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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빚 그 뒤 '악몽의 20년'···회계사는 막노동꾼이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빚탕감 그후① 

원금이 1000만원 이하인 금융부채를 10년 넘게 연체한 사람. 정부가 규정한 ‘장기소액연체자’이다. 장기소액연체자는 약 159만 명으로 추산된다(2017년 11월 기준). 정부는 이들 중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겐 3년 내 채권을 소각해서 빚을 전액 탕감해주는 제도를 지난해 3월 시행했다. 신청 기간인 올 2월까지 장기소액연체자 11만7000명이 빚을 털어달라고 신청했다. 그 장기소액연체자들을 직접 만났다.

20년 넘게 따라붙는 꼬리표, 신불자

‘행복기금 562-06-******** 2만9000원 매달 15일, 자산 217-90-****** 1만4000원 매달 15일’.
홍정우(56·가명)씨는 점퍼 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쪽지를 꺼내 펼쳐 보였다. 홍씨는 지난 6년간 매달 이 가상계좌로 돈을 넣어왔다고 했다. 20년여 년 전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다.

홍정우(가명)씨가 가지고 다니는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

홍정우(가명)씨가 가지고 다니는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오산시 한 카페에서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사업 도움을 받은 홍씨를 만났다. 그는 오전에 건설현장 일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참이었다.
지난 20년간 홍씨에게 빚은 지울 수 없는 각인이었다. 점퍼 속 계좌번호 종이쪽지처럼 홍씨 인생에 꼬리표가 돼 달라붙었다. 회계사로 일하던 홍씨는 1995년 은행에서 생활 자금으로 수백만 원 대출을 받았다.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기 쉬운 시절이었다. 이자를 메우기 위해 여러 신용카드로 대출을 받는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 빚은 점점 불어났다. 사업하는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선 게 치명타가 됐다. 회사로까지 추심이 들어올까 봐 눈치가 보였다. 회계사는 신용이 중요한 직업이다. 그렇게 1998년 서른 중반 나이에 회사를 걸어 나왔다. 20년 후 일하게 된 경비업체를 제외하면 그의 마지막 직장 생활이었다.

부채는 가정도 무너뜨렸다. “채권단이 무척 극성이었어. 집에 찾아오고 전화하고 우편으로 보내고. 아내가 추심을 감당 못 하겠다기에 그때 합의이혼을 했지.”
초등학생이던 두 아들과도 생이별했다. 홍 씨는 그때부터 홀로 살면서 택시·버스·지게차·화물차 운전부터 만화출판·식당 등 서비스업을 전전했다.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일당으로 들어온 돈은 압류될까 봐 새마을금고에 소액만 보관했다. 이외에는 가족들 명의의 통장을 빌려서 체크카드를 만들어 썼다. 한창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할 나이에 빚쟁이들을 피해 주소를 옮기며 숨어 살았다.

2000만원 원금이 8000만원으로

채무를 조정해보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빚을 갚아갈 요량으로 2004년 신용회복위원회에서 견적서를 떼어 봤다. 원금 2000만원에 이자가 붙어 갚을 돈이 800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8년 분할 상환을 할 수 있다지만 액수가 너무 커 부담스러웠다.
“접수비까지 내고 채무 조정할 각오를 했는데, 한 달에 60만 원씩 8년을 갚아야 하니까. 당시 화성에서 누나랑 식당 운영할 때인데 많이 힘들었거든. 광고 보고 빚을 갚고 싶어 신청한 건데 바로 포기했지 뭐.” 결국 빚은 그대로 방치했다.

홍씨는 이번에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제도로 720만원 채무를 탕감받았다. 하지만 4000만원 넘는 다른 채무가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도 법원에서 채무 관련 문서가 우편으로 날아오지만, 그는 펼쳐보지 않는다. 자산관리공사 등에서 채무 조정을 할 수 있는 부채는 업무협약을 맺은 금융권으로 한정된다. 제1금융권은 연체한 지 오래된 채권을 대부업체 등에 매각해버렸기 때문에 일부 악성 채무는 구제받지 못하는 구조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홍씨는 조정 가능한 채무라도 갚기 위해 2013년부터 지금까지 약 6년간 국민행복기금에 월 2만9000원, 자산관리공사에 1만4000원을 꼬박 갚아왔다. 홍 씨는 “빚 독촉하는 대부업체가 한 두 곳이 아닌데 일괄적인 채무 조정 없이 각 빚을 개별로 갚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털어놨다.

거리에서 방황한 20년 “후회스럽다”

지금 홍씨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혼자 산다. 새벽마다 인력시장에 나가 줄을 선다. 하루 일당 10만원을 받고, 한 달 평균 150만~200만원을 번다. 가장 큰 지출은 40만 원짜리 월세와 부식비, 그리고 10만원 짜리 보험이다. 홍 씨 이름으로 금융자산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환급보험은 안 들고 실손보험만 든다. 돈을 모아둘 곳이 없으니 평생 저축을 해 본 적이 없다. 최근엔 바뀌었다. 몸이 아파 일하지 못하는 날에 대비해 돈을 조금씩 모아둔다. 나름의 노후대비다.

홍씨는 신용유의자로 산 지난 20년을 두고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좀 더 악착같이 빚을 갚았어야 했다”고 한탄하듯 말했다.
“10년, 20년이 짧은 시간 같지만, 거리에서 방황이 말도 못해요. 일하고 싶어도 못해. 직원으로 채용될 수가 없으니까.”
국가적인 이익을 생각해서라도 젊은 사람들의 부채를 조정해 제자리 찾게 해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내가 젊었을 때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회계사 일을 계속했을 텐데….”홍씨는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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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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