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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밥 뚝딱 먹고 당구 한판…한국에선 가능한 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3)

하루 당구장 내방객 120만 명, 애호가 1200만 명, 전국 골목 곳곳에 당구장 2만2000개, 세계 유일의 당구 전문 TV 채널…아마 한국은 당구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열풍의 주역은 바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다. 대학 시절부터 당구를 쳐온 애호가의  알량한 구력과 지식에 잡생각을 섞어 당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편집자>

한 노인복지관에서 회원들이 당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한 노인복지관에서 회원들이 당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당구가 우리나라에서 대중화한 데엔 촉발될 수 있는 조건 및 시기도 그렇지만 이에 못지않게 토양적 환경도 작용했다. 사람들의 특정한 기질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인의 기질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속성이다. 당구 게임은 다른 어떤 스포츠나 놀이보다 한판 승부에 걸리는 시간이 짧다. 이런 속성이 우리의 ‘빨리빨리’ 특성에 잘 어울린다. 점심시간에 비빔밥이나 국밥을 시켜 십분 이내에 후딱 해결하고 나선 나머지 여분 시간을 짬 내 당구 한판을 즐기는 월급쟁이가 많다.

‘빨리빨리’ 문화에 어울리는 당구

‘빨리빨리’는 70, 80년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던 고속 성장 시기의 문화적 특성이었다. 한국이 IT 강국으로 떠오른 것도  IT 산업 자체가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와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일 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 선진국 문턱에 다가갔지만 그 빨리빨리 문화는 여전히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한 큐를 치는 제한 시간은 국제 경기인 경우 40초, 동호인 경기는 30초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별도의 제한이 없지만 10초 정도만 넘겨도 빨리 치라고 성화를 낸다.

각 나라의 걸음걸이 속도를 비교한 재미있는 자료가 있다. 평균 유럽인은 분당 대략 25보를 걷고 미국 27보, 러시아 30보, 그리고 일본은 좀 빨라서 38보다. 그런데 한국인은 70보라고 하니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바쁜 걸음으로 올라가거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연신 닫힘 단추를 눌러대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각 나라의 걸음걸이 속도를 비교한 결과 평균 유럽인은 분당 대략 25보를 걷고, 미국은 27보, 러시아는 30보, 일보는 38보다. 그런대 한국인은 70보라고 하니 독보적이다. 사진은 제주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중앙포토]

각 나라의 걸음걸이 속도를 비교한 결과 평균 유럽인은 분당 대략 25보를 걷고, 미국은 27보, 러시아는 30보, 일보는 38보다. 그런대 한국인은 70보라고 하니 독보적이다. 사진은 제주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중앙포토]

우리는 오랫동안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유난히 승부를 즐기는(혹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당구의 속성과 맞아 떨어진다.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칠 때 아무리 마음 넉넉한 친구라 할지라도 몇 판을 내리 지게 되면 얼굴이 굳어지며 한판이라도 이길 때까지 게임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구에는 묘하게도 ‘호승심(남에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극하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 못지않게 베트남의 당구 열풍이 만만치 않다. 자료를 찾아보니 베트남의 현재 국민 소득은 대략 2300달러로, 경제적 모습으로는 우리나라 80년대 초반쯤 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당구가 유행하던 시기다.

나는 사업을 할 때 꽤 오랫동안 호찌민(옛 사이공)에 지사를 두었다. 이때 내가 느낀 것은 베트남 사람의 기질이 좋은 면, 나쁜 면 모두 한국인과 무척 닮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 다음으로 당구의 대중화가 이루어질 나라가 베트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표면적이고 즉물적인 연관성 말고도, 요즘 새로운 당구 붐이 일어나는 현상의 저변에는 예로부터 전해 오는 우리만의 독특한 어울림 문화, ‘정’이라는 코드가 있다.

정이라는 말은 무척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사랑·연민·동정이라기보다 사람들 간의 유대 관계에 긴밀하게 작동하는 감성으로 연대를 형성하는 요소이다. 고교나 대학 동문끼리 당구 동호회를 만들어 게임을 즐기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요즘 50, 60이 드나드는 당구장에 가면 예외 없이 OO 고등학교 몇회 동문 당구 모임이라던지, XX 대학교 몇 학번 당구회라고 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당구장에 걸린 OO 고교 당구회 플래카드

베이비부머 당구 애호가들이 당구장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당구장은 우리에게 옛날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최정동 기자

베이비부머 당구 애호가들이 당구장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당구장은 우리에게 옛날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제 은퇴를 한 지 2년이 지난 나의 경우에도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들과 같이 당구를 즐기는 기회가 많아졌다. 당구장은 우리에게 옛날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사랑방은 원래 가부장 시대에 가장의 일상 거처이면서 손님 접객 공간이었다. 안방과는 거리를 두면서 주택 외부와 접한 공간에 배치되는데, 이는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바깥 사회와의 연결성이란 기능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었다.

사랑방 구실 하는 당구장

지금 우리가 거주하는 주택 형태는 대개 아파트로, 사랑방을 만들기가 불가능한 구조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밖으로 나도는 동안 집안의 실질적 주인은 아내가 됐다. 괜히 주인 행세하려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게다가 집에서 아내와 매일 마주치는 상황에선 즐거운 일보다 불편한 일이 더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가끔 일전도 불사하지만 승산은 별로 없다.

나에게 당구장은 당구장 이상의 장소다. 동병상련의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 그 시간 동안이나마 현실을 잊고 즐기며 위안도 얻는다. 그러다 보면 아내와 속 좁게 말다툼한 것이 후회되고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게임을 이기는 날엔 기분도 좋아져 같이 게임을 벌인 친구들에게 술 한잔 사기도 한다.

깨알 당구 팁

당구공의 모양은 완전 구형체이며 균형과 반동, 고강도와 고탄성이 요구된다. [사진 pixabay]

당구공의 모양은 완전 구형체이며 균형과 반동, 고강도와 고탄성이 요구된다. [사진 pixabay]


초창기 당구공 재료는 코끼리 상아?
당구공의 모양은 완전 구형체 이며 운동 에너지가 보전되는 완전 탄성 충돌을 추구하고 있다. 당구공의 기본은 균형과 반동, 고강도와 고탄성이 요구된다. 과거 초창기엔 유럽에서 당구 볼을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나 확실치 않다.

현재 전 세계 당구공의 80%를 공급하는 벨기에의 샬뤽사는 당구공의 재질을 페놀수지라고 밝히고 있다. 폐놀수지는 견고함이 뛰어나고 내구성, 내열성이 우수하다고 한다.

당구 게임의 종류에 따라 당구 볼 또한 포켓볼, 캐롬 3구볼, 캐롬 4구볼로 구별된다. 크기와 무게가 조금씩 다른데, 이유는 회전 속도, 진행 방향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포켓볼 57.1mm 약 170g, 3구볼 61.5mm 약 210g, 4구볼 65.5mm 약 250g.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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