광대는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이 돼 줄 수 있는 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에요.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지만, 저 같은 광대를 만나 한순간이라도 위로받고 기쁨을 느끼신다면 그걸로 충분하지요. 전 그러려고 광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주요작품 활동

<서커스 올림픽(2018)>,<더 해프닝 쇼"My Dream"(2017)>,<팀 브라더스 쇼(2016)>,<더 해프닝 쇼(2014)>,<수상한 사람둘(2010)>


변선구 기자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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