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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병충해·오염…‘국목(國木)’ 소나무의 소리없는 비명

중앙일보

입력

천년을 살아 갖은 질곡과 고난을 이겨내고 굽이굽이 세월을 지켜온 경주 삼릉 소나무 숲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다. [중앙포토]

천년을 살아 갖은 질곡과 고난을 이겨내고 굽이굽이 세월을 지켜온 경주 삼릉 소나무 숲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다. [중앙포토]

봄이 무르익고 있다. 송홧가루 날리는 계절도 다가오고 있다.
봄비에 섞여 내린 송홧가루는 숲을 보기 힘든 도심 아스팔트까지 노랗게 물들인다.

우리 조상들은 평생 소나무와 더불어 살았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서 소나무를 땔감으로 추위를 피하고, 소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다녔다.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과 솔잎을 넣어 찐 송편을 먹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비 온 아침 물이 모인 아스팔트 위에 송홧가루가 흐르고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비 온 아침 물이 모인 아스팔트 위에 송홧가루가 흐르고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고, ‘정이품송’ 사례처럼 우리 민족이 숭배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소나무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 ‘국목(國木)’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 '국목'이 고통을 겪고 있다. 다섯 가지 고통이다.
산불과 병충해, 지구 온난화, 대기오염이 소나무를 공격한다.
여기에 사람들의 외면도 있다. 최근 발생한 고성·속초, 강릉·동해 산불이 소나무 숲 때문에 확대되고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그런 사례다.

우두머리 나무라는 뜻

2004년 10월 울진 소광리 소나무. 강찬수 기자

2004년 10월 울진 소광리 소나무. 강찬수 기자

소나무는 ‘솔’이란 글자와 ‘나무’가 합쳐진 말이다. ‘솔’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수리’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소나무는 우두머리 나무다. 실제로 백목지장(百木之長), 만수지왕(萬樹之王)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구 상에는 100여 종의 소나무가 자란다.
우리나라 육지에서 흔히 자라는 소나무는 육송(陸松)이라고 불리는데, 껍질이 붉고 가지 끝에 붙은 눈도 붉다 해서 흔히 적송(赤松)이라고도 한다.

일부에서는 ‘적송’이란 표현이 일본에서 유래해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과거 중국에서도 적송이란 표현을 썼던 것처럼 쓰지 않을 이유도 없다고 설명한다.

육송과 달리 바닷가에 자라는 해송(海松)은 줄기가 검은빛을 띠어 곰솔 또는 흑송(黑松)이라고 불린다.

소나무 중에도 금강송(金剛松) 혹은 강송(剛松)은 일반 적송과는 달리 줄기가 곧게 자라고 목재의 재질이 우수하다.
결이 곱고 단단해 켠 뒤에도 굽거나 갈라지지 않고, 잘 썩지도 않는다.

금강산에서 경북 울진·봉화·청송까지 백두대간 줄기를 중심으로 자란다.
과거 벌목한 금강송이 춘양역으로 모였다고 해서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한다. 춘양은 경북 봉화의 옛 지명이다.

백송(白松)은 중국에서 들여온 소나무로 나무껍질이 밋밋하고 색깔은 회백색이다. 큰 비늘처럼 벗겨진다.

리기다소나무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1900년경에 수입해 심기 시작했다.

2008년 12월 10일 강원도 삼척시 황장산 자락에 110살짜리 적송이 잘리고 있는 모습.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다. [중앙포토]

2008년 12월 10일 강원도 삼척시 황장산 자락에 110살짜리 적송이 잘리고 있는 모습. 숭례문 복원에 사용된다. [중앙포토]

반송(盤松)은 소나무 품종의 하나인데, 지표면부터 줄기가 여러 개로 갈라지고 사방으로 퍼져 부채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품종인 처진소나무는 능수버들처럼 가지가 아래로 처진 것을 말한다.

