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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꿀이 사라진다…천연꿀 생산량 5년만에 75%↓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산 꿀이 사라지고 있다. 이상기후와 꿀벌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 국내 벌꿀 생산량이 5년 만에 60% 이상 급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양봉 농가 소득도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드는 등 양봉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15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양봉산업 위기와 시사점’ 보고서 등에 따르면 국내 벌꿀 생산량은 지난해 9685t으로 2014년(2만4614t)에 비해 60.7% 급감했다. 이 가운데 야생의 꽃이나 수액에서 얻는 ‘천연꿀’이 2014년 2만1414t에서 지난해 5395t으로 74.8%나 줄었다. 반면 설탕을 먹고 생산하는 ‘사양꿀’은 같은 기간 3200t에서 4290t으로 소폭 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규 양봉 농가가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꿀 생산량이 줄어든 원인으로는 우선 이상 기후가 꼽힌다. 지구 온난화가 지속하면서 봄꽃의 개화 시기가 예전보다 6~8일 앞당겨졌다. 벌들의 활동주기와 시차가 생기다 보니 꿀벌들이 채집하는 먹이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의 경우 봄 고온ㆍ저온현상이 연달아 나타나 우리나라 대표 밀원(蜜源, 꿀벌이 꽃꿀을 찾아 날아드는 식물)인 아까시나무의 꽃대 발육이 저하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꿀벌의 개체 수가 줄어든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 꿀벌판 구제역인 ‘낭충봉아부패병’을 일으키는 악성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한국의 토종 꿀벌의 70%가 사라지기도 했다. 지난해는 본격적인 꿀 채취가 이뤄지는 5월에 꿀벌의 폐사가 늘었다.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이 떨어져 전국 곳곳에서 꿀벌 바이러스 질병이 발생하는 피해가 나타나면서 생산성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꿀벌의 생육환경이 나빠지면서 양봉 농가의 수입도 급감했다. 지난해의 경우 총수입에서 생산비를 뺀 양봉 농가의 벌통 100개당 순소득은 207만원으로 2017년(2692만원)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처럼 꿀벌의 생육 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ㆍ유럽 등에서는 최근 10년간 벌꿀 개체 수가 40% 가량 감소했다는 조사도 있다. 꿀벌은 꽃의 암술과 수술 사이를 오가며 식물의 수분을 돕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00대 농작물의 71%가 꿀벌에 수분을 의존하고 있다. 꿀벌의 개체 수가 줄면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산림청은 국유림을 중심으로 연간 150ha 규모의 밀원 수림을 조성하고, 농촌진흥청은 각종 전염병에 저항성이 강한 신품종 꿀벌 품종 보급에 나서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양봉산업이 앞으로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벌꿀 생산보다는 꿀벌의 화분 매개를 통한 가치 창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양봉 산업의 가치는 꿀 같은 양봉 산물의 경제적 가치에 한정돼 있다. 화분 수정 기능이 환경과 농업에 미치는 역할과 중요도에 대해서는 충분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산업의 가치가 과소평가됐다는 것이다.

반면 해외 선진국에서는 양봉산업의 우선순위를 벌꿀 생산보다는 화분 매개에 두는 추세다. 이정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의 양봉 농가는 벌꿀 생산액보다 화분 매개 수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캐나다와 호주는 연구를 통해 꿀벌의 화분 매개 가치를 크게 평가하고 있고, 일본도 벌꿀 생산보다는 화분 수정 효율화를 위한 정책에 더 집중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양봉업이 화분 매개 기능으로 자연환경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익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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