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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조·해·철’ 3년 헛구조조정, 좀비기업 35개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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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 구조조정 이후 한계기업 13.5% 증가

한계기업 이미지. [중앙포토]

한계기업 이미지. [중앙포토]

정부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자체 생존 역량이 부족한 '좀비 기업'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취약산업으로 꼽으면서 대수술을 추진했던 조선·해운업종에서 한계기업 비중이 크게 늘었다.
중앙일보는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자료를 바탕으로 2022개 상장사의 최근 3년(2016년~2018년)간 경영 실적을 전수조사했다. 조사 결과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인 기업(한계기업)은 모두 293개였다. 구조조정 이전(258개·2012년~2014년)보다 13.6% 늘어났다.

정부 2015년 구조조정 칼 뺏지만 #돈 벌어 이자 못낸 상장사 293개 #조선사 2곳 중 1곳은 만성적자 #채권단 거액 자금투입 효과 없어 #건설·화학업종만 한계기업 감소

 구조조정 전후 업종별 한계기업 비중. 그래픽 = 차준홍 기자.

구조조정 전후 업종별 한계기업 비중. 그래픽 = 차준홍 기자.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특정 기업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같은 기간 은행에서 빌린 채무의 이자조차 갚지 못했다는 뜻이다. 금융권이 기업의 도산확률을 평가할 때 주로 들여다보는 지표다. 오영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 해 동안 기업활동을 했음에도 자기자본을 까먹었거나 아니면 새로운 빚을 내서 이자비용을 감당한다는 뜻”이라며 “이런 상황이 1년 동안 지속하면 잠재적 부실기업, 3년 연속 지속하면 자체 생존 능력이 부족한데 금융권에서 대출받아 연명하는 좀비기업(한계기업)으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상장기업 분석③ 

2018년 사업보고서 전수조사. [중앙포토]

2018년 사업보고서 전수조사. [중앙포토]

만성적 한계기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자 정부는 지난 2015년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산업별 구조조정 추진현황과 향후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주요 산업 구조조정의 시작이었다. 지난 3년 반 동안 정부는 한계기업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이후 현대중공업이 6개사로 분사하고 한진해운이 파산하는 등 떠들썩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조선업종 상장사는 한계기업 비중이 34.6%(2014년)에서 48.2%(2018년)로 오히려 증가했다. 조선업종 기업 2개 중 1개는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는 뜻이다.

삼성중공업은 4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중앙포토]

삼성중공업은 4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중앙포토]

예컨대 2011년부터 8년 연속 이익보다 채무가 많았던 한진중공업은 올해 대주주가 경영권을 포기했다. 필리핀 수빅조선소 경영부실로 완전자본잠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등 한진중공업 채권단은 지난 2월 6800억원을 출자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 죽어가던 기업에 ‘호흡기’를 붙였다.
삼성중공업도 2015년부터 4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2016년·2018년 두 차례 유상증자(2조6000억원)를 하며 부채비율을 낮췄지만, 여전히 돈을 못 벌고 있다(영업손실 4638억원·2018년).

한계기업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에 대해 삼성중공업은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지만, 선박 산업은 특성상 시황이 실적을 좌우한다”며 “2016년부터 선박 수주시장이 악화하면서 조선업계 모두 고정비 부담이 커졌고 원자재 비용 인상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또 “자구안 통해 체질을 개선하면서 시황 회복을 기다리면 실적도 자연스럽게 반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해운 구조조정 무용론

주요 한계기업의 이자보상배율. 그래픽 = 차준홍 기자.

주요 한계기업의 이자보상배율. 그래픽 = 차준홍 기자.

현대상선은 5년 연속 한계기업 상태다. 사진은 현대상선 현대 포워드호. [중앙포토]

현대상선은 5년 연속 한계기업 상태다. 사진은 현대상선 현대 포워드호. [중앙포토]

조선업의 전방산업인 해운업도 마찬가지다. 2014년 15.6%였던 해운업종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25.0%로 증가했다. 국내 대표 해운 기업인 현대상선은 2011년부터 8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정부는 6조원대 세금을 투입해서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맡았던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중앙일보 2018년 11월 27일 종합1면

정부가 구조조정에 심혈을 기울인 철강·비철금속업(12.8%→15.3%)도 한계기업이 되레 증가한 건 마찬가지다. 특히 동부제철은 조사를 시작한 2005년 이후 14년 연속 부실기업 상태다. 지난 14년간 단 한 번도 이자보다 더 돈을 번 적이 없다는 뜻이다. 현재 동부제철의 자본잠식률은 57.2%다. 코스닥 상장기업은 자본잠식률이 50%를 넘어서거나 자기자본이 10억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충남 당진시 동부제철 당진공장. 2014년 12월부터 열연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있다. [중앙포토]

충남 당진시 동부제철 당진공장. 2014년 12월부터 열연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진중공업·현대상선·동부제철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가 추진한 조선·해운·철강 산업 구조조정이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산업은행을 앞세운 정부 주도 구조조정은 기업의 기술력·가치보다 일자리·지역경제를 고려한 온정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부 주도 구조조정이 큰 효과가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상선은 “ 2010년대 글로벌 해운 산업이 ‘규모의 경제’로 이행하면서 초대형선박 보유 여부가 실적을 좌우하고 있다”며 “업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현대상선은 운송화물량을 300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2016년)에서 450만TEU(2018년)로 키우면서 경쟁력을 증명했다”고 반박했다.

