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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칼집에 있되 쓰는 법 잊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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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군 장성 진급 신고를 받은 뒤 “칼은 뽑았을 때가 아니라 칼집 속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다”며 “강한 힘을 통해 평화를 이끄는 군이 돼 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말은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발언과 대비된다. 브룩스 전 사령관은 지난해 6월 한미동맹포럼 초청 연설에서 “칼을 칼집에 넣어놓고 칼을 쓰는 법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칼은 함부로 뽑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필요하면 꺼내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고수의 칼이 칼집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상대도 조심한다. 군사력도 함부로 쓰진 않되 필요할 경우 사용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칼집 속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다”는 말은 자칫 군에 “칼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칼 쓰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까닭이다.

외국 정상들은 군의 실전 태세를 강조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와 승리(Winning)를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2017년 11월 연합작전지휘센터에서 “‘싸울 수 있는 군대(能打仗), 싸워서 이기는 군대(打勝仗)’를 만드는 것은 당과 인민이 군에 부여한 신시대 사명으로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과 지난 11일 한·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며 비핵화 협상의 진로가 불투명해졌다. 북한이 국제 제재에 반발해 미사일 실험 등으로 도발한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될 수 있다. 그런 움직임도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한반도의 평화 기류가 공고한 것이 아니라며 “강력한 군력에 의해서만 평화가 보장된다”고 말했다. 지난 17일엔 북한 국방과학원이 진행한 신형 전술 유도무기 사격 시험을 참관하며 “마음만 먹으면 못 만들어내는 무기가 없다”고 했다.

김정은의 말처럼 한반도 평화는 공고하지 않은 만큼 강한 군사력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강한 군사력은 우수한 무기와 장병들의 사기가 뒷받침돼야 한다. 김정은은 북한군의 대비 태세를 단단히 하는데 문 대통령은 북한을 의식해 군과 관련해서는 유독 소극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열린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2년 연속 불참했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으로 숨진 5명의 해군 장병과 2010년 북한의 기습 공격으로 전사한 46명의 천안함 용사 등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지난해 7월 해병대 기동 헬기 마린온이 추락해 5명이 순직했을 때는 분향소에 조화 한 개만 달랑 보냈다.

군인은 나라에 충성한다는 영예를 누구보다 중시한다.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군인과 유가족에게 최고의 예우를 하는 건 군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으면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인들에게 용감하게 싸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군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지휘관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문 대통령이 군을 제대로 예우하고, 싸워서 이기는 군을 확실하게 육성할 때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언제든 도발할 수 있는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서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로서 군이 빈틈없는 경계를 유지해 도발에 강력히 응징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게 할 책무가 있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