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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차로 변경 허용뒤 반전···추돌사고 오히려 줄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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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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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내에서 차로를 바꾸는 것은 불법이다? 아니다?”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터널 차로 변경, 대부분 불법 #고속도로 10개 터널 시범 허용 #차선, 실선 대신 점선으로 표시 #“승용차·버스·화물차 속도 다른데 #차선 변경 없이 달리다 자주 추돌”

이 질문의 답은 뭘까요. 아마도 대부분 ‘불법’이라고 얘기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정답은 “터널 따라 다르다” 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터널 내에 그어진 차선에 따라 다르다”가 맞겠네요.

사실 2, 3년 전까지만 해도 터널 안에서 차로를 변경하는 건 대부분 불법으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사고나 공사 때 터널 내부에서 차로를 바꾸는 건 예외적으로 허용됐고요. 그 근거는 도로교통법 제22조입니다.

국내 터널은 대부분 차선이 실선으로 그려져 있어 차로 변경을 할 수 없다. [중앙포토]

국내 터널은 대부분 차선이 실선으로 그려져 있어 차로 변경을 할 수 없다. [중앙포토]

이 조항에선 터널 내에서 앞지르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요. 어두운 터널 내에서 과속이나 무리한 끼어들기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한 취지입니다.

하지만 터널 내 차로 변경을 명확히 금지하고 있는 법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앞지르기를 하려면 차로를 반드시 바꿔야만 한다는 점을 근거로 경찰이 현장에서 활용하는 매뉴얼에 아예 차로 변경 자체를 불법으로 적시한 겁니다.

그래서 터널 안에 그어진 차선은 모두 ‘실선’이었습니다. 실선에서는 차로 변경이 금지되는데요. 일부 터널에는 불법 차로변경을 적발하기 위한 무인단속 카메라까지 설치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운전자는 대부분 터널 내에서 차로를 바꾸는 건 불법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듯합니다.

최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일부 고속도로의 터널에서 차로 변경이 허용된 건데요. 현재 차로를 바꿔도 되는 터널은 3개 고속도로에 모두 10개가 있습니다. 경찰청과 한국도로공사가 시범 운영을 해오고 있는 구간입니다.

시범 운영 중인 10개 터널에서는 차선이 점선이어서 차로를 바꿔도 된다. [사진 한국도로공사]

시범 운영 중인 10개 터널에서는 차선이 점선이어서 차로를 바꿔도 된다. [사진 한국도로공사]

대표적인 곳이 동홍천~양양 고속도로에 있는 인제양양터널인데요. 약 11㎞로 국내 도로 터널 중에선 가장 깁니다. 2017년 말 개통한 부산 외곽순환고속도로의 금정산터널도 차로 변경이 허용된 곳인데요. 길이가 7190m로 국내에서 세 번째로 긴 터널입니다.

앞서 2016년 말 완공된 상주~영덕고속도로에는 7개 터널이 점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특히 터널 내 차선을 잘 확인해야 하는데요. 어떤 터널은 차선이 점선으로, 또 어떤 터널은 실선으로 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품 1~7터널까지는 실선이지만, 지품 8·9·10터널은 점선입니다.

그럼 비록 일부이지만 이처럼 터널 내 차로 변경을 허용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무엇보다 추돌사고, 그중에서도 화물차로 인한 추돌사고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터널 내 사고 중 상당수가 화물차가 원인이라고 합니다. 터널 안에서 승용차와 버스, 화물차 등 속도가 서로 다른 차량이 차선 변경 없이 하나의 차로로만 뒤섞여 달리다 보니 차량 간격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추돌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 때문에 차로 변경이 가능해지면 추돌 사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고 하는데요.

도로공사 산하 도로교통연구원의 백승걸 교통연구실장은 “터널 내에서 진로 변경이 안 되다 보니 차량 간격 유지가 어렵고, 시야 확보도 잘 안 된다”며 “그래서 외국에선 대부분 터널에서 진로 변경과 앞지르기를 허용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인제양양터널처럼 기존보다 훨씬 긴 장대터널이 늘어나면서 운전자가 한 개의 차로로만 계속 달릴 경우 자칫 졸거나 주의력이 산만해지는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 3개 고속도로, 10개 터널을 대상으로 2~3년간 시범 운영을 한 결과 실제로 사고가 많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터널을 달릴 때 안전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얘기인데요.

이런 결과에 힘입어 경찰에서는 지난해 8월 터널 내 차로 변경 관련 규정을 바꿨습니다. ▶조명이 일정 기준 이상이고 ▶구간 과속 단속을 적용하고 ▶우측 길 어깨 폭이 2.5m 이상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한 터널에 한해서는 차로 변경을 허용키로 한 겁니다.

물론 앞서 시범운영을 한 10개 터널은 이런 기준을 모두 채우고 있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시범운영 결과, 차선이 실선으로 그어진 터널보다 점선으로 해놓은 터널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며 “향후 사고분석 자료 등을 토대로 조금 더 기준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상황을 보면 앞으로 점선으로 그어진 터널이 더 많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한 가지 약간 걱정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터널 내 차로 변경은 차량 간격 유지나 사고 예방 등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는 게 좋습니다. 터널 안의 조명이 밝다고 해도 야외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둡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안전 강화를 이유로 허용되는 터널 내 차로 변경이 자칫 사고를 더 많이 불러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안 생겼으면 합니다. 운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모두들 안전하고 편하게 터널 속을 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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