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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폼페이오 콕 짚어 바꾸라 한 이유…최고존엄 비난했기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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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독재자’로 지칭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 대해 북한이 18일 교체를 요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ㆍ미 비핵화 협상의 실무 총책임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10월 7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트위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10월 7일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트위터]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앞으로 미국과의 대화가 재개되는 경우에도 나는 폼페이오가 아닌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이 우리의 대화상 대로 나서기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권 국장은 “하노이 수뇌회담의 교훈에 비추어보아도 일이 될 만하다가도 폼페이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나군(날아가고) 했다”며“앞으로도 내가 우려하는 것은 폼페이오가 회담에 관여하면 또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7일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뉴스1=카일리 앳우드 트위터]

지난해 10월 7일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뉴스1=카일리 앳우드 트위터]

권 국장은 폼페이오가 교체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지난 12일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때문으로 들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 내용을 의도적으로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는 것인지 그 저의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정말로 알아듣지 못했다면 이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폼페이오 장관은 직후 김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다시 거론하며 공을 북한으로 넘겼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폼페이오를 콕 짚어서 바꾸라고 요구한 속내는 ‘최고존엄’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이다. 북한을 향해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날 선 발언을 이어가는 이는 폼페이오 외에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있다. 볼턴은 17일(현지시간)에도 3차 북ㆍ미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런데도 북한은 수퍼 매파인 볼턴에 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폼페이오를 향해 “일이 꼬인다”고 지목했다. 폼페이오와 볼턴의 차이는 김 위원장을 직접 비난했는가의 여부다.

폼페이오 장관은 앞서 지난 9일(현지시간) 상원 세출위원회 소위원회에 출석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불렀는데, 김정은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쓰겠는가’라는 민주당 패트릭 리히 의원의 질문에 “물론이다”라며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고 답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최근 청문회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을 독재자라고 한 걸 최고 존엄 모독으로 간주해 협상 상대로 여기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이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이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ㆍ미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이 미국 측 책임자의 교체를 공개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율권이 없는 북한 체제 특성상 권 국장의 발언은 당연히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단 북한은 수위를 조절했다. 외무성의 공식 성명이 아닌 국장급 인사의 발언 형식을 통해 폼페이오를 비난했다. 권 국장은 문답 말미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관계가 여전히 좋고,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고 거론했다. 비난 대상을 폼페이오로 한정했을 뿐 트럼프 대통령으로까지는 올리지 않은 셈이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북한이 당 전원회의(10일)와 최고인민회의(11~12일)에서 미국통인 최선희 부상(제1 부상으로 승진 추정)을 약진시킨 건 향후 미국과 협상에 김영철 당 부위원장을 대신토록 하려는 포석”이라며 “자신들도 바꿨으니 상대를 바꿔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용수ㆍ백민정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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