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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보다 민원이 더 어려워" 텃세에 우는 건축주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23)

도심 주택가에서 건축 설계를 할 때는 거주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소음, 사생활 침해, 일조권 등으로 많은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도심 주택가에서 건축 설계를 할 때는 거주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소음, 사생활 침해, 일조권 등으로 많은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도심 주택가에 지을 집의 설계를 의뢰받을 때 습관적으로 주의 깊게 보는 것이 인접지에 분포한 주택 상황이다. 공사 중에 발생할지 모를 주변 거주자들의 민원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뢰받은 필지 뒤쪽, 즉 북측에 다세대주택이나 연립주택 같은 공동주택이 있다면 신경 쓰는 정도가 커진다. 뒤쪽의 연립주택이 해당 필지 쪽으로, 즉 남측 방향으로 거실이나 안방 창문이 크게 나 있다면 십중팔구 집단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 땅에 합법적인 인허가를 받아 공사를 진행하면서 주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건축주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 민원 때문에 실제 건축 디자인을 바꾸고 규모를 조정하는 경우도 많다. 타협을 거부하고 집단 민원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아 설계 단계에서 주변 상황을 고려해 디자인에 반영하기도 한다.

신축 건물 북쪽 공동주택, 민원 화약고

이를테면 주변 거주자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집의 배치, 창문의 위치나 크기를 설계 단계에서 반영한다. 이러한 주변 상황을 이해하고 디자인에 반영하는 것을 허용하는 건축주도 있지만, 자기 땅의 권리를 조금도 양보할 마음이 없는 경우도 있다. 타협의 여지가 없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는 상황에선 민원인과 건축주의 관계는 회복하기 힘든 단계로 빠지게 된다.

강남 고급 빌라촌과 인접한 필지에 치과 건물을 설계한 적이 있다. 필지가 그리 크지 않아 아래층에는 근린생활시설과 치과 맨 위층에 주택이 들어가는 작은 건물이었다. 예상대로 집단민원이 발생했다. 치과 건물로 인해 빌라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이 민원의 요지였다. 공사 중에 발생하는 소음이나 먼지 또는 조망권 등이 민원도 아니고 아예 치과를 못 짓게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건축주와 민원인 간 갈등은 법정까지 가기도 한다. 이런 민원 싸움에서 건축사는 설계자, 감리자라는 이유로 동네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건축주와 민원인 간 갈등은 법정까지 가기도 한다. 이런 민원 싸움에서 건축사는 설계자, 감리자라는 이유로 동네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그들의 속마음이 실제 건축을 못 하게 하려는 건지 아니면 돈을 뜯어내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런 대책 없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정말 피곤하다. 건축주는 치과의사의 아버지였다. 성격으로 봐선 민원인들과 절대 타협할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법적 소송으로 들어가게 됐다.

민원인 대표가 판사의 훈계를 듣고 나서야 민원을 철회했다. 건축주에게 민원은 철회되었으나 공사 중에 여러 가지 주민 불편을 끼치게 되니 민원인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돌리자고 건의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치과의 주 고객은 주변 빌라촌 사람들이라고 한다.

강북 어느 산동네 주택 밀집지역의 다가구주택은 아직도 악몽으로 남아있다. 설계하기 전에 현장을 둘러보면서 무조건 집단민원이 발생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필지가 작아 일조권, 도로 사선제한, 인접 대지와의 이격거리 등 법적인 사항을 아주 예민하게 체크해야 했다. 물론 뒤쪽 필지의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창문 크기도 줄였다. 건축 허가를 받고 그 필지에 있던 낡은 주택을 철거했다.

철거 후 측량을 할 때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인접 주택의 지붕 처마가 신축 대지 쪽으로 넘어와 있어서 지붕을 일부 잘라내야 건축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작은 필지라 10㎝도 아쉬웠기에 지붕을 그대로 두고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 집 지붕 일부를 잘라내려고 하는데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나와서 항의했다.

결국 집단 민원이 되었고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설계자인 나도 ‘왕 갑(甲)’ 아주머니들에게 불려 다니면서 터무니없는 원망을 받게 되었다. 필지 주변 아주머니들에게 시달리긴 했지만, 보상조건이 타결을 봐 공사가 진행됐다.

구청장실에 드러누운 민원인

어느 주택 밀집 지역에서 건축 설계를 하던 당시 한 다가구주택의 민원인으로부터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어느 주택 밀집 지역에서 건축 설계를 하던 당시 한 다가구주택의 민원인으로부터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중앙포토]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민원이 발생했다. 앞쪽 도로 건너편 마당이 있는 단층 주택의 거실과 안방이 신축하는 다가구주택과 마주 보게 됐다. 신축하는 다가구주택의 상부층에서 마당과 집안이 들여다보여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것이 민원의 요지였다. 충분히 이해되는 민원이었다. 건물 골조가 올라가는 중에 민원이 제기됐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민원인의 요구는 자기 집 쪽으로 난 창문을 다 막아 달라는 것이었다.

신축하는 집의 권리를 다 포기하라는 것인데, 이런 민원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 건축주는 타협을 거부했다. 민원인 할머니는 구청장실에 쳐들어가 울부짖으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렇게 막무가내인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공무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공개하기 힘든 여러 상황이 있었고 설득과 타협 후에 그 집의 낡은 블록 담장을 허물고 붉은 벽돌담과 예쁜 대문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민원이 종결됐다.

민원은 사람이 제기하는 것이다. 즉,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이해를 좁혀 가면 타협이 된다. 그러나 건축주와 민원인이 각자의 권리만을 위해 강하게 부딪치면 해결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건축법적으로 문제없이 인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시공 중에 소음, 먼지, 위험, 통행 불편, 사생활 침해 등 주변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물론 신축 대지 인근 거주자들이 기득권의 관점에서 터무니없는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민원 싸움에서 건축사는 설계자, 감리자라는 이유로 동네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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