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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득 거쳐간 공주감호소 "의사 없어 약밖에 못 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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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에서 조성남 원장(맨 오른쪽)이 22일 오후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환자들의 이곳 생활과 종사자들의 고충 등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에서 조성남 원장(맨 오른쪽)이 22일 오후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환자들의 이곳 생활과 종사자들의 고충 등을 밝히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2일 충남 공주시 국립법무병원(치료감호소). 병원 정문에는 ‘일단정지, 창문 개방’이라는 붉은색 글씨 안내판이 보였다.

안인득 정신감정한 공주치료감호소를 가다

 신원확인을 거치고 철문 2개를 넘어들어갔다. 10여 명 남성 재소자들이 운동장에서 배구를 하고 있다. 흰색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운동장에는 배구 코트와 농구 골대만 있다. 영화에서 본 듯한 근육질의 남성이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침을 흘리며 절뚝거리면서 벽 주변을 걸어 다니는 재소자도 있다.

 지난 17일 경남 진주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안인득(42)은 지난 2010년 이곳에서 한달 머물며 정신 감정을 받았고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진단됐다.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범인 김성수(30)도 이곳에서 한 달간 정신 감정을 받았다. 국립법무병원은 전국에서 유일한 정신질환 범죄자 치료 시설이다. 철창 속 치료 시설까지 언론에 공개한 건 2013년 이후 6년 만이다. 1987년에 지은 탓에 일부 교육장의 지붕이 함석 슬레이트 그대로다.

 이날 오후 일부 재소자들은 일과시간에 컴퓨터 프로그램과 제빵 기술을 익히고 있었다. 이들은 1호(정신질환자)와 2호(약물 중독자), 3호(성도착증 환자)로 분류돼 따로 교육을 받는다. 강의장 인근 벽에 재소자들이 볼펜으로 쓴 것으로 추정되는 ‘술 끊자’는 낙서가 눈에 띄었다.

 제빵 기술 교실에는 ‘정신 건강 10가지 수칙’이 걸렸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 '때로는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강사는 “10가지 수칙을 먼저 읽고 강의를 시작한다”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활하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내 제빵 강의실 내부. 제방교실 강사가 정신 건강을 위한 10대 수칙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내 제빵 강의실 내부. 제방교실 강사가 정신 건강을 위한 10대 수칙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병원 측은 “재소자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예민하게 반응하니 시설만 찍어 달라”고 당부했다. 불편을 감수하고도 내부를 공개한 건 정신질환자 치료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국립법무병원 정신과 전문의 정원은 15명이지만 현재 7명만 근무한다. 재소자(환자)는 1091명이다. 의사 1명이 156명(법정 기준 60명)을 담당한다. 모두 여성 의사여서 거친 환자들을 진료하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의사가 부족해 1200개 병상을 채우지 못한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 원장은 “건물을 신축해서 1200개 병상을 1600개로 늘릴 예정이지만 의사를 못 구해 재소자를 더 받을 수 없다”며 “정신질환자 관리는커녕 약밖에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사가 부족해 3분의 2만 심층 심리상담 치료를 한다. 야간 진료를 해서 이 정도를 유지한다. 3분의 1의 만성질환자는 약물치료만 한다. 게다가 명색이 병원인데, 여기서 해결하지 못해 월 137명의 환자가 대전이나 세종시의 큰 병원으로 출장 진료를 받으러 나간다. 재소자들이 감기에 걸리거나 골절상을 입어도 내과·외과 의사가 부족해 외부로 나가야 한다. 정신질환 진료에 필수적인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장비나 뇌 자극 치료기가 없다. 최신 치료가 불가능하다. MRI 구입에 30억원, 뇌 자극 치료기에 1억원이 필요한데, 이 돈을 확보할 길이 없다. 10년 넘은 뇌파 분석기를 활용한다. 이형섭 국립법무병원 행정지원과장은 “병원에 치료 시설이 부족해 환자(재소자)를 데리고 외부로 진료 받으러 가야 한다”며 “직원이 항상 부족하니 법으로 정해진 휴가도 못쓰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법무병원 의사 수는 치과 등 다른 전공도 포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립법무병원 의사 수는 치과 등 다른 전공도 포함.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의사가 안 오는 이유가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국립법무병원 의사는 70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는다. 개업 의사 수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호성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의사를 채용할 수 없어 국가에서 학비를 대고 정신분석 전문 의사를 육성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국회에서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병동 4층 두 개의 철문을 지나니 간호사들이 있는 통제실이 나왔다. 천장에 붙은 모니터 3개가 수십 개 방과 화장실, 세탁실 내부를 비췄다. 간호 인력 3~4명이 재소자 수십명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의료진이 재소자의 뇌파를 분석하고 있다. 10년 이상된 기기를 쓰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 의료진이 재소자의 뇌파를 분석하고 있다. 10년 이상된 기기를 쓰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병원 5곳이 정신질환자 범죄자를 수용해야 하는데,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국립부곡병원만 40명의 정신질환 범죄자를 수용할 뿐이다. 통사정해서 이 정도를 확보했다.

국내는 의료 서비스가 민간 위주이다 보니 국립정신병원의 의사 처우와 시설 투자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정신질환자 평생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났다는 지적도 있다. 윤정숙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은 국가 의료 서비스가 갖춰져 정신질환자와 정신질환범죄자 치료를 따로 분리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국은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협업이 어렵다 보니 정신질환자 위험성을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 구조”라고 지적했다.

1988~99년 이 병원에서 일하다 국립부곡병원장을 지내고 지난 2월 부임한 조성남 원장은 “자아가 약한 정신질환자는 주변의 무관심을 마음에 쌓아 뒀다가 우발적 범행을 저지르기 쉽다”며 “정신질환자 마음의 댐에 물이 차지 않도록 주변에서 인간적인 접근이 계속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주=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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