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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양진호 사태 이후 판교 웹하드업체 줄줄이 짐 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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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양진호 회장 소유 회사들, 판교서 줄줄이 화성시로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이지원인터넷서비스'. 지난해 구속된 양진호 한국인터넷기술원 회장의 소유로 알려진 웹하드 업체다. 당초 판교에 위치해 있다가 경기도 화성시로 이전했다. 화성=김정민 기자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이지원인터넷서비스'. 지난해 구속된 양진호 한국인터넷기술원 회장의 소유로 알려진 웹하드 업체다. 당초 판교에 위치해 있다가 경기도 화성시로 이전했다. 화성=김정민 기자

굳게 문이 닫혀 있는 '한국인터넷기술원'. 지난해 구속된 양진호 회장 소유의 회사로 알려져 있다. 당초 판교에 위치해 있다가 경기도 화성시로 이전했다. 화성=김정민 기자

굳게 문이 닫혀 있는 '한국인터넷기술원'. 지난해 구속된 양진호 회장 소유의 회사로 알려져 있다. 당초 판교에 위치해 있다가 경기도 화성시로 이전했다. 화성=김정민 기자

10일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유스페이스1 A동 8층. 웹하드 업체인 이지원인터넷서비스(이하 이지원)와 선한아이디가 위치해 있던 곳이지만, 이곳에 이들 업체는 없었다. 이지원은 웹하드 서비스인 ‘위디스크’를, 선한아이디는 ‘파일노리’를 각각 운영하는 회사다. 두 곳 모두 불법 촬영물 유통과 직원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된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소유한 업체들이다. 위디스크는 한때 웹하드 업계 1위로 알려진 곳이다.
엘리베이터 내부 층별 입주기업 안내엔 이들 회사명이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회사가 있던 자리는 흰 시멘트 벽과 굳게 닫힌 철문 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같은 층을 쓰는 다른 정보기술(IT)업체의 한 직원은 “이지원은 올해 2월 말에 여길 나갔고, 이 자리는 이달 초부터 우리 회사가 사용 중이다”라고 말했다.

유튜브·넷플릭스에 밀리던 업계 #양씨 구속이 결정타, 생존 기로에 #업체 수 한때 150여개서 43개로 #합법 콘텐트로 살길 찾는 곳도

중앙일보 취재 결과 두 회사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한 업무용 건물로 옮긴 지 오래였다. 화성 동탄의 건물 2층에 양 회장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터넷기술원과 이지원, 선한아이디 등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11일 이곳을 찾았지만, 세 회사의 최근 근황을 알기는 어려웠다. 젊은 보안 요원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세 곳의 입구가 모두 보이는 곳에서 출입하는 이를 통제했다. 회사의 입구는 지문이나, 신분증을 인식해야만 열리는 유리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중앙일보는 이들 회사 관계자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양 회장 구속 이후의 현황에 관해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돌아온 답은 “저희가 웹하드 업계 1위는 아니다”였다.

'생존의 기로'에 선 웹하드 업계

지난해 10월 양 회장 사태 이후 웹하드 업계가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거의 ‘생존의 기로에 섰다’고 할 정도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각종 영상물과 데이터 이용 방식이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바뀌면서 다운로드 중심의 웹하드가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OTT(Over The Topㆍ인터넷동영상서비스) 기반 서비스에 빠르게 밀려나고 있어서다. 가뜩이나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어려움을 겪던 중에 양 회장 사태가 웹하드 업계 전반의 쇠락을 부채질한 모양새다.

150여개 웹하드 업체, 43개 업체로 줄어 

실제 한때 웹하드 업체 수는 150여 개에 달했지만, 현재는 43개 업체(지난달 말 기준)로 줄어들었다. 17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자랑하던 클럽박스도 지난달 초 서비스를 중단했다. 웹하드에 올라오는 콘텐트에 대한 관리 감독도 더 강화됐다. 한 예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18명의 모니터링 요원을 동원해 24시간 웹하드에 올라오는 불법 게시물이 없는지 지켜보고 있다. 대상 웹하드 업체는 과기정통부에 접수된 43개 업체 전부다.
웹하드 업체들 자신도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실제 방통위 모니터링 결과 지난해 9월 2106건에 달했던 불법 촬영물(추정) 단속 건수가 지난달에는 0건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이는 불법 촬영물을 적발한 뒤 웹하드 사업자에게 '삭제 등 권고 조치'를 내린 후 3일이 지난 다음 '해당 게시물'이 삭제됐는지 다시 체크한 결과다.
방통위 관계자는 “현장 조사를 나가보면 최근 업계 반응은 상위 업체가 매우 몸을 사리는 것은 물론 불법·음지 영역의 사업은 많이들 접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불법 음란물'은 지난해보다 되레 16% 늘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OTT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웹하드 업계가 어려움에 빠졌다고는 하지만 '불법 음란물'은 여전히 문제다. 여기서 불법 음란물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제작된 음란물을 말한다. 방통위 모니터링 중 적발된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연인 등에 복수하기 위해 성관계 등을 촬영한 영상)’ 등은 확연히 줄었지만, 불법 음란물은 지난달에만 1만3777건이 단속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단속 건수(1만1901건)보다 16%가량 늘어난 수치다.

불법 음란물 수가 줄지 않는 건 이런 게 확실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나 예능처럼 저작권이 분명한 영상물은 저작권자와 업로더(음란물을 올린 사람)ㆍ웹하드 업체가 7대 3의 비율로 수익을 나눈다. 그러나 불법 음란물은 수익의 70%를 웹하드 업체가 갖는 게 일반적이다.

'황금알 낳았던' 시절, 웹하드 순익률 30% 달해 

덕분에 단속이 덜했던 2017년에만 해도 웹하드 업체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상당수 업체가 불법 음란물과 리벤지 포르노 등으로 수익을 누리던 시절이다. 한 예로 양 회장 소유 회사들이 운영한 웹하드 서비스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2017년 매출은 각각 210억과 160억원이었는데, 당기순이익은 각각 64억원과 80억원이었다. 당기 순이익률이 30.5%, 50%에 달한다.

물론 현재는 과거와 같은 수익을 올리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OTT 중심으로 콘텐트 소비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중인 데다, 웹하드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진 탓이다. 방통위 개인정보보호윤리과 장좌영 주무관은 “웹하드 사업자들에게 물어보면 양 회장 사건 이후 많이 힘들어졌다고 한다”며 “실제 직원들이 자주 바뀌고, 웹하드 사업자들에게 요즘 어떠냐고 물어보면 ‘직원들 월급도 못 주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PC→모바일, 합법 콘텐트 강화 등 생존 노력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웹하드 업체들 역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운영 사이트 수가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업체들 대부분 PC 버전 중심의 서비스를 모바일 버전으로 확장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한 예로 지난해 4월 51개 업체가 58개 사이트를 운영하던 것에서 지난달 말에는 43개 업체가 90개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통위 측은 “대부분 PC 버전의 웹하드만 운영하던 업체들이 모바일 버전을 만들면서 운영 사이트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양질의 콘텐트를 강화하는 경우도 다수다. 장 주무관은 “단속을 의식한 측면도 있겠지만, 유통자가 불법 음란물이 아닌 정식 콘텐트, 합법적인 성인 영화 쪽으로 사업모델을 전환하는 움직임은 확실히 느껴졌다”고 밝혔다.

판교ㆍ화성=이수기ㆍ김정민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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