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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대표도 직원도 점퍼·후드…“편하잖아” 판교 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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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엔씨 NC점퍼 일색 “여기 야구장?” #밤샘 제격인 후드 단체로 입기도 #회사 로고 담아 소속감도 고취 #네이버 대표, 후드 차림 CES 발표

점퍼와 김택진의 관계, 그것이 궁금하다

지난달 18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신구장 개장식에 참석한 김택진(사진 맨왼쪽) 엔씨소프트 대표. 그는 자신이 입은 'NC다이노스' 점퍼를 직원 1500여 명에게 선물했다. [사진 엔씨소프트]

지난달 18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신구장 개장식에 참석한 김택진(사진 맨왼쪽) 엔씨소프트 대표. 그는 자신이 입은 'NC다이노스' 점퍼를 직원 1500여 명에게 선물했다. [사진 엔씨소프트]

김택진(52ㆍ사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해 사업 보고서 기준, 연봉 138억원을 쓸어담은 남자다. 그런데 그가 선호하는 뜻밖의 옷차림은 점퍼다. 김 대표는 엔씨가 운영하는 프로야구 구단 ‘NC다이노스’의 점퍼와 유니폼을 수시로 입는다. 지난달 18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신구장 개장식과 같은 달 23일 열린 개막전에서도 김 대표의 유니폼 차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한은행 MYCAR KBO 리그'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 전이 열린 지난달 23일 창원시 창원NC파크에서 열렸다. 경기에 앞서 NC 김택진 구단주가 개막 인사를 하고 있다. 창원=양광삼 기자

'신한은행 MYCAR KBO 리그'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 전이 열린 지난달 23일 창원시 창원NC파크에서 열렸다. 경기에 앞서 NC 김택진 구단주가 개막 인사를 하고 있다. 창원=양광삼 기자

야구 사랑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지난 2012년 구단 창단 이후, 구단 행사에서는 빠짐없이 점퍼나 유니폼을 입고 있다. 특히 이번 개막전에는 엔씨소프트 직원 1500여 명도 함께 했다. 이 회사 3400여 명의 직원 중 경기 관람을 희망한 이들이다. 이들 모두 ‘NC다이노스’ 점퍼를 입고 있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점퍼는 물론 식사와 교통편 등도 모두 회사가 부담했다. 점퍼 구입에만 1억5000만원 이상이 들었다. 따져보면 점퍼 하나당 10만원 꼴이다.

이날 이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엔씨소프트 본사의 직원 카페와 구내 식당은 야구장인지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점퍼를 받은 직원들 대부분이 회사에서도 점퍼를 노상 입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장을 찾지 않은 직원 중 일부에선 “점퍼 때문에라도 (야구장에) 갈 껄 그랬다”는 푸념이 나왔다. 김 대표가 거금을 들여 점퍼를 선물한 건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오너인 김 대표는 물론 평사원까지 모두 동일한 옷을 입고 같은 방향으로 노력한다는 점을 야구 점퍼를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게 김 대표의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고 말했다.

판교의 드레스코드, 후드티 아니면 점퍼 

서울 도심이나 강남의 오피스 타운을 지배하는 옷차림이 짙은 색 정장이라면 판교의 주류 패션은 회사나 소속 부서의 로고 등이 담긴 단체복(유니폼)이나 ‘후드 집업(이하 후드ㆍ모자 달린 옷)’이다. 편안한데다, 소속감을 높일 수 있어서다. 17일 신분당선 판교역 일대도 다양한 디자인의 ‘회사 후드’를 입은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흡사 점퍼에 대학교의 이름과 학과명을 새긴 ‘과잠’을 연상케 했다.

‘정통 금융인’도 정장을 벗고 후드티로

카카오뱅크의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용우 대표(사진 왼쪽)와 윤호영 대표. [사진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의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용우 대표(사진 왼쪽)와 윤호영 대표. [사진 카카오뱅크]

판교의 자유로운 복장은 30년 가까이 금융권에서 근무한 이용우(사진ㆍ55) 카카오뱅크 대표도 후드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투자신탁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 등을 지낸 이 대표는 2015년 카카오뱅크의 식구가 됐다. 카카오뱅크에 합류하기 전, 그는 늘 짙은 색깔의 정장을 입었다. 그게 그가 살아온 ‘금융권’의 드레스 코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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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그가 정장을 입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판교 H스퀘어 5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의자에는 늘 등에 흰색 글씨로 ‘카카오뱅크(kakao bank)’라고 새겨진 회색 후드가 걸려있다. 카카오뱅크 측은 “대표님 뿐 아니라 640명 회사 전 직원이 회사 후드를 즐겨 입는다”고 소개했다. 덕분에 정장을 입고 오는 직원은 ‘선을 보러 가는 거냐’는 놀림 아닌 놀림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

