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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딸라 아저씨’ 김영철, 19년 궁예 이미지 씻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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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배우 김영철. 그가 진행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전국의 골목길을 탐방하며 사람 얘기를 전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김영철. 그가 진행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전국의 골목길을 탐방하며 사람 얘기를 전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해외의 세련된 풍광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들이 난무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전국 방방곡곡의 골목길을 누비며 정겹고 따뜻한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구수한 사람 냄새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얘기다. 진행자인 배우 김영철(66)씨는 지난해 7월부터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동네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발길을 옮기고 있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군산·포항·목포·창녕 등 그의 발길이 닿은 동네가 24곳이나 된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인간 김영철로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드라마 명대사 신세대들에 인기 #유튜브서 희화되며 광고도 몰려 #전국 골목 누비는 TV프로 진행 #조선 건국한 이성계 드라마 맡아

드라마 ‘야인시대’의 명대사 ‘사딸라’를 패러디 한 햄버거 광고. [사진 광고화면 캡처]

드라마 ‘야인시대’의 명대사 ‘사딸라’를 패러디 한 햄버거 광고. [사진 광고화면 캡처]

방송에서 느끼는 게 많을 것 같다.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사는 분들을 만나 소통하다 보니 깨닫는 게 많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사랑한다는 것이다. 공간에 대해 몰랐던 것도 많이 알게 돼 행복하다. 사그라져가는 옛날 골목길만 다니는데도 젊은 층의 시청률이 높다. 아날로그의 힘이다.”
육체적 피로도 상당할 듯한데.
“매주 목요일 촬영을 앞두고 화요일엔 꼭 청계산 등산을 한다. 육체적 준비다. 금요일에 녹음까지 하면 일주일이 다 간다. 애착이 가는 일이기에 덜 피곤하다.”
첫 회에 찾은 서울 만리동은 당신에게 의미있는 장소다.
“울산의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취하던 곳이다. 철모르던 시절 쌈박질하며 외로움을 달랬고, 대학 1학년 때 자퇴하고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많이 변했지만 골목들은 그대로였다. 콩나물 비빔밥집 할머니가 누룽지를 싸줬는데,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촬영하며 만나는 할머니들이 우리 엄마 같다.”
인상적인 만남을 꼽는다면.
“더덕 판 돈으로 어려운 할머니들에게 밥을 해주는 성수동 더덕 할머니, 치매에 걸렸지만 아들·손자가 운영하는 자신의 식당 앞에서 항상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망원동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 포항에서 조그만 어선을 운영하는 부부를 만났는데, 함께 일하는 인도네시아 청년을 친자식처럼 아끼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
지난해 말 서울 삼양동에서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 신부를 만났을 때는 엄청 눈물을 쏟았다.
“53년의 세월을 한국 빈민들과 함께하신 분이다. 그분이 이끄는 삼양주민연대 다락방에 올라갔다가 햄·라면·과자가 든 비닐봉지가 빼곡히 있는 걸 봤다. 독거노인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산타클로스가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에 신부님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에 다가서는 모습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겸손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다가가야 한다고 늘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힘들 때마다 ‘한국인의 밥상’을 9년째 하고 계신 최불암 선배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나도 10년을 꽉 채웠으면 좋겠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의 한 장면. [사진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의 한 장면. [사진 KBS]

김씨는 2017년 KBS2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이후 작품을 쉬었지만, 공백기에 그의 주가는 더 치솟았다.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KBS ‘태조 왕건’의 궁예), “사 딸라!”(SBS ‘야인시대’의 김두한),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영화 ‘달콤한 인생’의 조폭 보스 강사장) 등 위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명대사들이 유튜브에서 코믹하게 소비되고, 여러 편의 패러디 광고에 출연하면서 그는 친근한 이미지의 ‘핫한’ 아저씨가 됐다. 자신의 강렬한 캐릭터들이 희화화되는 걸, 그는 “재밌는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였고, 또 다른 인간적 매력을 보여줄 기회로 삼았다.

명대사들이 유희의 대상이 돼서 서운하진 않았나.
“서운하다기보다는 많이 궁금했다. 혼을 담아 정직하게 연기한 대사들이 뭐가 그리 재밌을까. 미군에게 ‘포 달러(four dollar)’도 아닌 ‘사 딸라’를 외쳐대는 김두한, 기침 소리 냈다고 신하를 죽이는 궁예 등 말도 안 되는 막무가내식 연기를 진지하게 소화해내는 모습이 촌스러운 재미를 준 것 같다. 대사의 리듬감 또한 특이했다. 재밌는 걸 발굴해 같이 즐기는 젊은이들의 기발함을 보며, 이 사회가 삭막하지만은 않구나 라고 느꼈다.”
궁예는 연기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궁예로 성공했지만, 반대급부 또한 컸다. 너무나 셌던 궁예 이미지를 희석하려 19년간 싸웠다. 비슷한 역은 맡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궁예와 다르게 보일까 고민하며 연기했다.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의 헌신적인 아버지 연기로 궁예 이미지를 떨쳐낼 수 있었다. 고마운 작품이다. 그런 궁예를 지금은 내가 먼저 끄집어내 즐기고 있다. 멀리 떠나보냈다는 얘기다.”
또 어떤 역할을 맡고 싶나.
“이 시대 모든 아버지의 삶을 연기해보고 싶다.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가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들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이자 어른이 되고 싶다. 촬영 중인 JTBC 드라마 ‘나의 나라’(9월 방영 예정)에 이성계로 출연하는데, 아들 방원과 갈등하고 화해하고 채찍질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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