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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뉴스]비장애인보다 멋진 삶을 사는 당신, 장애인 수영선수 윤성혁

중앙일보

입력

1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재활스포츠센터에서 뇌성마비를 극복한 장애인 수영선수 윤성혁(23)씨가 휠체어를 타고 근육운동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실제 수영 모습 [최정동 기자. SK텔레콤 유튜브 캡처]

18일 오후 경기 고양시 재활스포츠센터에서 뇌성마비를 극복한 장애인 수영선수 윤성혁(23)씨가 휠체어를 타고 근육운동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실제 수영 모습 [최정동 기자. SK텔레콤 유튜브 캡처]

‘2분51초였던 50m 자유형 기록을 5년 만에 1분4초로 단축’

수영선수 윤성혁(23)씨가 일궈낸 기록이다. 누군가에게는 쉽고 당연해 보일 수 있는 숫자지만 지체장애 1급에 휠체어를 타며 팔의 근력만으로 수영을 해야 하는 윤 선수에게는 피와 땀이 담긴 수치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비장애인보다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윤 선수를 만났다.

◇왼팔에만 의존했던 4살 아이, 금메달리스트로

18일 오후 4시 경기 고양시 재활스포츠센터에서 만난 윤선수는 최근 만난 사람 중 가장 웃음이 많은 20대 청년이었다. 윤 선수의 모친 박영숙(50)씨는 "성혁이는 태어나자마자 몸이 약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다"며 "갑작스럽게 호흡곤란이 왔는데, 호흡기를 늦게 다는 바람에 저산소증과 합병증이 왔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윤선수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박씨에게 포기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씨는 윤선수를 포기하지 않은 채 중환자실에서 33일 동안 함께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윤선수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했고 자가호흡이 가능해지면서 퇴원까지 할 수 있었다. 박씨는 "이후 성혁이가 2살이 될 때까진 발달이 조금 느리다고만 생각했지, 뇌성마비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때 호흡기만 조금 일찍 달았어도…"라며 당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드러냈다.

운동 중인 장애인 수영선수 윤성혁 씨의 모습. 최정동 기자

운동 중인 장애인 수영선수 윤성혁 씨의 모습. 최정동 기자

그렇게 윤선수는 4살 때 재활운동의 일환으로 처음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윤 선수는 "어렸을 때는 오른손과 양다리를 모두 쓰지 못해 왼팔에만 의존해 배밀이를 하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활 및 작업치료와 함께 수영을 시작하면서 신체기능이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고, 재활을 넘어 수준급의 수영 실력을 드러내며 고등학교 때부터 선수로 활동했다.

고양시 장애인 수영선수단에 소속돼 활동하던 중 실력을 인정받아 2016년 10월부터는 (주)테크윙 장애인 실업팀에서 활동 중이다. 지난 2018년 5월에 제8회 경기도 장애인 체육대회 자유형 50m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국가대표 목표로 매일 4시간 이상 훈련

윤 선수의 연습량은 비장애인들도 감당하기 힘든 정도였다. 윤 선수는 매일 4시간 30분 동안 수영과 근육운동을 병행한다고 한다.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주말에도 또 다른 연습장으로 수영을 하러 간다. 윤 선수는 "2017년 슬럼프가 와 기록도 안 나오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수영이 아니면 장애인인 내가 이 세상을 이렇게 당당하고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없을 거란 마음으로 나 자신을 다잡았고, 이젠 모든 훈련과 경기가 즐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윤 선수는 60대가 돼서도 수영을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한다.

뇌병변 극복 수영선수 윤성혁 씨가 18일 고양시 재활스포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뇌병변 극복 수영선수 윤성혁 씨가 18일 고양시 재활스포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윤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이유도 경기도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서 수영 연습을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윤 씨는 "현재 연습을 하는 고양시 재활스포츠센터의 수영장 길이는 25m라 실전처럼 연습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천 장애인 선수촌은 수영장 길이가 50m이고 다른 선수들과 함께 연습할 수 있으니 개인 기록을 단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윤 선수는 지난 2012년도 평창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166개국 외국 선수를 초대한 행사에 참여해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좋은 훈련 환경을 보고 국가대표라는 목표가 생겼다"며 "올해 초부터 이를 목표로 새로운 코치 선생님과도 호흡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승기 콘서트 가는 것이 평생소원”

윤 선수는 "수영 말고 또 다른 바람이 있냐"는 질문에 단번에 "가수 이승기의 콘서트를 가고 싶다"고 말했다. 윤 선수는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다른 20대 청년들처럼 걸그룹이 아닌 이승기를 꼽으며 "TV에 나와 보여주는 성품을 보고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선수가 최근 친누나 윤혜령(24)씨와 함께 참여한 SK텔레콤 고객참여 프로그램 '0순위여행'에서 여행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선택한 이유도 가수 이승기가 모 프로그램에서 여행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0순위여행에서 혜령씨는 VR(가상현실) 카메라 장비를 매고 LA 전역을 다니며 윤 선수의 다리가 돼줬다. 이로 인해 윤선수는 VR 안경을 끼고 누나와 함께 실제 LA를 여행하는 것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생생한 간접여행을 할 수 있었다. 두 남매의 우애가 담긴 이 영상은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윤 선수는 "콘서트장에는 나처럼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과 시설이 구비돼 있지 않다"며 "이제 기술이 발달해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경험할 수 있던데, 그런 기술을 통해서라도 꼭 이승기의 콘서트장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윤 선수는 오는 21일 '2019 충청북도지사배 전국장애인수영대회'에 참가한다. 윤 선수는 "현재 목표는 개인 기록을 59초 미만으로 단축하는 것"이라며 "동메달을 따 어머니 목에 걸어드리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고 말했다.

이어 "차근차근 기록을 단축해나가서 2020년 도쿄패럴림픽에는 꼭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싶다"며 "장애인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나의 행복한 삶으로 증명할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어머니 박씨도 "성혁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는 12곳의 근육을 늘리는 수술과 함께 골반뼈를 이식하는 대수술을 7시간 넘게 받기도 했다"며 "여러 고비를 씩씩하게 넘기고, 수영선수로 밝게 생활하는 성혁이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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