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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밤 '불맛' 찾는 산불 방화범…그들은 동네 아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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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호 12면

‘산림 내 방화를 목격하신 분 신고해주세요.’
지난 17일 경기도 안양의 삼성산 입구에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백시원 안양시청 녹지과 주무관은 “지난해 8월 삼성산 서울대 수목원 근처에서 방화 추정 산불이 일어났다”며 “동일 소행범으로 보고 경찰의 협조를 얻어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심리 프로파일 분석해보니 #남성이 90%, 익숙한 동네 산 택해 #97%가 하루 안에 현장 다시 찾아 #심리적 냉각기 거친 뒤 범행 반복 #16년간 93차례 산에 불지르기도 #한국 최고 15년형, 미국선 사형까지 #

지난 2015년 6월 경기도 남양주 수락산 향로봉 하단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산림청에서는 '입산자 실화 추정'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렇게 원인이 안 밝혀진 산불은 대부분 방화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을 은 말한다. 수락산(남양주)=김홍준 기자

지난 2015년 6월 경기도 남양주 수락산 향로봉 하단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산림청에서는 '입산자 실화 추정'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렇게 원인이 안 밝혀진 산불은 대부분 방화로 추정된다고 전문가들을 은 말한다. 수락산(남양주)=김홍준 기자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양 삼성산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 안양시청 녹지과에서는 근처에서 사흘 간격으로 산불이 일어난 점을 주목하며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양 삼성산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 안양시청 녹지과에서는 근처에서 사흘 간격으로 산불이 일어난 점을 주목하며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산불 비상이다. 올해 산불 발생 건수는 4월 23일 현재 446건(산림청 기준). 지난해의 496건을 웃돌 것으로 점쳐지는 것은 물론 최근 10년간 최고치인 2017년의 692건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방화가 잇따르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해 방화성 산불 건수는 3건(산림청 통계)이지만 올해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이 방화에 골머리를 앓는 이유는 실화는 지속적인 홍보와 교육으로 예방이 가능하지만 방화는 범죄자들의 비정상적 심리 상태에서 발생하는 데 있다.

이들은 어떻게, 왜 산에 불을 지르는 것일까. 이들을 막을 묘안은 없을까. 산불 방화범의 행동 패턴과 심리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양 삼성산의 천일암 능선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 안양시청 녹지과에서는 근처에서 사흘 간격으로 산불이 일어난 점을 주목하며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양 삼성산의 천일암 능선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 안양시청 녹지과에서는 근처에서 사흘 간격으로 산불이 일어난 점을 주목하며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경기도 안양 관악역 인근의 삼성산 입구에 걸린 현수막. 안양시청과 만안경찰서는 지난해 8월 등 방화 추정 산불이 잇따르면서 이런 방화범 검거 협조 요청 현수막을 10여 곳에 설치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경기도 안양 관악역 인근의 삼성산 입구에 걸린 현수막. 안양시청과 만안경찰서는 지난해 8월 등 방화 추정 산불이 잇따르면서 이런 방화범 검거 협조 요청 현수막을 10여 곳에 설치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60%가 대도시 인근 산에 불질러

포항 운제산에서는 지난 3일부터 사흘 연속 산불이 일어났다. 4일에는 충북 진천의 한 야산 세 곳에서 거의 동시에 불이 났다. 경찰은 운제산과 진천 야산의 산불을 방화로 추정했다. 비슷한 지점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산림 방화의 전형적인 특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안양시청과 경찰이 지난해 8월의 삼성산 서울대 수목원 뒤편의 화재를 방화로 의심하는 이유도 비슷한 곳에서 사흘 간격으로 연속 발생해서다.

지난 1월에 발생한 포항 야산, 김해 분성산·신어산 불은 각각 60대·50대 남성이 범인으로 밝혀졌다. 2월에도 부산 승학산에 방화한 50대 남성이 검거됐다. 지난 13일에는 도봉산 무수골에서 산불이 일어났는데 산불 신고자인 A씨(35)가 경찰에 잡혔다.

