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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붕괴]황금알 낳는 강원랜드 카지노, 폐광지 회생엔 “절반의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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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지역 회생을 위해 만들어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카지노 및 호텔 건물 외부 모습. 박진호 기자

폐광지역 회생을 위해 만들어진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카지노 및 호텔 건물 외부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3일 오후 8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카지노. 휘황찬란한 조명 불빛이 휘감은 고층 건물 앞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수십 대가 줄지어 있었다. 카지노 매표소로 이동해 입장권을 구매하니 번호가 8000번대였다. 카지노 안 곳곳에선 ‘띠리링띠리링’ 슬롯머신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블랙잭과 바카라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⑦설립 21년 강원랜드 빛과 그림자 #카지노 수익 25%인 1조1246억 폐광지 투입 #복합리조트 등 최고 수준 관광 인프라 구축 #잇단 대체사업 실패로 “지역에 도움 안돼” #인구 감소 못막아 정선 청년 유출 전국 2위 #“강원랜드 의존증 벗고 자생력 갖춰야” 여론

한 입장객은 “오늘은 평소보다 사람이 적다”며 “주말에는 슬롯머신 빈자리가 날 때까지 1시간가량 돌아다녀야 한다”고 귀띔했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대로였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8000명가량이다. 지난해 강원랜드 전체 매출 1조4381억원(영업이익 4307억원)의 89%가 카지노다.

강원랜드 카지노 인근인 정선군 사북읍에는 전당사 등이 몰려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랜드 카지노 인근인 정선군 사북읍에는 전당사 등이 몰려 있다. 박진호 기자

비슷한 시각 카지노에서 2.5㎞ 떨어진 사북읍내. 먼발치서 보면 흡사 중소도시의 번화가였다. 가까이 가니 출장마사지와 유흥주점, 다방, 전당포 간판만 눈에 들어왔다. 주변 음식점들은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도 없었다. 인근 고한읍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상가 임대라는 안내문을 붙인 곳이 적잖았다.

업소 출입문에 붙인 ‘문태곤 출입금지’, ‘문사또 출입금지’라고 적힌 안내문이 눈길을 끌었다. 안내문은 “우리 업소는 지역 발전을 저해하고 주민을 업신여기는 문태곤 강원랜드 사장의 이용을 거부합니다”고 했다. ‘고한사북남면신동 지역 살리기 공동추진위원회(이하 공추위)’가 주도한 ‘안내문 붙이기 투쟁’에는 지역의 600개 업소가 동참했다.

지난 3일 찾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시장. 시장 안은 지나는 사람이 없어 텅텅 비었고, 여러 곳의 점포에 ‘상가 임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3일 찾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시장. 시장 안은 지나는 사람이 없어 텅텅 비었고, 여러 곳의 점포에 ‘상가 임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박진호 기자

한국 석탄산업의 메카에서 폐광 흉가촌으로, 이제는 국내 유일 카지노와 복합리조트로 도시로 탈바꿈한 사북과 고한. 카지노·리조트 운영 주체인 강원랜드는 지역 경제에 빛이지만 그림자도 드리우고 있었다. 강원랜드는 1995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의 산물이다. 정부는 1989년 채산성이 낮은 영세 탄광 폐쇄(석탄산업합리화 정책)로 폐광지역인 태백시·정선군·삼척시·영월군의 경제가 무너지자 폐특법으로 카지노업을 허가했다.

공기업 강원랜드는 98년에 설립됐고, 2000년 고한읍에 스몰카지노를 개장했다. 카지노는 대박을 냈다. 2년여의 카지노 당기 순이익이 4800억원이나 됐다. 강원랜드는 이 자금을 바탕으로 2003년 현재의 카지노를 열었다.

카지노의 원점은 폐광지역의 회생이다. 모델은 폐광으로 침체한 지역 경제를 카지노로 살린 미국 덴버시였다. 역발상이자 극약 처방이었다. 강원랜드는 폐석더미의 도시를 “강아지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태백시) 황지 시장 좌판 하나면 명동 땅도 산다”는 석탄산업 전성기로 다가서게 했을까.

강원랜드 설립 21년을 맞아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는 전문가들 얘기가 나온다(『20년 전 그 약속』,공추위 백서). 1997년~2017년의 20년 동안 폐광지역 대체산업 육성 등에 투입된 공공자금은 3조501억원에 이른다. 강원랜드 카지노 이익금(법인세차감전 순이익)의 25%인 폐광기금 1조1246억원과 탄광지역개발사업비 7113억원, 폐광지역진흥비 5403억원 등이다. 폐특법의 지역 개발사업은 수백건을 헤아렸다.

