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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찍힐라 미세먼지 마실라…"집 밖 모든 게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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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불안한 대한민국 ①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미세먼지와 성범죄 등에 주목하고 일상생활 속 안전에 대한 욕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환경단체 한 관계자가 방독 마스크를 쓰고 미세먼지 대책 촉구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미세먼지와 성범죄 등에 주목하고 일상생활 속 안전에 대한 욕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환경단체 한 관계자가 방독 마스크를 쓰고 미세먼지 대책 촉구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취업준비생 김모(25·숙명여대)씨는 공중화장실에 가는 데 두려움을 느낀다. 지난달 학교 화장실에 50대 남성이 침입했던 사건 이후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김씨는 “화장실 갈 때마다 몰래카메라가 있는지 살펴본다”며 “친구들끼리는 이미 찍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했다.

1.2억 건 빅데이터로 본 한국인 #정치·경제 모든 분야서 안전 욕구 #지도층 부패·갑질도 불신 부추겨 #“한국은 몸집만 커진 사춘기 같아 #시민들, 국가 보호 못 받는다 체념”

그는 특히 “동덕여대 ‘알몸남’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돌던 ‘이대 화장실 몰카’ 사건을 생각하면 어떨 때는 집 밖의 모든 게 불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주부 이모(38)씨도 미세먼지가 심할 때마다 초등학생 딸과 말씨름을 한다. 밖에서 놀고 싶어 하는 딸을 억지로 잡아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세먼지가 심각했던 학기 초에는 걸어서 15분 거리인 학교를 매번 승용차로 통학시켰다. 이씨는 “실내에만 갇혀 있는 아이도 불쌍하고 아파트 창문도 맘대로 못 여는 어른들도 안쓰럽다”며 “미세먼지가 몸속에 계속 쌓이면 큰 병에 걸리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평범한 일상의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미세먼지 이슈부터 ‘정준영 몰카’ 같은 성범죄, 심지어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부모 피살’처럼 영화에서나 봤던 강력범죄까지 국민의 삶이 사회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다.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안전한 생활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빅데이터 분석으로 확인된다.

국가미래연구원(원장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이 조사전문업체 타파크로스에 의뢰해 2017년 7월~지난해 말까지 1년6개월간 빅데이터 1억2000만 건을 분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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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기간 동안 언급이 가장 많았던 이슈는 평창올림픽(339만 건)이었고 다음은 미투(#Me Too)운동(287만 건)과 남북 정상회담(227만 건), 미세먼지(217만 건), ‘혜경궁 김씨’ 사건(208만 건) 등이었다. 국가적으로 큰 행사였던 올림픽과 정상회담을 제외하면 갈등과 혼란을 야기했던 이슈가 대부분이었다.

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84만 건), 이수역 폭행 사건(64만 건), 한진 일가 갑질 파문(51만 건), 한샘 인턴 몰카·강간 논란(46만 건) 등 국민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도 자주 언급됐다. 언급된 이슈들로부터 그 안에 담긴 키워드를 추출해 분석해 보니 사회 분야에선 안전(70.4%)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김광두 교수는 “일상이 된 폭력과 미세먼지 같은 생활에 대한 위협이 시민들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분야에선 공정(32.1%)과 안전(29.9%), 정의(17.3%)가 제일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지난 정부 때 많은 시민이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분노를 느꼈는데, 지금도 여전히 공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며 “이는 ‘공정’을 내세워 정권을 창출한 지금의 정부가 그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민생안정(47.5%)과 신뢰(22.6%)의 비율이 높았다. 김형준 교수는 “부동산과 소득주도성장 등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다”며 “특히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기대했던 성과와 반대로 나오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안전과 공정, 민생안정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저에는 ‘불안’이란 심리가 짙게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중백(사회학) 경희대 교수는 “사회가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불신과 체념이 안전과 공정에 대한 욕구로 나타났다”며 “이는 국민이 국가의 기본적 역할인 ‘국민의 안위’를 잘 지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이런 ‘불안 사회’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대한민국을 ‘청소년기’로 비유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마치 몸집만 크고 정신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사춘기와 같다”며 “물질적으로는 큰 성장을 했지만 정신적인 성숙은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은 사상 최초로 1인당 국민소득(GNI) 3만 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청년 행복순위는 꼴찌이며 자살률은 회원국 평균의 2배 수준이다.

곽금주(심리학) 서울대 교수는 “한국은 영국이 200년, 미국이 150년 걸린 산업화를 반세기 만에 이루면서 잘사는 나라가 됐지만 모두가 불행하게 느끼고 분노 조절이 안 된다”며 “사회 전체가 성과에만 매달려 부패와 비리를 눈감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지도층이 책임과 의무 없이 권력만 누리려 하면서 사회 전체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조사는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의 빅데이터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이슈가 화제가 됐고,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인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1년6개월간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와 인터넷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 각종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780개 이슈를 선정했고, 총 1억1957만여 개의 반응이나 언급을 분석했다. 또 이번 조사에선 2015년 상반기~2016년 상반기 1년6개월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 시대정신의 변화상도 확인했다. 조사는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타파크로스가 맡았다.

◆ 특별취재팀 = 윤석만·남윤서·전민희 기자, 김혁준 인턴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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