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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엔 행복할 거라고?…새들이 전하는 삶의 지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32)

삶은 구름 한 조각과 같다. 마치 구름 한 조각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처럼 덧없는 일이다. [사진 unsplash]

삶은 구름 한 조각과 같다. 마치 구름 한 조각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처럼 덧없는 일이다. [사진 unsplash]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서산대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읊은 게송(偈頌)이란다. 태어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이는 것과 같고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구름에 빗대어 죽고 사는 것의 무상함을 일러주는 득도한 스님의 가르침이다.

이처럼 삶의 지혜 또는 깨달음을 온갖 현상, 만물에 비유하는 방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성인, 현자, 사상가들이 즐겨 택한 방식이다. 이를 두고 의인주의(擬人主義)라며 시큰둥해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아닌 것에 인간의 특징을 부여해 의미를 찾는다고 말이다.

서산대사의 게송을 두고 구름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은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그런 예겠다. 하지만 수많은 흐름이 결국 하나하나라는 만류귀종(萬流歸宗)이란 말에서 보듯, 한 가지 현상이나 사물을 파고들면 절로 지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단순히 지금을 사는 새들

『새들에 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엘리즈 루소 지음.

『새들에 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엘리즈 루소 지음.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필리프 J. 뒤부아·엘리즈 루소 지음, 다른)이란 책도, 제목에서 짐작이 가듯 새들의 행태에서 삶의 지혜를 길어낸 책이다. 새의 생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조류학자가 철학 작가와 함께 썼는데 딱히 무게를 잡지 않지만,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새들은 매 순간을 즐기고, 먹이와 한 줄기 햇빛에 감사해 한다. 박새가 이러저러한 새가 되고 싶어 하거나 내일을 생각하고 삶을 계획하면서 나중이 더 나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고 단순히 지금을 산다.

반면에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나중에’ 올 거라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랑의 시작에서 임금 인상까지 떠올리면서. 하지만 그 ‘나중’은 때때로, 아니 늘,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순간일 뿐이라고 지은이들은 지적한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까지 한다.

매일 무감각이 반복되는 회색빛 삶 속에서 어느 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행복이 '나중에' 찾아오리라 기대하지만, '나중'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짓눌린 일상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할 힘을 주는 좋은 습관을 심자. [중앙포토]

매일 무감각이 반복되는 회색빛 삶 속에서 어느 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우리는 행복이 '나중에' 찾아오리라 기대하지만, '나중'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짓눌린 일상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할 힘을 주는 좋은 습관을 심자. [중앙포토]

그러니 꿈을 꾸고 변화를 추구할 필요는 있지만, 후회로 가득한 죽음을 맞이하는 대신 새들처럼 강렬하게 현재를 살라고 권한다. 이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제비’를 통해서 ‘죽는 법을, 그리고 사는 법을 배우다’란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굴뚝새의 놀라운 하루’를 통해서 삶이 무감각한 회색빛일 때 대처하는 지혜도 소개한다. 프랑스에서는 현대인의 삶을 ‘메트로-불로-도도(metro-boulot-dodo)’라 한다는데 우리말로는 지하철-일-잠이란 뜻이다. 이 말은 계절이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일에 치인 생활을 가리킨다. 지은이들은 오전 11시의 커피 한 잔, 일요일 저녁을 느긋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처럼 좋은 습관을 심어두란다. 그런 것들이 톱니바퀴 같은 삶의 버팀목, 표지판, 좌표의 역할을 할 거란다.

그러면서 수풀을 헤집고 다니는 꾀꼬리나 굴뚝새처럼 자기 삶을 자연과 다시 연결하고 다양한 감각을 경험하라고 권한다.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티티새와 제비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면 더 이상 회색빛 일상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면서. 펭귄의 이성과 오리의 열정에서 ‘사랑의 전략’을, 까마귀를 통해 ‘겸손이 없는 지성’의 위태로움을 일깨우는 등 책에 수록된 지혜들은 한 번쯤 귀 기울일 만하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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