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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란고원은 중동 화약고? 연 300만 명 찾는 관광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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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순 찾은 골란고원은 온통 녹색이었다. 초원엔 소 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과수원엔 하얀 사과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오렌지 향기가 넘쳤다. 중동 정세를 뒤흔든 현장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이스라엘, 67년 6일전쟁 점령해 #시리아 평화협정 거부로 현상유지 #트럼프, 3월 ‘이스라엘 땅’ 인정 #9일 이스라엘 총선 영향 가능성 #와인·올리브유·성서요리로 각광 #레바논 경계 헤르몬산엔 스키장 #경계선까지 시리아 내란 혈흔도

골란고원 중앙에서 북쪽을 바라본 모습. 멀리 레바논 국경인 헤르몬 산의 눈 덮인 봉우리들리이 보인다. 성서에서 말하는 요단강(요르단강)의 발원지 중 하나로 현재는 이스라엘 스키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다.

골란고원 중앙에서 북쪽을 바라본 모습. 멀리 레바논 국경인 헤르몬 산의 눈 덮인 봉우리들리이 보인다. 성서에서 말하는 요단강(요르단강)의 발원지 중 하나로 현재는 이스라엘 스키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다.

골란고원은 지난 3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영토’로 선언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 때 시리아의 골란고원과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각각 점령했다. 이집트와는 79년 평화협정을 맺고 시나이를 반환했다. 시리아와도 평화협상을 벌였으나 국경 안전보장과 갈릴리호의 수자원 이용을 둘러싼 이견으로 결렬됐다.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는 81년 이곳에 자국법과 행정체계를 적용하는 골란법을 통과했다.

골란고원산 위스키의 모습.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와인과 증류주의 주요 산지로 자리 잡고 있다.

골란고원산 위스키의 모습.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와인과 증류주의 주요 산지로 자리 잡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67년 11월 결의 242호를 통해 아랍권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대신 이스라엘은 점령지를 반환하도록 결의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이상론은 중동 현실엔 통하지 않았다. 이집트·요르단 외의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평화협정과 안전보장 없는 골란고원 철군을 거부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안보리는 81년 4월 결의 497호를 통해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병합을 무효로 선언했다. 그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미국은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한 첫 외국이 됐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점령하자 시리아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곳을 되찾으려고 전차를 대규모로 동원해 기습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군은 필사적인 전투 끝에 수적인 열세를 딛고 시리아의 공격을 격퇴했다. 당시 전투 상황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골란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책에 상세히 소개됐다. 당시 상황을 담은 안내판이 골란고원 전망대에 세워져 있다.

1967년 6일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점령하자 시리아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이곳을 되찾으려고 전차를 대규모로 동원해 기습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군은 필사적인 전투 끝에 수적인 열세를 딛고 시리아의 공격을 격퇴했다. 당시 전투 상황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골란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책에 상세히 소개됐다. 당시 상황을 담은 안내판이 골란고원 전망대에 세워져 있다.

남북 약 65㎞, 동서 평균 약 20㎞인 골란고원의 한복판에 있는 아비탈 산의 화산공원을 찾았다. 산 중턱 전망대 아래로 탁 트인 벌판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시리아를 굽어보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벌판엔 유엔 관할의 완충지대와 74년부터 인도·아일랜드·네덜란드·네팔·피지·필리핀 등에서 파병한 유엔휴전감시군(UNDOF)의 주둔지가 보였다. 그 끝자락에 시리아 쿠네이트라 마을이 희미하게 보였다.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징) 당시 기습을 받은 이스라엘군이 아랍권에 일시적으로 밀리자 골란고원 전선에 직접 나와 모세 다얀 국방부 장관(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등 군 수뇌부을 독려하는 골다 메이어 총리(오른쪽).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존망이 걸린 최전선 중 하나였다. [중앙포토]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징) 당시 기습을 받은 이스라엘군이 아랍권에 일시적으로 밀리자 골란고원 전선에 직접 나와 모세 다얀 국방부 장관(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등 군 수뇌부을 독려하는 골다 메이어 총리(오른쪽).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존망이 걸린 최전선 중 하나였다. [중앙포토]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불똥은 나라의 끝자락인 이곳까지 튀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2013년부터 쿠네이트라를 뺏고 빼앗기는 혈전을 벌이다 2018년 7월 반군이 항복하면서 유혈극이 끝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그 과정에서 필리핀 군인들이 부상했고, 오스트리아군은 철수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충돌이 아니라 시리아 내전 때문에 유엔군이 피해를 보았다. 시리아 인권감시단(SOHR) 집계로 37만~57만 명이 숨진 21세기 최대 비극인 시리아 내전의 또 다른 현장이다.

골란고원 곳곳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군 기지. 통신, 레이더, 감청 등 활동을 담당하는 시설로 보인다. 주말의 골란고원은 군 복무 중인 자녀를 면회 하러 온 부모들의 자동차로 붐볐다.

골란고원 곳곳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 군 기지. 통신, 레이더, 감청 등 활동을 담당하는 시설로 보인다. 주말의 골란고원은 군 복무 중인 자녀를 면회 하러 온 부모들의 자동차로 붐볐다.