강원랜드 카지노가 있는 호텔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랜드 카지노가 있는 호텔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랜드는 폐광지역 관광 인프라 구축에 한몫했다. 사북과 고한에는 호텔과 카지노 외에 골프장, 스키장, 워터파크를 갖춘 하이원리조트를 조성했다. 영월군의 동강시스타는 강원랜드와 한국광해관리공단, 강원도, 영월군이 1538억원을 출자해 세운 리조트다. 2011년 3월 골프장 개장 이후 콘도와 스파 등 영업을 해왔다. 역시 출자회사인 삼척시 도계읍의 철도 테마 리조트 하이원 추추파크도 빼놓을 수 없다. 폐광지역은 정선의 하이원 리조트를 중심으로 반경 1시간 권 내에 전국 최고 수준의 문화 관광 인프라를 자랑한다.

하지만 동강시스타는 경영난 등으로 법정관리를 받아오다 최근 매각됐다. 하이원 추추파크는 개장 이후 적자에 시달렸다. 2015년 40억원, 2016년 35억원, 2017년 30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사업 실패가 이어지면서 강원랜드가 폐광지 개발과 경제 회생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태백 통리마을에서 만난 이규영(65)씨는 “석탄 합리화정책 이후 광부들이 지역을 떠나자 강원랜드에서 관광과 관련된 여러 사업을 추진했지만 하는 사업마다 적자만 봤다”며 “실제로 폐광지에 도움이 되는 사업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시장 인근에 있는 조형물.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1980년대 탄광촌에서는 ’강아지도 만원짜리 물고 다닌다“ ’(태백시) 황지시장 좌판 하나면 명동 땅도 산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박진호 기자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시장 인근에 있는 조형물.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1980년대 탄광촌에서는 ’강아지도 만원짜리 물고 다닌다“ ’(태백시) 황지시장 좌판 하나면 명동 땅도 산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박진호 기자

강원랜드는 지역 식자재 구매, 건설공사 지역 업체 수주도 하고 있다. 채용 시 지역주민 우대 정책도 편다. 협력업체를 포함한 5419명의 직원 중 64.6%(3501명)가 폐광지역 출신이다. 하지만 지난해 대규모 채용 비리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은 물론 국민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원학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강원랜드 설립 취지는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의 주춧돌이나 허브 역할을 통해 다양한 대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었지만 비슷한 내용의 사업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역할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지역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닌 정부에서 내려보낸 사람이 사장이 되고, 폐광지를 살리라고 만들어 놓고 세금을 정부가 많이 가져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폐광지에 대한 막대한 예산 투입과 지역민 채용도 인구 유출을 막지는 못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1989년 태백·삼척·영월·정선의 인구는 41만456명으로 강원도 전체의 24.1%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4개 시군 인구는 19만614명으로, 도 전체의 12.4%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선군 청년 인구 순유출 순위는 전남 고흥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정선에 살았던 5~9세 100명 중 55명이 20년간 외지로 빠져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태백은 7위, 영월은 15위, 삼척 45위였다. 폐광지역 4곳 모두가 청년 순유출 50위 안에 포함됐다. 지역 경제도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김태호 공추위원장은 “탄광이 있던 시절이 주변 환경은 안 좋았지만, 행복지수는 훨씬 더 높았다”며 “지금은 스키장과 카지노, 호텔, 콘도, 유흥업소 등 다양한 시설이 있어 화려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정작 지역 경기는 바닥이다. 카지노가 들어선 뒤에도 지역 인구가 점점 줄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인근에 남아 있는 동원탄좌 옛 건물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강원랜드 인근에 남아 있는 동원탄좌 옛 건물 모습. 박진호 기자

폐특법 시효는 2025년이다. 1995년 말 10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이후 두 차례 연장됐다. 지금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개장을 희망하는 지자체는 한둘이 아니다. 강원랜드의 카지노 독점은 깨질 수도 있다. 시효 6년을 앞두고 정부, 강원랜드, 지역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대비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21년간 탄광에서 근무해 온 윤철근(50)씨는 “탄광이 문을 닫더라도 광부들이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없다 보니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일한다”며 “지금이라도 기업이나 공장 등을 유치해 주민들이 일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폐광지 인구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폐광지역이 강원랜드 의존증에서 벗어나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공추위 백서는 “강원랜드 개발사업만 완성되면 폐광지역을 회생시킬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해왔지만, 결과는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며 “이제 안으로 눈을 돌려 다시 찾고 싶은 관광도시를 만드는 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선·태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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