지난 2월 26일 낮 부산 승학산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튿날에도 이 승학산에 산불이 일어났는데, 두 차례 산불 모두 건강 상태를 비관한 50대 남성이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6일 낮 부산 승학산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산불이 발생해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튿날에도 이 승학산에 산불이 일어났는데, 두 차례 산불 모두 건강 상태를 비관한 50대 남성이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

4월 3일 경북 포항시 운제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발생했다. 경찰에서는 사흘 연속 일어난 이 운제산 산불이 자연발화 요인 없이 발생한 점에 비춰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뉴시스]

4월 3일 경북 포항시 운제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발생했다. 경찰에서는 사흘 연속 일어난 이 운제산 산불이 자연발화 요인 없이 발생한 점에 비춰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뉴시스]

산불 방화범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도시 인근의 산에 불을 낸다는 것이다. 김연수 동국대 융합보안학과 교수의 2003년~2015년 사례 분석에 따르면, 산불 방화는 59.1%가 대도시 인근의 산림에서 일어났다. 김연수 교수는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상 국토 곳곳에 국·공유림은 물론 사유림이 있고, 최근에는 도시 숲 조성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됨으로써 숲과 산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이 용이한 특징이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김광일 인제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가 산림청의 용역을 받아 펴낸  보고서인 ‘산불 원인 유형별 산불발생 억제 사회교육프로그램 개발 연구’에 따르면, 산에서 실수로 불을 내는 실화는 주로 낮에 발생하지만 방화는 일몰 이후에 빈발한다. 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 아침,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 시간대에 관할 구역별로 20~50% 가량 발생한다.

안양의 삼성산 전체를 쉽게 조망할 수 있는 상불암의 진우 스님은 “지난해 8월 19일(일요일) 안양시청 측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고 산불 위치를 알려줬다”며 “자정 직후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이 서울대 수목원 뒤편 천일암 능선 상의 산불은 8월 18일 오후 11시59분에 발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김연수 교수는 “일몰 이후를 택하는 건 당연히 다른 등산객을 피하려는 의도”라며 “그러면서도 주말에 주로 발생하는 이유는 범죄학에서 범죄발생을 설명하는 ‘일상활동이론(Routine Activity Theory)’의 관점에서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활동 주기와 맞물려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13일의 도봉산 방화는 오후 1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일어났다. 용의자 A씨가 허겁지겁 산에서 뛰어 내려가는 게 목격됐다. 경찰과 인근의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 산불 진화에 다급히 나섰다. 용의자의 신발에는 그을음이 있었다. 추궁 끝에 A씨는 방화를 실토했다. 이렇게 A씨처럼 자백하는 경우는 드물다. 용의자가 목격되는 상황도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산림 방화를 실화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김광일 교수 연구팀은 “전체 산불의 10~30%를 방화로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올해 산불 446건 중 45~130건을 방화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산림청은 안양시청 측이 방화로 보는 지난해 8월의 삼성산 산불의 원인을 ‘입산자 실화 추정’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체 산불 건수의 30% 방화 추정    

수사기관은 프로파일링(범죄유형분석) 기법을 동원해 방화자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범죄현장과 주거지의 근접성, 평소 친숙한 공간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특성을 토대로 범죄자의 주거지를 분석한다. 이는 ‘지리학적 프로파일링’으로 불린다. 방화자의 61%가 교통수단으로 ‘도보’를 이용한다. 그만큼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의미다. 13일의 도봉산 방화를 자백한 A씨도 인근 거주자로 밝혀졌다.

