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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집 옆 창고서 일냈다···'커피계 애플' 전주연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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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부산 온천장역 근방 카페 '모모스'를 찾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모모스]

지난 21일 부산 온천장역 근방 카페 '모모스'를 찾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모모스]

지난 일요일(21일) 부산 온천장역 근처 모모스 커피집은 종일 대기 줄이 끊이지 않았다. 이현기(42) 대표는 "주말 평균 방문객이 1000명 정도인데, 이날은 300~400명 더 많았다"고 했다. 부산·경남은 물론 서울·수도권에서 달려온 이들은 "월드바리스타 전주연씨 출근했나", "전주연씨가 직접 커피를 내리나" 물었다. 이 대표는 "외지에서 온 손님들은 카페 곳곳을 순례하듯 둘러봤다"고 말했다.

바리스타 전주연이 지난 1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사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바리스타 전주연이 지난 1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사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

2007년 모모스 창업 멤버인 전주연(32)씨는 지난 1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WBC)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파격적인 시연으로 심사위원으로부터 "센세이셔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전세이셔널" 바람이 불었다. '손세이셔널' 손흥민(27·토트넘)을 빗댄 표현이다. 이날 오전 귀국한 전씨는 바로 모모스를 찾았다. 본래 연구개발실에서 근무하지만, 이날은 모모스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줄을 선 방문객에게 서비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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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스는 부산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내는 카페로 첫손에 꼽힌다. 스페셜티 커피란 전 세계 커피 전문가 단체인 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테이스팅 후 '80점 이상'의 품질을 인증한 커피다. 이 대표는 "2009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WBC를 보고 스페셜티 커피를 시작했다. 이때 '우리도 WBC에 나가보자' 준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4위에 머문 전씨는 모모스 직원 5명으로 꾸린 스태프와 함께 올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모모스의 2007년 모습. [사진 모모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모모스의 2007년 모습. [사진 모모스]

모모스의 시작은 미미했다. 당시 이 대표의 부모가 운영하는 보신탕집 옆 작은 창고에서 '4평짜리'로 시작했다. 애플이 실리콘밸리의 작은 차고에서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 31살이던 이 대표와 또래 직원 3명, 대학생 '알바'가 모인 청년 창업이었다.

이 대표는 보신탕집 '귀남(貴男)'은 아니었다. IMF 때 식당을 연 이 대표의 부모는 담보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가게를 접을 판이었다. 전문대 토목과를 졸업하자마자 병역특례로 철도 궤도 제작사에 들어간 이 대표는 10년 동안 일해 모은 돈과 퇴직금을 합한 9000만원으로 창업했다.

이 대표는 "창고 벽을 뚫고 에스프레소 머신 한 대를 들이고, 인테리어는 최소로 했다. 나머지는 창업 후 운영자금으로 쓰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예상대로 문을 열고 9개월간은 매달 적자를 냈다. 하지만 알바 시급은 깎지 않았다. 전주연씨는 당시 "시급 6000원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최저시급(3480원)의 두배에 가깝다. 이 대표는 "주연씨는 매사 부지런했다. 가게를 맡겨놓고 나갔다 오면 새 가게가 될 정도였다"고 했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모모스의 2009년 모습. 전주연(왼쪽) 바리스타와 이현기(가운데) 대표. [사진 모모스]

부산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모모스의 2009년 모습. 전주연(왼쪽) 바리스타와 이현기(가운데) 대표. [사진 모모스]

돈을 벌기 시작한 건 보신탕집 건물까지 확장한 2009년부터다. 애초 "잘 되면 프랜차이즈를 해야지"라고 마음먹었지만, 이내 접었다. "커피란 할수록 어렵구나" 생각이 들어서다. 그때부터 "2층에 커피 랩(연구실)을 만들고, 직원들과 스페셜티 커피 공부에 열중"했다. 중남미 등 산지 농부와 직거래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다음 달 미국의 대표적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서울 성수동에 첫 매장을 연다. 모모스를 비롯해 스페셜티를 내세우는 카페로선 강력한 경쟁자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잘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바리스타를 포함해 한국의 스페셜티 커피는 세계적인 수준"이라며"전주연씨의 우승으로 입증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블루보틀로 인해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블루보틀은 2002년 제임스 프리먼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차고에서 창업했다. 지난해 세계 1위 외식기업 네슬레가 인수했다.

월드바리스타챔피언을 낸 커피집 주인의 꿈은 소박했다. "산지 농부에게 제값을 주고 커피를 많이 사는 것"과 "스페셜티 커피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농부와 카페 종사자,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내기까지 바리스타의 노고를 알아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카페 알바'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력 있는 바리스타도 알바를 할 수 있고, 알바도 전주연씨같은 세계적인 바리스타가 될 수 있다. 알바도 누군가의 아들·딸이다. 외식업이 발전하려면 직업인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도 대우받는다. 전주연씨의 세계대회 우승이 이런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창업 당시 하루 10만원 벌이를 하던 모모스는 지금 온천장·센텀시티점 카페 2곳과 로스팅(생두를 볶는 일) 커피 유통 등을 포함해 월 매출 5억원, 직원 45명의 회사로 성장했다. 커피업계의 애플로 커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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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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