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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달항아리 한 점 모셔두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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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달항아리 한 점을 모셔 뒀다. 거실 한 켠을 등지고 앉아 식구들의 눈길을 듬뿍 받고 있다.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면 마치 보름달이 내려앉은 것 같다. 달항아리라는 정겨운 이름을 누가 붙여 줬을까.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조선시대 실생활에 쓰이던 백자 대호(大壺)를 그렇게 불렀단다. 둥근 형태나 흰색이 주는 푸근함 때문에 이 분야 권위자인 최순우 선생은 ‘잘 생긴 맏며느리를 보는 것 같다’고 했던가. 푸근함만이 아니라 깔끔하고 옹골진 면도 겸비한 며느리 같다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형태와 색의 단순미와 도자 특유의 고졸(古拙)함에 매료되어, 일찍부터 달항아리를 두고 한국적 정서에 꼭 들어맞는 아름다움이라고 예찬했나 보다. 눈으로 봐도 좋지만 손으로 쓰다듬어 보면 더 좋다. 가마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처럼 따스하면서도 부드럽다.

달항아리에 끌려 눈길을 주다가 묘한 기운을 느낀 적도 있다. 에너지가 스며나온다고 할까. 1300도가 넘는 가마 속 불길을 사흘 밤낮 동안 온몸으로 받아냈으니, 그 내공(內功)이 어디 가겠는가. 그런 불길로 가공한 한점의 도자는, 붓질이나 조각칼 끝에서 완성되는 미술품과는 다를 것 같다. 물레를 돌려 흙을 그릇 모양으로 성형하기까지의 손길은, 도자 굽기 작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불길 속에서 형상을 지켜내며 곱게 발색(發色)한 것만 작품이 된다. 불 때는 정성이 아무리 지극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헛일이 된다.

법의 길 사람의 길

법의 길 사람의 길

몇해 전 인연을 맺은 거실의 달항아리는, 가깝게 지내는 도예가가 장작가마로 구운 것이다. 전통 도자의 재현(再現)인 셈이다. 파리 유네스코 본부 로비에서 열린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 중 하나다. 그동안 거기에 전 세계 예술품들이 전시되었지만,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도자기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너무나 자랑스런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이 없다는데 놀라, 욱하는 마음에 후원 차원에서 한 점 인수하게 됐다.

달항아리 인수 전부터 그 도예가와 자주 만나, 평소 목말라하던 도자기 이야기를 들었다. 도자에 얽힌 한일(韓日) 관계가 화제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도자기의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고, 혼란기 중국 도자기 수출이 수십 년간 중단되는 틈새를 파고든 일본 도자기는 수출 효자 산업이 되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보다 한발 앞서 근대화에 나섰다는 역사의 흐름을 상기하며 통음하기도 했다. 앞선 근대화가 결국 일제 강점으로 흘러가지 않았는가.

착잡한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이 들 때마다 어떻게든 도자기 사랑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관련 자료를 찾아 읽고, 일본 규슈의 도자기 마을을 둘러보기도 했다. 조선 도공들의 숨결을 그곳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가라쓰에는 분위기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아리타와 가고시마는 일본화가 굳어진 것 같았다.  도자기에 관심이 높아진 아내 덕분에 집에서 쓰는 식기까지 바꿔 아침 저녁으로 만져보고 있다. 우리의 도자기를, 아끼며 많이 쓰는게 후손의 도리라 생각해서다.

높고 넉넉한 달항아리 속에 뭘 담아두면 좋을까. 실생활에 쓰지 않고 눈으로만 감상하고 있으니 간절한 염원 같은 걸 담고 싶다. 꼬일대로 꼬인 한일관계가 도자기 교류전시 등을 통해 미래지향적으로 풀려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으면 어떨까. 사변(思辨)과 명분 싸움에 치우쳐 실용과 실리를 모두 놓친 지난 역사에 대한 반성을 담아도 좋겠다.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