홍콩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카카오뱅크에 합류한 이일표 매니저는 입사 첫날 입사 동기 10명 중 유일하게 정장을 입고 왔다가 인사팀 관계자로부터 “복장불량이예요”란 농담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카카오뱅크 직원들이 그레이 컬러 회사 후드를 입고 회의 중이다. [사진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 직원들이 그레이 컬러 회사 후드를 입고 회의 중이다. [사진 카카오뱅크]

후발 금융사인 카카오뱅크의 옷차림새는 전국은행연합회(이하 은행연합회) 모임 등에서도 단연 튀는 존재다. 다른 은행 관계자들은 모두 포멀한 정장 차림이지만, 카카오뱅크 측은 비즈니스 캐주얼 등을 입고 은행연합회 회의 등에 참석해서다. 카카오뱅크 측은 “소위 제1, 제2 금융권으로 대변되는 기존 금융사들과 경쟁하려면 기존 패러다임과는 다른 사고가 필요하다”며 “자유로운 복장은 파격적인 서비스로 고객들에게 다가선다는 게 우리의 목표를 보여주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전했다.

개발자들, "그냥 점퍼가 편하다고!"

판교에서 유독 회사 후드나 점퍼 같은 단체복이 인기를 끄는 건 그 실용성과 단순함이 개발자들에 먹혀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후드 등은 입었을 때 편안하다. 밤샘 작업이 많은 이들에겐 제격이다. 또 옷을 고르는 데 별다른 노력이 들지 않는다. ‘0과1’에 기초한 2진수 언어에 익숙한 개발자들에겐 옷을 고르는데 들이는 고민조차 귀찮은 경우가 많다. 한 예로 미국 애플의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 역시 생전 늘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만을 입었다.

회사 후드를 입고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쇼에 등장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 네이버]

회사 후드를 입고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쇼에 등장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 네이버]

한성숙 대표도 애용하는 네이버 후드티 

후드 같은 단체복을 통해 단합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판교밸리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후드티를 맞춰주는 이유 중 하나다. 한성숙(52) 네이버 대표 역시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쇼(CES) 등 행사 때마다 자사의 로고가 새겨진 후드 등을 입고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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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코드 하나로 애사심을 고취해보자는 깊은 속뜻도 사실 숨어 있다. 요즘 들어 판교 밸리 기업의 가장 큰 숙제는 우수한 개발자들의 잦은 이직을 줄이는 일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의 분석에 따르면 카카오의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4.7년, 넷마블은 3.9년에 각각 그친다. 판교 밸리 기업들이 유달리 '쎄끈한' 후드티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다 같은 후드가 아니다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호평받는 카카오페이의 후드. 자세히 보면 손목엔 회사 로고가, 주머니 부분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중 라이언이 새겨져 있다. [사진 카카오페이]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호평받는 카카오페이의 후드. 자세히 보면 손목엔 회사 로고가, 주머니 부분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중 라이언이 새겨져 있다. [사진 카카오페이]

회사 후드에도 개성은 있다. 카카오페이의 후드는 손목과 주머니에 각각 카카오페이 로고와 카카오페이의 캐릭터(라이언)을 넣었다. 이 회사 직원인 이남의(29)씨는 “회사 밖에선 구할 수 없는 디자인이라 좋다”며 “판교 거리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잘 모르는 이라도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판교 기업들은 노조도 단체 후드티를 맞춰 입는다. 네이버 노조(노조명: 공동성명)는 초록색, 카카오(크루유니온) 노조는 노랑색, 스마일게이트(SG길드)는 주황색, 넥슨(스타팅포인트)은 파랑색이다.이수운 네이버 노조 홍보국장은 “노조하면 떠오르는 ‘빨간 조끼’에 대한 일반 직원들의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후드를 단체복으로 정했다”며 “노조원 중 상당수를 개발자들이 차지하고,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옷이 후드라는 점도 감안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판교 내 주요 기업의 노조 관계자들. 파랑색이 넥슨 노조, 노란색이 카카오 노조, 초록색이 네이버 노조, 주황색이 스마일게이트 노조의 상징색이다. [사진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판교 내 주요 기업의 노조 관계자들. 파랑색이 넥슨 노조, 노란색이 카카오 노조, 초록색이 네이버 노조, 주황색이 스마일게이트 노조의 상징색이다. [사진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

판교=이수기ㆍ김정민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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