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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도 에일도 아닌 제3의 맛, 벨기에 맥주 ‘람빅’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14)  

재작년 벨기에 여행을 다녀온 후 벨기에는 내 마음의 고향이 됐다.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에 7박 8일 동안 부지런히 마셔도 넘칠 만큼의 다양항 맥주가 있었다. 사진은 벨기에 리스 강변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중앙포토]

재작년 벨기에 여행을 다녀온 후 벨기에는 내 마음의 고향이 됐다.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에 7박 8일 동안 부지런히 마셔도 넘칠 만큼의 다양항 맥주가 있었다. 사진은 벨기에 리스 강변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중앙포토]

재작년 벨기에 여행을 다녀온 후 벨기에는 내 마음의 고향이 됐다. 북쪽으로는 네덜란드, 남쪽은 프랑스, 동쪽에는 독일을 접하고 있어 유럽 각국의 개성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경상남북도를 합한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에 스트롱 골든에일, 세종, 벨지안윗, 플랜더스 레드에일 등 지역별로 독특한 맥주와 가지각색 수도원 맥주들까지….

7박 8일 동안 부지런히 마시고 또 마셔도 넘칠 만큼의 다양한 맥주가 있었다. 또 직접 방문해 견학하고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맥주 양조장들도 곳곳에 존재했다. 1500여종의 맥주가 살아 숨 쉬는 벨기에의 맥주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될 정도다.

지난 3월 벨기에 국왕과 함께 방한한 경제사절단에도 벨기에 맥주 양조장 대표들이 참여했다. 벨기에 맥주 중에서도 람빅(Lambic)은 세상 그 어떤 맥주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번 국왕 방한에는 벨기에 람빅 맥주 양조장 중 하나인 오드 비어셀(Oud Beersel)도 함께 왔다.

제3의 맥주 람빅

벨기에 람빅 맥주 중 하나인 쓰리 폰테이넨(3 Fonteinen). [사진 황지혜]

벨기에 람빅 맥주 중 하나인 쓰리 폰테이넨(3 Fonteinen). [사진 황지혜]

람빅은 ‘탄산이 톡 쏜다’. ‘홉 풍미가 매력이다’ 같은 맥주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 스타일이다. 또 블렌딩은 맥주가 아니라 와인, 위스키, 커피에 사용하는 기법이라는 생각도 람빅에서는 깨진다. 맥주의 스타일(종류)은 크게 라거(Lager)와 에일(Ale)로 나눈다. 람빅은 라거에도, 에일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맥주다.

라거와 에일의 차이는 사용하는 효모에서 비롯된다. 효모는 맥주 양조 시 발효를 담당하며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단세포 생물이다. 라거는 낮은 온도(10℃ 안팎)에서 발효하는 라거 효모를 사용하고 에일은 비교적 높은 온도(20℃ 안팎)에서 발효하는 에일 효모를 쓴다.

람빅은 이들과 차원이 다른 효모를 사용한다. 라거와 에일의 효모는 공장에서 정제된 것으로, 맥주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제품이다. 상품화된 가루나 액체 상태의 효모를 넣어 맥주를 발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람빅을 만들 때는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자연 속의 효모가 쓰인다.

우리 주변 공기 어디에나 효모가 있지만 모두 람빅 맥주를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벨기에, 그중에서도 수도인 브뤼셀, 그 안에서도 젠느(Senne) 강변 계곡에만 서식하는 효모가 람빅을 만든다. 이 주변의 12개 양조장만 람빅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

벨기에 칸티용(Cantillon) 양조장에서 람빅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나무통. [사진 황지혜]

벨기에 칸티용(Cantillon) 양조장에서 람빅 맥주 양조에 사용되는 나무통. [사진 황지혜]

람빅은 효모 외에도 양조 많은 부분에서 다른 맥주와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맥주의 양조는 길어야 4주면 끝나지만 람빅은 대부분 3년에 걸쳐 나무통에서 만들어진다. 이 시간 동안 4단계의 발효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또 일반적으로 맥주를 양조할 때는 홉의 과일, 꽃, 쌉쌀함 같은 풍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신선하고 품질 좋은 홉을 구해서 냉동 보관해 풍미를 잃지 않도록 관리한다. 그러나 람빅을 만들 때는 묵힌 홉을 활용한다. 홉의 풍미는 없애고 홉의 특징인 방부 효과만 누리기 위해서다.

시금털털하고 쿰쿰한 람빅의 매력

람빅의 맛은 형용하기가 쉽지 않다. 신맛이 나지만 식초 같다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시금털털하다. 맛과 향이 풍성하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밍밍하고, 치즈 같은 발효식품에서 나는 군내나 쿰쿰함도 느껴진다.

맥주 전문가들은 이런 람빅의 풍미를 말안장, 마구간, 먼지 쌓인 다락방, 오래된 가죽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이런 걸 무슨 맛으로 먹나’ 하다가도 불현듯 생각나는 맛이다. 홍어, 취두부, 블루치즈 같은 음식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서인지 홍어와 람빅을 같이 먹으면 기가 막히다.

1년차, 3년차 람빅을 블렌딩해서 만든 ‘괴즈’나 과일을 넣어 발효시킨 ‘프람브아즈’(라즈베리), ‘크릭’(체리) 등은 람빅보다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맛이다. 설탕을 넣어 만든 달콤한 람빅도 있다. 이에 대해 벨기에 전통을 지키는 람빅 양조장들은 비판적인 입장이다.

게르트 크리스티안 오드비어셀 대표. [사진 오드베어셀 제공]

게르트 크리스티안 오드비어셀 대표. [사진 오드베어셀 제공]

게르트 크리스티안 오드 비어셀 대표는 “원래 벨기에에는 설탕을 넣은 람빅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점점 콜라처럼 단것을 좋아하면서 가당 람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오드 비어셀 맥주에는 설탕을 넣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양조한다”고 말했다.

람빅은 유럽에서 문화유산급 대우를 받는다. 벨기에에서도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페일 라거(탄산의 톡 쏘는 맛으로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가 시장을 뒤덮으면서 람빅 맥주는 명맥이 끊어질 뻔했다.

EU에서는 브뤼셀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맥주에만 지리적 표시제의 일종인 TSG 인증을 준다. [사진 유럽 공동체위원회]

EU에서는 브뤼셀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맥주에만 지리적 표시제의 일종인 TSG 인증을 준다. [사진 유럽 공동체위원회]

EU에서는 브뤼셀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맥주에만 지리적 표시제의 일종인 TSG(Traditional Speciality Guaranteed) 인증을 주고 있다. 브뤼셀에서는 관광객들에게 람빅의 역사 전통 설명해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 100여명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람빅 맥주를 구할 수 있다. 분(Boon), 칸티용(Cantillon), 쓰리 폰테이넨(3 Fonteinen)의 괴즈 등 일부 제품이 들어온 바 있고 린더만스(Lindemans), 팀머만스(Timmermans)의 가당 람빅이 주로 수입됐다. 오는 5월에는 오드 비어셀의 정통 람빅이 국내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3.1ℓ 단위 박스에 담긴 총 4종의 맥주로 국내에서도 벨기에 람빅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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