근친혼 피하는 똑똑한 나무

한국의 대표적인 소나무인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의 솔방울. [중앙포토]

한국의 대표적인 소나무인 속리산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의 솔방울. [중앙포토]

소나무는 중생대 백악기부터 한반도에서 터전을 잡고 살기 시작했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한 몸에 피는 자웅동주다.
하지만 한 나무의 암꽃과 수꽃 사이에 수정이 되는 근친혼을 피하기 위해 암수 꽃이 피는 시기가 약 10일 정도 차이가 있다.

4~5월 수꽃의 꽃가루, 즉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려 암꽃 머리에 앉으면 수분이 이뤄진다.
꽃은 솔방울이 되는 암꽃이 맨 위에 달리고, 수꽃은 아래 가지에 핀다.
송홧가루에는 공기주머니가 달려 수천㎞를 날아가기도 한다.

수분이 이뤄진 후에도 1년을 기다린다.
다음 해 봄에 꽃가루가 암꽃 난핵 세포와 결합해 수정되면, 가을에 솔방울에 씨앗이 열린다.

소나무 잎은 2년의 생애 주기를 갖는다. 봄에 새로 난 잎은 다음다음 해 5월에 빨갛게 변하며 떨어진다.
잎은 2개씩 모여 나는데, 길이는 8~14㎝이고 너비는 1.5㎜ 정도다.

최근 서울 등지에서는 늦가을인 10월 말 소나무가 때아닌 새 가지를 뻗는 경우가 관찰되기도 한다.
추분이 지나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소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추운 겨울에 대비해 겨울눈을 만든다.

하지만 미국 북서부 등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수분 조건이 좋아지면 겨울이 오기도 전에 다시 싹이 터 생장을 하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이를 '2차 생장'이라고 한다.

이창석 서울여대 교수(식물생태학) “난방과 자동차와 같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도심의 기온이 도시 외곽보다 높아지는 열섬현상이 소나무의 2차 생장을 부추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소나무의 생장이 계속되다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경우다.
소나무 잎은 두꺼운 왁스층으로 덮여야 겨울을 날 수 있지만 한창 새로 자라는 연약한 잎은 추위에 얼어붙기 쉽다.

산림에서 제일 많은 나무

임상분포도 [자료: 산림청]

임상분포도 [자료: 산림청]

한반도에서 해발 1300m 높은 곳까지(제주도는 해발 1800m까지) 자라는 소나무는 북부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자라는 상록 침엽 교목이다.

산림청의 산림자원 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국내 산림면적은 634만㏊다.
이 가운데 침엽수림이 234만㏊, 활엽수림이 203만㏊다. 나머지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인 혼효림이다.

수종 파악이 어려운 혼효림을 제외한 437만㏊ 중 소나무 숲은 134만㏊로 전체의 30.7%를 차지한다.
활엽수인 참나무류가 98만㏊로 22.4%인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있다. 소나무는 국내 산림에서 가장 많은 나무다.

1990년대 후반 전국의 소나무 숲 면적은 대략 153만㏊로 집계됐는데(2003년 산림청 자료), 약 20년 사이에 12.4%가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개발 등으로 국내 전체 산림면적이 10.9% 감소한 것보다 소나무 숲이 더 빨리 줄어들었다.

일부에서는 과거 소나무가 우리 산림의 60% 이상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23%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공우석 경희대 교수의 『생물지리학으로 보는 우리 식물의 지리와 생태』에서 제시한 북한의 소나무 숲 면적 237만㏊를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북한 역시도 전체 산림의 약 30% 정도가 소나무 숲인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지극한 소나무 사랑

2014년 5월 솔잎혹파리 피해가 확인된 충북 보은군 정이품송에 대한 방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5월 솔잎혹파리 피해가 확인된 충북 보은군 정이품송에 대한 방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소나무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랑은 대단하다.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등장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 중에서 소나무 종류나 숲이 40곳 가까이 될 정도다.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궁궐을 짓고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필요한 재목을 얻기 위해 소나무를 보호하는 정책을 꾸준히 폈다.
조선 시대에는 벌채를 금지한 봉산(封山) 제도, 일정한 용도에 쓸 목재의 채취를 금지하는 금산(禁山)제도가 시행됐다.

