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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도착한 김정은…당일로 축소된 북·러정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오전 전용열차를 타고 북-러 국경을 넘어 하산역에 도착하는 모습. [연해주 주정부 홈페이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오전 전용열차를 타고 북-러 국경을 넘어 하산역에 도착하는 모습. [연해주 주정부 홈페이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역에 도착할 무렵인 24일 오후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을 맞이하기 위해 러시아 당국이 플랫폼에 깔아놓은 레드카펫 위에도 비닐이 덮였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과 관광객들, 각국 취재진들은 우산을 쓰고 빗줄기 속에서 김 위원장을 기다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한 레드카펫을 러시아 현지 관계자가 진공청소기로 정리하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김 위원장 도착 직전까진 이 위에 비닐이 덮였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한 레드카펫을 러시아 현지 관계자가 진공청소기로 정리하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김 위원장 도착 직전까진 이 위에 비닐이 덮였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 위원장이 밟을 레드카펫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서있던 유리 블라틴은 “북한에 대해선 복잡한 감정이 있지만, 북한 지도자가 온다니 호기심에 일부러 나왔다”고 말했다. 역사엔 출입구마다 보안검색대가 설치되고 경비견이 곳곳을 수색하는 등 경계가 삼엄했다. 현지 경찰인 옥사나 이바노프는 “물론 (경계 상태가) 매일 이렇지는 않다”며 “북측에서 오는 VIP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역 안엔 사복경찰로 보이는 이들도 배치됐다. 기자가 번역기를 통해 “북쪽 손님은 언제 오시냐”고 묻자 한 사복경찰은 유창한 영어로 “기자들에게 알려줄 정보는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 김희진(24)씨는 “김정은 위원장을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신기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도착 모습까지 다 보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군 의장대가 24일 블라디보스토크 역 앞 광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환영행사 리허설 중이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러시아 군 의장대가 24일 블라디보스토크 역 앞 광장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환영행사 리허설 중이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 위원장은 앞서 24일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 한국시각 오전 9시30분) 무렵 두만강 철교를 넘어 북ㆍ러 국경을 건넜다. 뒤이어 러시아 접경역인 하산 역에 정차해 러시아ㆍ조선 우호의 집에서 환영 행사에 참석했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ㆍ북극개발 장관, 올렉 코줴먀코 연해주 주지사,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무차관,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대사 등 러시아 측 인사들과 함께 조석철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 총영사 등이 영접 나왔다. 전통 의상을 입은 러시아 여성들이 전통에 따라 환영의 의미로 빵과 소금을 대접했다. 김 위원장은 빵을 조금 뜯어 소금에 찍어 맛봤다. 연해주 주정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코줴먀코 주지사에게 “이번 방러가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이는 첫번째 행보일 뿐이다”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 뒤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 등의 모습이 보였다.

김정은 위원장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전용차량 벤츠와 마이바흐를 북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근처로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하자 러시아 경찰이 막았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정은 위원장을 기다리며 대기 중인 전용차량 벤츠와 마이바흐를 북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다. 근처로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하자 러시아 경찰이 막았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이어 우수리스크를 걸쳐 블라디보스토크역에 6시께(현지시간) 도착했다. 역 현장에선 김 위원장 도착 전까지 그의 전용차량인 벤츠S600 풀먼 가드와 마이바흐 S62차량은 역 앞에 대기해 있었다. 북측 경호원들이 각 차량 곁에 서있었고 러시아측 경찰력이 접근하려는 취재진을 막았다.

블라디보스토크 내의 북한 커뮤니티도 김 위원장의 방문을 맞아 초비상에 들어간 모습이다. 현지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것으로 파악된 한 북한 식당은 24일 찾아가 보니 한글과 러시아어로 “오늘은 사정에 의하여 봉사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은 흰 종이를 출입문에 붙여놓고 불이 꺼진 상태였다.

북러 정상회담 1일차인 24일,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북한 식당엔 임시 휴업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북러 정상회담 1일차인 24일,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북한 식당엔 임시 휴업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 위원장은 역에 도착해선 대기 중이던 전용차량에 탑승해 극방연방대학 루스키섬 캠퍼스로 향했다. 이 캠퍼스 역시 하루종일 경비가 삼엄했다. 휴교령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학생들도 일일이 학생증과 보안검색을 받은 뒤에야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극동대로 향하려면 금각교와 루스키교를 건너 루스키섬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중간중간에도 경찰이 포진해 있었으며, 대학 인근에 주차를 하려면 운전기사의 신분을 일일이 경찰이 확인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키리 유리노프는 “첫 북ㆍ러 정상회담이 우리 학교에서 열린다는 건 영광이지만 솔직히 불편하긴 하다”며 웃었다. 극동연방대를 졸업한 안철환 변호사는 “극동대는 푸틴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곳”이라며 “캠퍼스 자체도 해안가를 끼고 있는 섬에서 국빈을 맞이하는 목적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극동연방대에 나부끼는 인공기.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극동연방대에 나부끼는 인공기.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김 위원장은 당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이날 만찬을 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푸틴 대통령은 오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해군 함정 진수식에 참석하고 상원의원들과의 정례 회의에 참석한 뒤 25일 오전에야 블라디보스토크로 넘어올 예정이라고 러시아 언론은 전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의 1차 북ㆍ러 정상회담은 당초의 1박2일 예상과는 당일로 축소됐다. 24일 푸틴 대통령과 상견례를 겸해 열릴 것으로 전해졌던 만찬 역시 푸틴보다 격이 낮은 유리 트루트녜프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 겸 부총리가 주재할 것으로 보인다.

북러 정상회담 1일차인 4월24일, 회담 장소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가 되는 극동연방대의 경비가 삼엄하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북러 정상회담 1일차인 4월24일, 회담 장소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가 되는 극동연방대의 경비가 삼엄하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은 앞서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25일 단독 회담과 확대 회담을 할 것이라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회담 후엔 발레 공연과 북ㆍ러 민속 공연 등 환영 문화 행사를 곁들인 오찬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이어 현지 민생 관련 공장 및 경제 관련 시설을 시찰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루를 더 보낼 예정”이라며 “26일엔 루스키 섬에 있는 오케아나리움(해양관)을 포함해 시내 여러 시설을 방문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김 위원장은 27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게 된다. 부친 김정일 위원장은 2002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빵 공장을 방문하며 민생행보를 했고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찾아 북ㆍ러간 군사 협력을 강조했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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