방화범의 66%가 재범을 저지르고, 방화를 저지른 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1일 이내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경향이 97.3%에 이른다는 ‘심리적 프로파일링’도 수사에 활용된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방화범들은 일단 범행 후 심리적 냉각기를 거친 뒤 재범에 나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종 전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 삼성산의 화재 현장. 안양시청 녹지과에서는 2017년 6월에 발생한 이 화재를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경기도 안양 삼성산의 화재 현장. 안양시청 녹지과에서는 2017년 6월에 발생한 이 화재를 방화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산(안양)=김홍준 기자

그렇다면 도봉산의 A씨는 왜 산에 불을 질렀을까. 그는 “사는 게 힘들다”고 했다. 포항·김해·부산에서 잡힌 방화자들도 “외로워서” “욱해서”라는 진술을 했다. 경찰은 16년간 93차례나 산에 불을 냈다가 2011년 3월 검거된 ‘봉대산 불다람쥐’ B씨(당시 52세)에 대해 “직장과 금전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나 산불 진압 현장을 보면서 풀었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방화자들은 대부분 자극 추구 욕구가 높고 존재감의 회복을 느끼고 싶어한다”면서 “인명 피해는 피하고 싶어 살인·강도에 비해 대면 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방화를 택한다”고 밝혔다. 공정식 교수는 “보복·흥분을 추구하는 방화범의 특성상 단독 범행인 경우가 많으며 성인 남성이 90%라는 통계가 있다”고 말했다.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산림 방화로 인한 처벌은 최고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봉대산 불다람쥐’ B씨는 울산 봉대산·마골산 일대에서 16년간 93차례나 불을 질러 69만㎡를 태웠다. B씨에게 걸렸던 포상금은 무려 3억 원. 그는 대기업의 중간 간부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고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그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4억2000만원을 울산 동구청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산불 방화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시한다. 일반 방화는 형법에 처벌 근거를 마련하는데, 최고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산림 9400만㎡를 태운 캘리포니아 산불 ‘홀리 파이어’ 방화범을 지난해 8월에 체포했는데 CNN은 “종신형까지 가능하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2013년엔 미국 법원이 10년 전 캘리포니아에 산불 낸 리키 리 파울러(당시 31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가 낸 산불은 ‘올드 파이어’로 불리며 3억6800만㎡를  태우고 다섯 명을 숨지게 했다. 우리나라 산림보호법에는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 시 처벌 근거가 없다. 형법에는 산불 관련 규정이 아예 없다.

산불 통계도 산림청과 소방청이 서로 다른 것도 문제다. 지난해 산불 통계만 해도 산림청은 496건, 소방청은 993건으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한 산불 관련 전문가는 “데이터 공유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리학적·심리학적 프로파일링을 통해 산불 방화범을 검거 후 확실한 처벌을 통해 동종 범죄를 줄이거나 막자고 한다. 김연수 교수는 “처벌 강도 논의와는 달리, 산림 방화는 반드시 적발·체포·구속·처벌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산에 라이터 들고만 가도 과태료 30만원

지난 13일 경기도 안양 삼성산 인근. 주민 한 명이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를 태우고 있었다. 이 날은 건조한 날씨에 바람도 다소 불어 자칫 불씨가 날아가면 산불을 낼 우려도 있었다.

이렇게 산 근처에서 불을 피우면 과태료를 맞을 수 있다. 산림에서 100m 이내에 위치한 토지에서 허가 없이 소각 행위 시 산림보호법(57조)에 따라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실수로 산림에 불을 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피해 정도에 따라 배상금도 낸다. 2016년 4월 충북 충주에서 쓰레기를 소각하다 53만8000㎡의 산림을 태운 C(68)씨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8000만 원의 배상금을 청구 받기도 했다. 산불 방화 최고 형량은 징역 15년이다. 라이터 등 인화성 물질을 들고 산에 가면 3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산불이 빈발하자  산림청은 2016년 4월부터 ‘산불 가해자 신고포상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고 300만원까지 지급한다. 산림청이 지난 5년간 산불 가해자(실화·방화 포함) 검거율을 분석한 결과, 평균 검거율은 42%였으며, 700명이 형사 처벌을 받았다.

김연수 동국대 교수는 “감시장치·경고문 등 이른바 범죄예방 환경설계(CPTED) 확대 전략을 짜고 교육을 강화하는 등 장·단기 예방책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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