세종대왕은 소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도록 한 송목금벌지법(松木禁伐之法)을 시행했고, 300여 곳을 소나무 보호구역인 ‘의송지(宜松地)’로 지정해 철저히 관리했다.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표석. [중앙포토]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표석. [중앙포토]

경북 울진 소광리의 ‘황장봉표(黃腸封標’에서 보듯이 조선왕실에서 황장목(黃腸木)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지역의 소나무 벌목을 막기도 했다.

황장목은 왕족이 죽었을 때 사용할 관곽재(棺槨材), 즉 관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목재다.
조선 시대 법전인 『속대전』에는 봉산에서 큰 나무 10그루 이상을 베면 아예 극형에 처하고 목을 내걸도록 규정했다.

소나무 중에는 벼슬을 받은 소나무도 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상판리의 정2품송(천연기념물 103호)이다.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조는 즉위 10년 되는 해에 피부병을 다스리기 위해 약수로 유명한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을 찾았다.
임금의 대연(大輦), 즉 큰 가마가 지나는데 나뭇가지가 걸릴 듯했고, 세조가 가마에서 고개를 내밀어 크게 꾸짖자 소나무가 가지를 번쩍 들어 통과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세조는 정2품이란 파격적인 벼슬을 내렸다.

충북 보은군 장안면의 한 야산에 조성된 양묘장에서 보은군이 기르고 있는 정이품송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최종권 기자

충북 보은군 장안면의 한 야산에 조성된 양묘장에서 보은군이 기르고 있는 정이품송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최종권 기자

정2품송에서 7㎞ 떨어진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에는 정부인송(貞夫人松, 천연기념물 352호)도 있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정2품송의 배우자로 부르고 있다.

드넓은 땅(6600㎡)을 물려받고 토지 세금까지 내는 수령 600여 년의 경북 예천 석송령(石松靈)도 비슷한 사례다.
1920년대 말 대를 이을 자식이 없던 이수목(李秀睦)이란 노인은 이 나무에 자기 소유의 땅을 나무에 상속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석송령은 석평 마을의 영험 있는 나무란 뜻이다.

한국 사람의 소나무 사랑은 지금도 계속된다.
광화문 복원에, 화재를 입은 숭례문 복원에 사용할 소나무를 찾기 위해 전국을 헤매기도 했다.

산불 때는 빠르게 타올라

지난 4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야산에서 발생한 산물. [뉴스1]

지난 4일 강원 고성군 토성면 야산에서 발생한 산물. [뉴스1]

지난 4일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 등으로 강원도 지역에서는 큰 산불 피해를 보았다.
산불 피해는 계절적으로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 데다 ‘양간지풍(襄干之風)’이란 강풍 탓이 컸다.
양간지풍 혹은 ‘양강지풍(襄江之風)’은 봄철 양양~간성, 양양~강릉 지역에서 부는 국지성 강풍을 말한다.

하지만 동해안에서 큰 산불이 거의 매년 발생하는 것은 동해안을 따라 산불에 가장 취약한 소나무 숲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나무는 일단 불이 붙으면 인화성이 강한 송진·솔방울로 인해 불이 더 커지기 쉽다.

숲 가꾸기(간벌)가 안 된 빽빽한 소나무림에서는 발화지점의 20m 이내에서 수관화(樹冠火)로 번진다.
수관화는 나무의 가지나 잎이 무성한 부분만을 태우며 빠르게 지나가는 산불을 말한다.
확산 속도가 빨라 인력으로는 진화하기 어렵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장은 “산불 피해와 관련 소나무 숲을 탓하는데, 적지적수(適地適樹), 즉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어야 한다는 개념도 있다”고 말했다.

