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송환·범죄수익 환수 ‘아시아 공조기구’ 만들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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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호 11면

세계검사협회 수장 된 황철규 부산고검장 

황철규 부산고검장 은 ’권역별 수사 공조 시스템을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황철규 부산고검장 은 ’권역별 수사 공조 시스템을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황철규(55) 부산고검장이 지난 5일 국제검사협회(IAP) 회장에 당선했다. 1995년에 설립된 IAP는 약 180개 국가 검찰이 가입한 국제 검사 조직으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자문기구다. 아시아 지역 검사가 IAP 회장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 고검장은 이 협회에서 7년간 집행위원(총 32명)으로 활동했다. 회장 임기(3년)는 9월에 시작된다. 지난 22일 부산고검에서 그를 만나 IAP 회장으로서의 계획 등을 물었다. 황 고검장은 “범죄인과 범죄 수익의 국경 통과가 늘어남에 따라 수사기관의 국제적 공조 필요성이 나날이 커간다”며 “이번 일을 한국 검찰의 국제적 범죄 대처 역량을 키우는 데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시아권에 수사 공조 기구를 만드는 작업에 나설 뜻을 밝히기도 했다.

수사기관 국제 공조 필요성 커져 #아시아 지역 수사 협력기구 추진 #김종양 인터폴 총재와 협력 논의

한국인이 IAP 회장이 됐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우선 개인적으로 엄청난 영광이다. 한국 검찰의 국제적 위상과 그동안 IAP에서 활동한 검찰 선배의 노고 덕분이다. 국가적 측면에서는 해외 도피자 송환이나 국외로 빠져나간 범죄 수익 환수가 더 활발해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왜 그런가.
“통상 도피자 송환이나 범죄 수익 환수는 한국 법무부가 상대국 법무부에 요청하는 것을 시작으로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검 산하 국제협력단에서 인적 네트워크 등을 활용해 먼저 범죄인 소재나 불법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일을 별도로 한다. IAP 회장이 한국인이라는 것은 상대국 측이 우리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도록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범죄인 인도’ 하면 통상 사람들이 김경준·유섬나·정유라씨를 떠올린다. 주요 사건이라야 한국 법무부와 검찰이 열심히 송환 작업을 벌이는 것 아닌가.
“그런 일에 우리 사회와 언론이 주목하기 때문에 일반적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는 외국으로 도피한 횡령범, 보이스피싱 사범, 다단계 금융 사기범 등 다양한 범죄인이 송환돼 온다. 한 사건에서 100억원 이상의 범죄 수익을 환수하기도 한다. 피해자 구제라는 민생 문제와 직결된 부분이다.”
보이스 피싱, 온라인 도박 등과 관련해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이 연계된 경우가 많다. IAP 수장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유럽에는 수사 공조 기구가 잘 갖춰져 있다. 체포영장이 여러 나라에서 효력을 갖는다. 우리도 그와 유사한 아시아 내 조직을 만들어 국제적 범죄 수사의 ‘패스트트랙’을 갖출 필요가 있다. 여러 나라가 바라는 일인데, 아직 시작을 못 했다.”
아시아 지역의 수사 협력 기구를 만들겠다는 의미인가.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3년 회장 임기 내에 최소한 구상과 논의 착수는 되도록 하겠다.”
중국의 협조가 관건일 것 같은데.
“수년 전에 중국에서 정치인 부패 사건에 연루된 도피자를 우리 수사당국이 체포해 넘겨 준 적이 있다. 중국이 한국에 공조를 요청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리고 중국 검찰 ‘넘버 투’가 IAP 집행위원이다. 그 역시 아시아 지역의 수사 공조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에 김종양 전 경기경찰청장이 인터폴 총재가 된 데 이어 황 고검장이 IAP 회장에 당선되면서 세계 검찰, 경찰 기구 수장 자리를 모두 한국인이 맡게 됐다. 어떤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서로 도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역사가 길고 조직을 잘 갖추고 있는 인터폴에서 배울 점이 많다. 곧 김 총재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려 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임기가 오는 7월에 끝남에 따라 황 고검장도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된다. 총장이 돼도 IAP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나.
“훌륭한 후보들이 많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IAP 회장직에 나섰다. 질문이 나왔으니 답을 하자면, 현직 검찰총장이 IAP 회장직을 맡은 경우가 꽤 있다. 제임스 해밀턴 전전임 회장은 아일랜드 검찰총장이었다. IAP 회장은 비상근직으로 1년에 두 차례 회의를 주재하고, 큰 틀에서 협회를 이끄는 일을 한다. 실무는 사무총장이 담당한다.”
검찰 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문제나 수사권 재조정으로 정치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한 생각은.
“IAP에서 활동하며 다른 나라 검찰 고위 간부들을 많이 만났다. 검찰의 역할과 권한에 대한 정답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검찰 권한이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검찰 개혁은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효율성에서 민주성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국제통’으로서 검찰에 바라는 일이 있다면.
“현재 대검찰청에 임시 조직으로 있는 국제협력단을 정식 조직인 국제형사부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수사 범위가 외국으로까지 펼쳐지는 사건이 많다는 점에서 누가 검찰총장이 되든 검토해 보면 좋겠다.”

이상언 중앙일보 논설위원 lee.sangeon@joongang.co.kr
황철규 부산고검장=1964년 서울 출생, 서울 명지고, 서울대 법대 졸업, 29회 사법시험 합격(연수원 19기),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부산지검장, 대구고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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