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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똥개’ 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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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논설주간

최훈 논설주간

2005년의 봄날 오후. 노무현 청와대 출입기자인 필자에게 조기숙 홍보수석이 차 한잔 하자 전화가 왔다. 인근 삼청동 카페. 대화의 기억이 명료하다. 야당·언론과 청와대의 난타전이 피크였다.

‘동종 교배’로만 일관하는 권력 #집단최면의 배타적 기형될 우려 #순종보다 잡종이 강세인 시대에 #개방·포용·융합 만이 성공의 길

“요즘 청와대가 좀 어떤가요”(조) “… 그냥 보시는 대로겠지요” “제가 도통 이해 안되는 게 있어요. 학자로 곰곰 돌아 봐도 그렇고. 노 대통령 논리나 얘기가 틀린 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데 왜들 이렇게 비난만 하는지 전 이해가 잘 안 되네요”(조) “…” “제가 뭐 잘못하는 게 있나요”(조) “없을 겁니다. 매일 같은 앞 방향만 보고 가니 잘못이 안 보이는 거겠죠. 때론 서로 마주보고 있어야 하는 데” “그럼 어떻게 하면…”(조) “그냥 해오시던 대로 하세요. 조 수석 잘못이라기보다… 생각이 똑같은 사람을 그 자리에 모신 분들 책임일 테니까요.” 이듬해 2월 조 수석은 “내가 떠나면 나라가 조용해질 것같다”며 표표히 학교로 돌아갔다.

최근 야권 반대를 무릅쓴 김연철·박영선 장관 등의 임명을 보며 드는 의문 두 가지. 국민의 기본권인 공무담임권이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라는 특정 ‘혈통’에게만 부여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각료 낙점과 추천·검증 모두를 한 핏줄이 하는 권력 내 동종교배가 열성(劣性)의 확산을 낳는다는 추정이 두 번째다. 경제·사회통합·외교 등의 국정 성적표가 죽을 쑤고 있으니.

김대중 정부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통일장관을 보수인 김중권·강인덕에게 맡기거나, 고건·이헌재·오명·한덕수 등 보수를 중용했던 노무현 정권과도 사뭇 다르다. 현 정권이야말로 100% 진보 혈통을 보전한 첫 사례로 남을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정부의 정책은 원 팀(One Team)이 되어 함께 나아갈 분들을 모셔야 한다”는 인사 철학을 선명히 했다. 물론 이명박 정권 때도 자신과의 연을 중시한 ‘고소영’ 내각, 박근혜 정부 역시 ‘부친 박정희’와의 연이나 최순실의 입김 등 최악의 근친 인사를 반복했었다. 묻고 싶다. 현 정권은 이를 ‘적폐’라 선언하지 않았던가.

평생 로마 제국을 연구해 온 시오노 나나미는 『국가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잡종 예찬론’을 펼친다. 시오노는 “주목하는 건 비단 잡종의 아름다움만은 아니다”며 “잡종이 순혈에 비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강세이고 원념(怨念)에 의한 폐해가 적다”고 통찰했다. 그는 “순종은 해묵은 원념과 괴로운 감정을 푸는 데 모든 힘을 쏟아 붓는 탓에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면 그에 맞설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순종은 죽 쒀서 개 주는 노릇만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흔히 우리의 ‘똥개’로 불리우는 잡종의 우수함에 대한 찬사였다. 로마의 가장 소중한 유산은 광대한 영토나 콜로세움이 아니라 민족·종교·인종을 모두 아우르고 타인을 인정한 ‘개방성’이라는 지론의 요약이다.

동서고금의 성공은 포용·융합·개방과 동의어였다. 당시로선 박해받는 진보의 상징이던 예수는 모두가 하느님의 자손이며 죄지은 사람도 하느님 앞에 진심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유대인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選民) 구도를 일거에 무너뜨린 포용과 개방이었다. 전 세계의 보편 종교 중 하나로 융성한 본질이다.

거꾸로 근친 결혼의 상징인 600여년의 중세 합스부르크 왕가는 기형적 유전 질환이 번져 가다 결국 대가 끊겨 멸망했다. 이념·생물학적 순혈 추구의 극치인 나치는 역사상 최악의 홀로코스트 범죄에 이르러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였던 미국에 불타 사라지고 말았다.

“딸의 알레르기만 아니라면 유기견 보호소에 흔한 나 같은 잡종견(mutts like me)을 키우고 싶다.” 시오노도 거론했듯 오바마가 미 대통령 취임 직전 백악관 반려동물을 묻는 질문에 했던 답이다. 생물·사회문화적으로 케냐와 백인, 인도네시아·하와이 등이 하이브리드된 그가 펼쳐 간 다양성의 예고였다.

순혈의 권력은 내부의 자성과 비판을 잠재운다. 그 이너 서클 내의 생존은 더욱 더 도드라진 순수 DNA만을 요구한다. 급기야 ‘집단 최면’속의 기형(畸形)들이 돌출한다. 권력 자체가 불통·오만·관성·독선의 열성에 지배되어 갈 뿐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 좁은 땅에서 편 따라 골라 쓰고 갈라서느라 날새울 때가 아니다. 잡종의 동의어는 집단 지성과 융합, 그리고 창의다. 그 거만한 학문의 구분조차 무너지고 로봇·AI·클라우딩·블록체인·빅데이터에 5G까지 서로 우성(優性)으로 진화할 교배를 하느라 어지럽다. 역(逆)으로 순혈의 강철 칸막이를 세운 희한한 곳은 어디인가.

시오노는 “잡종에겐 약점이 딱 하나 있다. 자기 기반이 분명치 않아 다가오는 사람에게 쉽게 의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팍팍한 우리 사회는 그 약점 조차 아련해진 세태를 맞고 있다. 역대 청와대 관저의 진돗개나 풍산개처럼 주인에만 충직한 순종을 찾는 권력의 시대…. 시골집 어귀 살랑살랑 꼬리 쳐 모두를 살갑게 맞아준 정 많고 똘똘한 그 놈…. 아무리 생각해도 똥개가 더 사랑스럽다.

최훈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