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훈련소 '젠지 서울HQ' 가보니
“오면 살려! 지금 오면 날 살릴 수 있어!”
지난 5일 중앙일보가 찾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젠지(Gen.G) 사옥 1층. 문을 열자 1인칭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 프로게임 구단인 펍지(PUBG)팀 선수 태민과 킬레이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 ‘찰칵 찰칵’하는 분주한 마우스 소리와 차진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연습실을 채웠다. 게임 속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실감나는 전투는 한동안 계속됐다.
이곳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e스포츠 기업 '젠지'가 지난해 11월 한국에 문을 연 프로게이머 연습시설이다. 세계적 수준의 장비를 갖춰 e스포츠계 ‘태릉선수촌’으로도 불린다. 7층 규모 1157㎡(350평) 공간에서 롤(LoLㆍ리그오브레전드)ㆍ오버워치ㆍ배그 종목 현직 프로게이머 32명이 훈련받는다. 11명의 감독과 코치, 직원 25명 등 상주 인원만 80여명이다.
2017년 창단한 젠지는 지난해 포브스 선정 ‘가장 가치 있는 게임단’ 중 7위(1억1000만 달러)에 오른 e스포츠 구단이다. 지난 17일엔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와 축구 스타 혼다 케이스케가 설립한 ‘드리머스 펀드’ 등으로부터 4600만 달러(약 521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이곳에서 연습하는 프로게이머는 데뷔부터 생활까지 아이돌이나 스포츠 스타와 비슷한 생활을 한다. 공개 모집에 지원하거나, 아마추어 대회ㆍ온라인 랭킹에서 스카우터 눈에 들면 테스트를 거쳐 입단한다. 게임계의 '길거리 캐스팅'인 셈이다. 실력을 키우기 위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데뷔 전인 연습생들도 따로 관리한다. 에이전시에 숨겨놓은 비밀병기 아이돌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것처럼, 젠지에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롤팀 연습생 3명이 훈련받고 있다.
현역 게이머는 전원 5분 거리에 있는 숙소에서 머물며 이곳으로 출퇴근을 한다. 데뷔 1주년 등 기념일엔 팬들의 선물이 몰리고 게이머가 등장하는 티셔츠와 굿즈를 팬들에게 파는 것도 유사하다. 젠지 선수들의 평균 나이는 21세, 동체 시력 등 신체 조건이 중요해 젊을 때 전성기를 누린다는 점도 닮았다.
선수들의 일과는 느지막히 시작한다. 하지만 새벽까지 치열하다. 실전 리그를 대비한 '스크림'(Scrimmage) 연습이 하루에 2~3차례씩 잡혀있다. 스크림은 중국ㆍ일본ㆍ대만 등 아시아 16개 팀과 돌아가며 하는 연습 경기를 뜻한다. 스크림 전후엔 전략 회의와 피드백이 오간다. “거기서 양각(양쪽에서 공격받는 상황)을 잡아줬으면 수류탄 작업해서 쉽게 닦을(이길) 수 있었다”는 식이다.
다른 게임으로 본 게임을 연습하는 경우도 있다. 5일 오후 2시쯤 찾은 연습실에선 ‘코박(Kovaak) 테스트’를 하고 있는 오버워치팀 ‘서울 다이너스티’의 게이머 '일리싯'을 만날 수 있었다. 코박 테스트는 화면 이곳 저곳에 나타나는 빨간 상자를 맞혀 총싸움(FPS) 게임의 명중률을 높이는 게임이다. 일리싯 옆에 바짝 붙어 일대일 지도를 하는 코치의 컴퓨터엔 선수별 마우스 감도(EDPI), 정확도, 1분간 깬 상자 수를 기록한 차트가 빼곡했다.
훈련 외 시간에는 개인 방송도 진행한다. 게임 산업이 최근 구독 문화로 확장되면서, 개인 방송은 선수들의 주가와 인지도를 높이는 수단이 되고 있다. 젠지 선수들도 모두 개인 채널을 갖고 있고, 공식 채널을 통해 팀별 정기 방송도 진행한다. 사옥엔 이런 방송 활동을 위한 스트리밍 룸 5개가 구비돼 있다. 프로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하면 자연스레 게임 방송 진행자(BJ)로 이직하는 최근의 트렌드 덕에 은퇴한 선수도 자유롭게 스트리밍 룸을 쓰러 온다.
사옥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선수들을 위해 점심ㆍ저녁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과 휴식 공간, 운동 시설도 잘 마련돼있다. 식당은 “반찬은 고기만 있으면 된다”는 어린 선수들 입맛에 맞춰 갈비치킨, 삼겹김치찜 같은 고기 반찬이 많다. 휴식 공간엔 연습을 끝낸 선수들이 자거나 늘어져 쉴 수 있는 소파와 안마의자가 있다. 사옥 5분 거리 헬스장에서 체력 단련을 받는 선수들도 많다.
젠지가 이 같은 전문 연습 시설을 만든 것은 최근 e스포츠 산업이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급성장 하고 있어서다. 아놀드 허 젠지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항공 회사들이 승객 5000만명을 모으는데 64년이 걸렸지만 포트나이트(배틀로얄 게임)는 불과 4개월 만에 5000만명 사용자를 모았다”며 “e스포츠 산업의 전망이 매우 밝은 만큼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수’들을 위한 시설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