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추천작]아내가 죽은 뒤 인생 막 살기로 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9.04.12 22:46

업데이트 2019.05.08 10:37

토니는 아내가 암으로 죽은 후 주변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며 막살기로 결심한다. [사진 넷플릭스]

토니는 아내가 암으로 죽은 후 주변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며 막살기로 결심한다. [사진 넷플릭스]

제목 애프터 라이프 앵그리맨(after life)

출연 리키 저베이스(토니 역), 톰 배스든(맷 역),  만딥 딜론(샌디 역), 애슐리 옌센(엠마 역)

제작 리키 저베이스

관람등급 19세 이상

관람방법 넷플릭스

평점 IMDb 8.5, 로튼토마토 68%

줄거리  

지각은 자기가 해놓고 ‘You are late(늦었네요)’하며 알은체하는 여직원에게 ‘You are bored(넌 따분해)’라고 라임을 맞추며 까칠하게 구는 이 남자. 영국의 작은 마을 신문사 기자인 토니는 주변 사람 모두에게 시비를 건다.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대신 세상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며 대충 살기로 결심했다. 벽에 생긴 얼룩을 유명인의 얼굴이 나타난 기적이라고 우기는 사람, 콧구멍으로 동시에 리코더 2대를 연주하는 남자, 히틀러 닮은꼴 아기를 키운다는 부부 따위를 취재하는 일이 고작인 그에게 세상은 온통 욕하고 으르렁댈 일 투성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토니도 점차 다시 행복을 꿈꾸기 시작하는데…

이런 사람에게 추천

-왜 죄다 마약 아님 배신과 음모? 넘쳐나는 범죄ㆍ스릴러 장르가 피곤한 사람
-‘적당히’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고픈 사람

이런 사람에게 비추천

-감동은 신파지! 눈물 쏙 빼는 드라마를 기대하는 사람
-원색적 언어폭력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싱겁지만 충분하다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 서비스를 이용하다 내 시청목록을 돌아볼 때면 정서가 피폐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될 때가 있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가 온통 범죄(주로 마약)나 정치(그것도 주로 음모와 암살이나 테러)에 편중돼 있다는 걸 확인할 때다. ‘내 문제인가?’ 싶어 전체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유독 그런 장르의 드라마가 많은 탓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합리화한다).

애프터 라이프(원제)는 좀 다른 방식의 드라마다. 허름한 영국의 어느 시골 동네가 드라마의 무대이고, 토니의 직장인 탬버리 가제트 신문사, 토니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 매일 토니가 걷는 출근길 정도가 등장하는 배경의 전부다. 만나는 사람도, 새로운 사건도 별게 없다. 따분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췄지만 의외로 드라마는 재밌다. 토니의 드립과 기행은 생각 없이 웃게 하고, 마지막엔 비겁하게도(?) 살짝 찡하게 만든다. 30분짜리 에피소드 6편으로 구성된 짧은 드라마에서 이 정도 줬으면, ‘줄건 다 줬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저베이스의 눈부신 개인기  

찰진 욕과 방귀 뀌고 성내는 뻔뻔함, 논리적이고 얄밉게 사람을 후벼 파는 인신공격까지. 이 드라마의 매력은 토니라는 캐릭터다. 바꿔 말해 토니 역할은 물론 제작까지 맡은 리키 저베이스의 개인기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저베이스는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영국 드라마 ‘오피스(2001)’로 유명한 코미디 배우다. 이때도 감독ㆍ각본ㆍ주연까지 혼자 다 했다. 그의 주특기는 냉소적이면서 철학적인(드라마 속에서도 무신론을 설파하는데, 실제로도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이며 실제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블랙코미디인데 애프터 라이프에서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딱히 스포일러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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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로운 사랑으로  

사실 스포일러랄 게 그다지 없다. 토니가 매일 가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그를 미묘하게 변화시키고 아내가 없는 삶도 충분히 살만하다는 깨우침을 갖게 한다는 게 전체 이야기의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따지면 이별은 새로운 사랑으로 치유된다. 쓰기 민망하고 내뱉기는 더 민망한 이 이야기가 애프터 라이프의 결말이다. 못되게 굴던 토니는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후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요양원 간호사 엠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존재감 없던 샌디의 한방  

캐릭터들은 저마다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굳이 콕 집어서 약한 캐릭터를 고르라면, 의기양양하게 등장한 신문사 막내 기자 샌디다. 시골 신문기자로 들어온 샌디에게 맷은 ‘잘되어서 가디언 간 기자도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 주지만 토니는 ‘가디언 간 기자가 지금은 망했다’는 사실을 굳이 알려준다. 이 장면 이후 샌디는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그러나 막판 묵직한 한방을 선사한다. 신문사에 단골로 찾아와 자기 이야기를 기사로 써달라는 악성 민원인 브라이언을 만나면서다. 브라이언은 아내와 7년 전 사별한 후 바퀴벌레와 쓰레기 더미 속에 사는 모습을 1면에 내달라고 한다. 토니는 포기하지만, 샌디는 브라이언의 상처와 내면을 생생히 기사로 적어낸다. 이 기사를 살펴본 토니의 눈이 반짝거린다. 골칫덩이도 사연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후배한테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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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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