소나무가 문제라고 해서 동해안 백두대간에 소나무 대신 활엽수를 심는다면 과연 거기서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활엽수의 경우 봄 가뭄 때 물을 공급해야 할 수도 있는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소나무 숲의 경우 수관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솎아내기, 가지치기할 필요는 있다.
이 과장은 “수관화가 아닌 지표화가 되도록 해서 산불이 시설물 화재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산불이 발생한 강원 동해시 망상동의 소나무 숲이 숯덩이로 변했다. 소나무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산불에 취약하다. [연합뉴스]

최근 산불이 발생한 강원 동해시 망상동의 소나무 숲이 숯덩이로 변했다. 소나무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산불에 취약하다. [연합뉴스]

산림 피해지역 복구를 위한 조림에서 주민들은 활엽수 대신 소나무를 선호하는 편이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다는 장점도 있지만, 소나무 숲을 가꾸면 송이를 거둘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나무의 성장 속도가 참나무 같은 활엽수보다 느려 다시 숲이 생성될 때 도태될 가능성도 크다.

큰 상처를 남긴 병충해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시설 전대 군무원이 9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 군항 내에서 재선충병 예방을 위해 소나무에 주사를 주입하고 있다. [해군 제공=연합뉴스]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시설 전대 군무원이 9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 군항 내에서 재선충병 예방을 위해 소나무에 주사를 주입하고 있다. [해군 제공=연합뉴스]

소나무가 앓는 병해충은 소나무재선충, 솔잎혹파리, 솔껍질깍지벌레 등 다양하다.
소나무 병해충 피해는 최근 줄고 있으나, 그동안 워낙 큰 피해가 발생해 소나무 숲이 줄어드는 원인이 됐다.

1960년대 우리 소나무 숲은 송충이 피해가 심했다. 송충이는 솔나방의 애벌레로 솔잎을 갉아먹는다.
이제 송충이는 더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 방제기술이 크게 진화했고 효과적인 약제가 개발된 덕분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산에서 나무를 베고 낙엽을 채취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숲이 울창해졌다.
소나무 숲 바닥에 햇빛이 덜 비치면서 숲속 온도가 내려가고 습해지면서 솔잎혹파리 피해가 컸다.
솔잎혹파리 유충이 솔잎 아랫부분에서 자라면서 혹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수액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나무가 고사하게 된다.
2008년에는 피해 면적이 183㏊였으나 2017년에는 36㏊로 줄었다.

솔껍질깍지벌레는 성충과 약충(불완전변태를 하는 유충)이 가지에 기생하며 수액을 빨아 먹어 소나무를 말라죽게 한다.
피해면적이 2008년에는 41㏊에 이르렀으나 2017년에는 4㏊로 줄어들었다.

1990년대부터는 소나무 재선충병(材線蟲病)이 기승을 부린다.
재선충은 맨눈에 잘 보이지 않는 0.6~1㎜의 작은 벌레다. 주로 소나무와 잣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침투해 수분 이동을 막아 말라죽게 한다.

소나무 잎을 갉아먹는 솔수염하늘소라는 매개충이 재선충을 다른 소나무로 옮겨준다.
일단 감염되면 100% 말라죽기 때문에 감염된 나무를 잘라내 소각을 하거나 비닐을 덮고 소독약을 뿌리는 훈증 작업을 하게 된다.

재선충 감염목 파쇄작업. [중앙포토]

재선충 감염목 파쇄작업. [중앙포토]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전국적으로 퍼졌고, 2005년에는 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이 제정되면서 2010년까지 감소했으나 2011년부터 다시 늘어났다.

특히, 2013년 고온현상과 가뭄 등의 기후적인 요인과 고사목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거나 피해목을 무단으로 옮기는 바람에 연간 200만 그루 이상의 피해목이 발생하는 등 전국으로 번졌다.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으로 최근에는 다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68만6000그루의 피해가 발생했다.

