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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물로만 수소 만드는 기술 개발···수소경제 탄력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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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투명한 원통에 물을 담고 그 속에 백색의 촉매를 넣은 후 빛을 가해줬다. 그러자 흰색 촉매가 빠르게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표면에서 작은 기포들이 다량 생성되기 시작한다. 마치 투명한 탄산음료를 흔들어 놓은 것 같이 공기 방울이 계속해서 수면으로 올라온다. 빛을 내던 전구의 스위치를 끄니, 그제야 기포 생성이 멈췄다. 이 작은 공기 방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수소. 문재인 정부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차세대 신재생 에너지원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등 국내 공동연구진 #단원자 구리·이산화티타늄 촉매 최초 개발 #저비용·고효율·친환경 ‘세 마리 토끼’ 잡아 #수소 경제 핵심인 수소 생산방법 개선 기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오전 울산시청에서 열린 전국경제투어 '수소경제와 미래에너지, 울산에서 시작됩니다'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2030년 수소경제 상용화를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현재까지도 경제성있는 수소생산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7일 오전 울산시청에서 열린 전국경제투어 '수소경제와 미래에너지, 울산에서 시작됩니다'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2030년 수소경제 상용화를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현재까지도 경제성있는 수소생산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몸속 효소의 원리를 모방해 수소 생산 효율을 기존대비 50% 이상 높인 ‘광(光)촉매’가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기존 백금 소재의 광촉매를 구리로 바꾸고, 이를 원자 단위로 쪼개 수소생산 효율을 높였다. 햇빛과 물만으로 수소 생산이 가능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을 비롯한 국내 공동연구진은 21일 이같은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단원자 구리·이산화티타늄 촉매’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원료가 저렴하고 효율이 뛰어나 향후 수소 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를 주도한 현택환 IBS 나노입자연구단장은 “수소 경제가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저렴하게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연료전지로 저장하는 기술이 필수”라며 “그 시작점인 수소 생산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수소 경제는 출발점에조차 설 수 없다”며 관련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1월 문재인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수소경제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가장 중요한 수소 생산 방식에 대해 학계와 산업계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연구진이 개발한 구리/이산화티타늄 소재의 수소 촉매는 구리 원자를 이산화티타늄 촉매 위에 모래처럼 흩뿌려 수소생산 효율을 높였다. [그래픽제공=기초과학연구원]

연구진이 개발한 구리/이산화티타늄 소재의 수소 촉매는 구리 원자를 이산화티타늄 촉매 위에 모래처럼 흩뿌려 수소생산 효율을 높였다. [그래픽제공=기초과학연구원]

이번 새로 개발된 광촉매는 희귀하고 값이 비싼 백금 대신 구리를 사용해 경제성과 수소생산 효율이 높다.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구리를 원자 단위로 분리한 후 이산화티타늄 위에 모래처럼 흩뿌려, 전달받은 빛의 40% 이상을 수소로 전환하는 고효율의 촉매를 개발했다”며 “신형 촉매 1g은 시간당 약 30mg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어 순수 이산화티타늄 촉매만 사용했을 때보다 생산성이 무려 33배 높아졌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사람 몸 속의 효소에서 촉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현 단장은 “가장 효율적인 촉매는 바로 사람의 효소”라며 “섭씨 37도의 상온과 1기압의 일상적인 환경에서 우리 몸에 필요한 효소를 정확히 만들어낸다”고 밝혔다. 현재 석유화학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부생수소’ 경우 700~1000도, 3~25기압 수준의 고온·고압 환경에서만 생성되지만, 신형 촉매는 효소와 같이 물과 햇빛 등 일상적인 환경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한다. 특히 부산물이 산소뿐이고, 구리 촉매는 재사용이 가능해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구리/이산화티타늄 촉매는 기존 분자수준에서 수소 변환을 유도한 촉매와 달리, 원자단위로 떨어져 있어 원자 표면 전체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만큼 효율이 높다. 분자 수준에서는 촉매 표면에서밖에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픽제공=기초과학연구원]

구리/이산화티타늄 촉매는 기존 분자수준에서 수소 변환을 유도한 촉매와 달리, 원자단위로 떨어져 있어 원자 표면 전체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만큼 효율이 높다. 분자 수준에서는 촉매 표면에서밖에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픽제공=기초과학연구원]

남 교수는 “기존 촉매는 분자 수준으로 크게 뭉쳐있어 분자 표면에서만 반응이 일어나지만, 원자를 따로 떼어놓으면 원자 표면 전체에서 반응이 일어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원료가 된 이산화티타늄과 구리는 가격이 매우 저렴하고 재활용이 가능해 경제성·환경성·효율 세 가지 토끼를 잡은 연구로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진은 “생산된 수소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연료전지로 만드는 기술도 함께 발전해야 수소경제가 완성되는 것”이라며 관련 기술 개발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터리얼스’에 게재됐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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