전망대 뒤쪽 산꼭대기에는 이스라엘군의 통신·레이더·감청 기지로 보이는 군 시설이 보였다. 이런 기지는 골란고원 곳곳에서 목격됐다. 골란고원을 돌아보니 곳곳에 지명 대신 숫자로만 표시된 군부대 표지판이 보였고 주변은 차량으로 북적였다. 주말을 맞아 군 복무 중인 자녀를  면회 온 부모의 차량이라고 현지 가이드 모셰 헨젤이 귀띔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라 대도시에서 2시간 정도만 차를 몰면 최전방 복무 중인 자녀 면회가 가능해 주말엔 부대 근처가 붐빈다”고 말했다.
골란고원 중부 키드맛츠비 정착촌의 벨로프리아인나슈트 농장을 찾아 주민 생활을 살펴봤다. 카발로 집안이 운영하는 이 가족농장에선 구약성서 시절의 석제 농기구를 재현해 곡물을 빻고 올리브 기름을 짜고 있었다. 이를 재료로 성서에 등장하는 요리를 만들어 방문객과 인근 군인들에게 파는 식당도 운영 중이었다. 고교 유대철학 교사인 타미카발로가 군에서 갓 제대한 남편 빌리 카발로와 함께 80년대 초 이주해 황무지를 개척했다.

골란고원에 정착해 농장과 성서 시대 요리를 파는 농가 식당을 운영하는 타미 카발로와 손자.

골란고원에 정착해 농장과 성서 시대 요리를 파는 농가 식당을 운영하는 타미 카발로와 손자.

타미는 “고대 유대 전통에 맞춰 와인이 토양 특성을 잘 반영하도록 항산화제 겸 살균제인 이산화황을 쓰지 않고,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으며, 단일 품종의 포도로만 포도주를 빚는 것이 골란 와인의 장점”이라고 자랑했다. 현지 가이드는 “골란고원은 인근 갈릴리 호수 지역과 함께 이스라엘 와인의 주요 산지”라고 소개했다. 골란고원 인근 갈릴리호 인근 와이너리가 개최한 시음회를 찾았더니 100여 명의 방문객으로 붐볐다. 진이나 위스키 등 증류주도 손님을 기다렸다.
아비탈 산 전망대 북쪽으로 헤르몬 산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보였다. 골란고원과 레바논의 경계다. 해발 1600~2040m의 헤르몬 산엔 이스라엘 스키 리조트가 자리 잡았다. 중동 화약고였던 골란고원은 전란의 상흔을 딛고 이제 연간 3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로 변신해 있었다.

골란고원 중부 키드맛츠비 정착촌의 벨로프리아인나슈트 농장에서 생산한 포도주. 고대 유대 전통에 맞춰 와인이 토양 특성을 잘 반영하도록 항산화제 겸 살균제인 이산화황을 쓰지 않고,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으며, 단일 품종의 포도로만 포도주를 빚는 것이 골란 와인의 장점이라고 한다.

골란고원 중부 키드맛츠비 정착촌의 벨로프리아인나슈트 농장에서 생산한 포도주. 고대 유대 전통에 맞춰 와인이 토양 특성을 잘 반영하도록 항산화제 겸 살균제인 이산화황을 쓰지 않고,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으며, 단일 품종의 포도로만 포도주를 빚는 것이 골란 와인의 장점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총선일인 9일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집권 리쿠드당이 아슬아슬한 차이로 정권 유지에 성공했다. 이스라엘 선관위에 따르면 리쿠드당은 114만283표(26.46%)를 얻어 112만5820표(26.13%)를 획득한 중도정당 연합인청백당을 불과 1만4463표(0.33%) 차로 따돌리고 제1당에 올랐다.

지난 9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텔아비브 거리에 선거 벽보가 붙어있다.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정당명부제 방식이라 대개 당 대표나 간부의 사진이 벽보에 등장한다. 이번 선거엔 43개 정당이 참가했다.

지난 9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텔아비브 거리에 선거 벽보가 붙어있다.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정당명부제 방식이라 대개 당 대표나 간부의 사진이 벽보에 등장한다. 이번 선거엔 43개 정당이 참가했다.

이번 선거에는 무려 43개 정당이 참가했을 정도로 이스라엘 정치는 변수가 너무 다양해 승패 요인을 간단히 분석할 순 없다. 하지만 골란고원과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이 리쿠드당 지지층인 강경 유대민족주의자들을 막판에 투표장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골란고원은 조용하지만, 국제사회와 내부정치의 복잡한 방정식은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격전지에서 힐링 관광지로 변신한 골란고원의 모습.

격전지에서 힐링 관광지로 변신한 골란고원의 모습.

골란고원은 어떤 곳

골란고원

골란고원

어디에: 이스라엘과 시리아 경계
요르단 강 동쪽 갈릴리호 북동부
왜 중요한가:
● 이스라엘·시리아 사이 군사 요충지
● 이스라엘 수자원의 3분의 1 차지
넓이: 1800㎢(1200㎢는 이스라엘 점령지,600㎢는 시리아와 유엔 관할)
인구: 4만9700명(아랍인 2만5700명, 유대인 2만2300명, 이스라엘 통계청)
지난 52년의 사연:
●1967년 6월 시리아 영토였으나 6일전쟁 때 이스라엘 점령
●1973년 10월 욤키푸르 전쟁 당시 시리아 대규모 전차전 벌였으나 패퇴
●1981년 12월 이스라엘, 시리아와 평화협상 결렬되자 행정·사법권 적용
●2019년 3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선언

골란고원·예루살렘=글·사진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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