동부제철, 14년 연속 한계상황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최악을 기록한 유성기업. 사진은 유성기업 폭행 사태 당시 상황. [중앙포토]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최악을 기록한 유성기업. 사진은 유성기업 폭행 사태 당시 상황. [중앙포토]

지난해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집중적인 정부 지원을 받는 자동차·자동차부품(10.0%→12.0%)도 한계기업이 증가하는 추세다. 전체 상장사 중 이자보상배율(-8만8753.9%)이 가장 심각한 기업은 자동차부품사 유성기업이었다. 노조파괴·임원폭행 등으로 노사가 수년 동안 소송전을 벌이면서 매년 수백억원의 충당부채를 쌓고 있다. 때문에 이자보상배율이 –1만% 이상인 상황이 3년째 지속하고 있다. SJM(-4412.6%) 등 한계기업으로 전락한 자동차 부품기업은 18개다.

한편 정부가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주요 업종 중에서 건설산업(17.4%→6.8%)과 석유화학·에너지산업(22.8%·12.6%)은 한계기업 비중이 상당히 감소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조선업 등 특정 산업은 수익성이 악화한 기업을 채권단이 지원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정부가 추진한 구조조정이 성공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면밀히 해부해서 구조조정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건설·화학업종은 한계기업 감소

지난달 폐쇄를 결정한 코오롱머티리얼 김천공장. [사진 코오롱머티리얼]

지난달 폐쇄를 결정한 코오롱머티리얼 김천공장. [사진 코오롱머티리얼]

건설·화학업종에서 한계기업이 줄어든 것과 달리, 두산건설(-0.67)과 코오롱머티리얼(-12.57)은 한계기업으로 전락했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설정하면서 당기순손실이 5518억원을 기록했다. 대손충당금은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설정하는 금액이다. 이에 대해서 두산건설은 “약 10년 전 대규모 건설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후 주택경기가 악화하면서 대금회수가 지연하고 이로 인해 부채비율이 높아지면서 실적이 악화하는 악순환이 시작했다”며 “자산매각·희망퇴직과 더불어 이자비용을 개선했기 때문에 연내 흑자전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의 모태 사업인 원사·원단 사업을 영위하는 코오롱머티리얼은 재무구조가 악화하면서 지난달 원사사업을 중단하고 김천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원사 산업은 노동경쟁력이 미치는 영향이 큰데, 중국과 비교하면 코오롱머티리얼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코오롱머티리얼은 “실을 뽑는 사업은 노동집약적이고 중국에 비해 한국의 산업 구조상 인건비를 축소하기 어렵다”며 “적자가 계속 누적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원사사업을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 구조조정 시대 끝났다”  

재무 구조가 가장 취약한 기업. 그래픽 = 차준홍 기자.

재무 구조가 가장 취약한 기업. 그래픽 = 차준홍 기자.

섬유·유통기업 LS네트웍스도 사정이 비슷하다. 매년 이자비용으로 169억~184억원이 빠져나가는데 연간 영업이익은 31억~-519억원에 그쳤다. 이밖에 LG상사와 한진,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등이 지난해 한계기업의 수렁으로 빠져든 기업이다. LG상사는 “상사 기업은 해외법인이 많아 개별실적 기준은 기업 재무구조를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베트남 석유재산 가치 하락을 예상해서 선제적으로 재평가하면서 일회성 비용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진은 “업종 특성상 비용의 30% 정도가 기름값인데, 유류비가 상승하면서 영업이익이 부진했다”고 말했고,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016년 시작한 면세점 사업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하면서 백화점부문에서 번 돈을 까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정부주도 구조조정과 지원정책 덕분에 기업이 다시 살아나는 경우 많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며“이제 정부가 산업정책을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주장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고 말했다. 강교수는 또 “민간 차원에서 기업 경쟁력과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희철·오원석 기자 reporter@joongang.co.kr

☞한계기업

채권자에게 지급해야 할 고정 비용인 이자 비용의 안전도를 측정하기 위해서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의 합계액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수치를 계산했다. 이렇게 나온 수치가 1배 미만인 상황이 3년 연속 지속하면 한계기업으로 분류했다. 한 해 동안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그 해에 갚아야 할 이자보다 많은 상황이 장기간 지속했기 때문이다. 기업에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사가 기업의 도산확률을 평가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에서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기는커녕 손해를 보는 상황이 3년 연속 이어진다면 자체적으로 생존할 역량이 부족한 기업으로 보고 금융지원을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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