온난화 땐 직격탄 맞을 듯

녹색연합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지리산 정상봉인 천왕봉-중봉 북사면에 나타난 고산침엽수 떼죽음 모습. 녹색연합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함께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약 4개월간 현장을 조사한 결과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빠른 속도로 죽어갔다고 설명했다. [녹색연합 제공= 뉴스1]

녹색연합이 지난해 9월 공개한 지리산 정상봉인 천왕봉-중봉 북사면에 나타난 고산침엽수 떼죽음 모습. 녹색연합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함께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약 4개월간 현장을 조사한 결과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빠른 속도로 죽어갔다고 설명했다. [녹색연합 제공= 뉴스1]

21세기 말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이 1~3.5도 상승하면 북반구의 각 기후대는 북쪽으로 약 150~550㎞ 정도 이동할 전망이다.

이 경우 기후대의 이동속도는 연평균 1500~5500m이지만, 소나무 종류는 이동속도가 1500m 정도에 머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 소나무가 기후대 이동을 따라가지 못한다.
너무 더운 기후에서는 생존할 수 없어 사라지게 된다.

2001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전성우 박사팀은 『기후 변화에 따른 생태계 영향 평가 연구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 상승이 계속될 경우 소나무 서식 면적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21세기 초 남한에서는 전체 면적의 36%에서 소나무가 자라고 있으나, 기후가 변하면서 2050년에는 생육 가능한 지역이 전체의 16%, 2100년에는 7%로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100년 새 5분의 1로 감소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소나무 생육에 적합한 지역이 지금의 59%에서 2050년 47%, 2100년 38%로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2011년 국립환경과학원은 2004년부터 진행 중인 국가 장기생태연구사업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이 점차 상승하면서 국내 자연 생태계에서도 변화 추세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온난화의 영향으로 지리산의 해발 400m 지점에 있는 전남 구례군 토지면의 소나무 숲에서는 온대 수종인 소나무의 밀도가 줄어드는 대신 비목나무·때죽나무 등 난대수종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5년과 2010년을 비교했을 때, 이 숲의 소나무는 ㏊당 89그루에서 73그루로 18%가 줄었지만, 비목나무는 ㏊당 25그루에서 115그루로 360%가, 때죽나무는 90그루에서 135그루로 50%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백두대간. [녹색연합 제공]

백두대간. [녹색연합 제공]

2016년 백두대간 설악산 권역(강원도 인제 향로봉~구룡령 117㎞ 구간)의 산림 상태를 분석한 국립산림과학원과 한국 임학회 연구팀은 이 구간에서 2009년 73.22㎢를 차지했던 소나무 등 침엽수림이 불과 4년 사이에 66.09㎢로 9.7%나 줄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침엽수림의 급격한 감소는 기후변화로 인한 연평균 기온 증가와 연평균 강수량의 증가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염에 쓰러지는 소나무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와 훼손된 주변 산림. 강찬수 기자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와 훼손된 주변 산림. 강찬수 기자

산업화 도시화로 대기오염을 겪으면서 도심과 공단 주변 소나무 숲도 몸살을 앓는다.

금강송이 자라는 경북 봉화군 석포면이 대표적이다.

봉화군 석포면 ㈜영풍 석포 제련소 1공장 뒤편 산등성이엔 대부분의 금강송이 말라죽고 일부는 쓰러져 있다.
2공장 옆에는 나무가 아예 사라져 산이 황토색을 드러냈고 토석이 흘러내리고 있다.

금강송 등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는 곳은 석포제련소를 중심으로 낙동강 상류 5㎞ 구간에 걸쳐 있다.
최소한 10㏊의 산림이 피해를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나무가 죽은 것은 이산화황이나 불소 같은 대기오염물질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고, 새로 난 잎에도 구멍이 뚫리는 것은 지금도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전국 곳곳의 산림을 조사한 전문가들도 “석포제련소 주변처럼 산림 훼손이 심각한 곳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석포제련소 주변 산림. 강찬수 기자

석포제련소 주변 산림. 강찬수 기자

석포제련소는 광석을 제련해 연간 38만t의 아연을 비롯해 카드뮴과 황산을 생산한다. 영풍그룹 계열사로 1970년에 들어섰다.

