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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기독교 "태아는 엄연한 국민" 낙태죄 폐지 강한 반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등 종교계 단체 회원들이 낙태죄 위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등 종교계 단체 회원들이 낙태죄 위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죄 페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가톨릭과 개신교 등 종교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헌법불합치 선고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이번 선고는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한다.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낙태죄 폐지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서 "임신에 대한 책임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일하다. 또한 잉태된 생명을 보호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맡겨진 책임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한 여성과 남성이 용기를 내어 태아의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법과 제도의 도입을 대한민국 입법부와 행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천주교주교회가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낙태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사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천주교주교회가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낙태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사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생명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가 출생과 사망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에서 생명의 문화를 지켜내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우리 가톨릭 교회도 필요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는 “한 인간의 잉태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사실이다. 더구나 태아는 심장도 뛰고, 혈액형도 이미 결정돼 있다. 그 혈액형이 어머니와 다를 수도 있는 독립적 생명체다. 따라서 태아는 엄연한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다”고 지적한 뒤 “낙태죄 폐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자신의 책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태아의 생명을 바라보는 천주교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활동은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수정부터 임종까지’를 인간으로 보고, 신을 닮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귀한 존재라고 본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가톨릭은 낙태를 ‘죄’로 여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낙태죄 폐지 반대 백만인 서명운동’에 참여한 100만9577명의 서명지와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시 김희중 대주교는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탄원서를 낭독하며 “자살이나 살인은 생명 존중 의식이 약화된 결과다. 낙태죄 폐지 반대는 생명 수호와 연관돼 있다. 천주교의 기본 정신은 인간의 수정부터 임종까지 모든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로 인한 살인죄’로 여성의 고통이 가중되자, 2015년 9월 1일 희년을 맞아 낙태를 했으나 회개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 때 용서를 청하는 여성에게는 낙태죄를 사해 주는 권한을 모든 사제에게 부여했다. 정 신부는 “(가톨릭에서) 낙태는 여전히 죄이지만, 용서 받을 길을 넓혀주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개신교계도 ‘낙태죄 폐지’결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회총연합 사무총장 신평식 목사는 “이번 결정은 인간의 생태적 법칙을 무시했다. 여성의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여성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며 “인류의 대를 이어가며 보존하고, 국가와 사회의 존립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며 불변의 법칙이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정한 법칙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신 사무총장은 “낙태법 폐지보다 오히려 현재 시행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14조의 허용 규정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찾아야 했다”며 “여성의 자기 결정권, 건강권과 생명권 등을 내세우며 낙태죄의 완전폐지를 결정한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처사임을 지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범불교계에서는 생명 존중의 입장은 밝혔지만, 그리스도교계만큼 강한 반발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불교 조계종과 원불교는 교단 차원의 성명을 따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여성학을 전공한 서울 중곡교당의 민성효 주임교무는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한 뒤 “태아의 인권을 생각하면 당연히 (낙태를) 안 해야 되는 거고,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생각하면 그건 또 여성이 가져야 한다. 이 두 입장이 서로 충돌한다”고 운을 뗀 뒤 “사회법으로 낙태를 죄라고 규정하는 건 맞지 않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산부인과에서 이미 공공연하게 (낙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성의 입장에서 조심하는 게 최선이지만, 그래도 낙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허용하는 게 맞다고 본다.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도 엄청나게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는 걸 여성학을 하면서 많이 봤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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