과거 인근에 아연 광석을 채취하는 광산이 있었으나 지금은 문을 닫았고, 제련소는 수입한 광석을 제련하고 있다.

석포제련소 인근 산림이 훼손되면서 이로 인해 낙석사고와 열차 탈선 사고도 발생했다. 강찬수 기자

석포제련소 인근 산림이 훼손되면서 이로 인해 낙석사고와 열차 탈선 사고도 발생했다. 강찬수 기자

제련소 측은 “과거 발생한 산불이나 병해충이 (금강송이 죽는)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오염 탓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4년 8월 현장을 조사한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은 1992년에 발생했고, 나무 생장이 급격히 저하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이후”라고 보고했다.

서울 남산의 소나무 숲의 경우도 토양이 갈수록 산성화되면서 소나무가 허약해진다는 보고가 있다.
산성도를 나타내는 pH 값(낮을수록 산성도가 강함)이 1996년에는 4.4로 측정·보고됐으나 2005년에는 4.2로 측정됐다.

남산은 이미 산성화의 위험 수준(pH 4.5 이하)에 도달해 있는 셈이다.
서울 남산에서는 오염이 심한 공단지역에 많은 때죽나무가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나무 재선충 등 산림 병충해가 급속히 퍼지는 것도 산성비·황사 등으로 인해 소나무가 허약해진 탓”이라고 지적했다.

농촌 인구 줄면서 관심 멀어져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마을 중 한 곳인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에 위치한 폐가 모습. 김성태 프리랜서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마을 중 한 곳인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에 위치한 폐가 모습. 김성태 프리랜서

소나무 숲이 줄어든 것이 사람이 숲을 떠났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2004년)란 책에서 “지난 천 년 동안 이 땅의 소나무 숲은 인간이 적당히 간섭함으로써 안정 상태를 유지해 왔다. 소나무는 생태 특성상 맨땅에 씨앗이 떨어져야 싹이 트고, 인간이 땔감용으로 숲 바닥의 낙엽을 긁어내고 활엽수를 제거함으로써 소나무에 좋은 생육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농촌 인구가 줄면서 소나무 숲에 대한 인간의 간섭도 차츰 사라지게 되자, 참나무류를 비롯한 활엽수들의 식생 천이의 질서에 따라 소나무의 생육공간을 잠식하고 있다”는 지적했다.

소나무가 산불과 병충해, 기후변화 등에 취약하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나무가 ‘산림 기피 수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수십 년 소나무 대신에 일본잎깔나무(낙엽송)를 가장 많이 심었지만, 일본잎깔나무는 외래종이어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지 않는 데다 바람에 잘 쓰러지는 등 또 다른 문제점을 낳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산림청에서는 국립 일본잎깔나무를 국립공원 내에서 제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소나무…

 수령이 200년이 넘은 금강소나무 [중앙포토]

수령이 200년이 넘은 금강소나무 [중앙포토]

강원도 대관령 등지에는 수령 80~100년 된 소나무 조림지가 없지 않다.
병해충 방제, 간벌 등 소나무도 잘 가꾸고 관리한다면 건강한 숲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울진 소광리의 금강송, 태안 안면도의 소나무 숲이 말해준다.
소나무 숲 1㏊에서 하루 5㎏의 피톤치드가 배출된다는 보고도 있다.

잘 기른 소나무 한 그루는 2000만~3000만 원 자동차 한 대 값을 받기도 한다.

우리 산림 생태계와 잘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국민 정서에도 맞아떨어진다.
우리 국민의 몸과 마음을 지켜줄 나무는 역시 소나무임이 분명하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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