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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도시재생 뉴딜, 숨 고르기로 내실 다질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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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민호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

서민호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

외국 지인과 사석에서 대화하다 우리 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한국말을 듣고 놀란 경험이 많다. ‘빨리빨리’. 이 말은 그간 우리 발전의 빛과 그림자를 상징한다.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나 이면에는 생활고로 고통받고 정든 동네에서 내몰림을 당하는 이웃과 노후한 채로 방치된 주택과 공장이 많다. 염원하던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 지금, 대한민국은 여전히 앞으로 계속 달려가야만 하는지 반성이 드는 시점이다.

정부는 2019년 뉴딜사업 선정 결과 총 22곳에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상반기 계획 물량이 약 30곳이었기 때문에 의아한 결과일 수 있다. 지역의 도시재생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자칫 정책이 축소되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도시 쇠퇴와 지방 위기가 심각한 지금 뉴딜사업은 지속 확대되어야 한다. 하지만 양적인 확대에만 치중하다 보면 무엇을 위해 도시재생을 하느냐는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주민과 공동체가 자체의 필요를 찾고 저마다의 도시재생 브랜드 씨앗을 창발(創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만 보고 달려서는 어떤 길이었는지 알 수 없다. 소중한 국민 세금이 투입된 만큼 그간 사업을 복기해서 추진 내용과 예산 집행 및 관리의 질적 수준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지금이 내실 있게 해야 할 때임을 아는 듯하다. 당초 계획에 못 미치는 규모로 이번 사업들이 선정된 것은 앞으로 계획과 역량이 준비된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정부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선정 사업들은 비교적 엄격한 평가를 통과한 만큼 조속한 사업 착수와 나은 성과창출을 기대해 본다.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에 대해서도 진지한 반성과 개선의 시간이 필요하다. 뉴딜사업은 국책사업인 만큼 정부 책임이 가장 크겠으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가와 우리의 미래를 위한 도시재생인 만큼 모두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특히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체계적인 사업 관리와 시행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장의 도시재생지원센터들이 사업 최전선에서 역할과 소임을 다 할 수 있는 체계 확립도 중요하다.

『손자』의 군쟁(軍爭)편에는 우직지계(迂直之計)라는 말이 있다. 가깝게 보이는 길을 먼 길처럼 돌아가는 것이 빠른 길일 수 있다는 의미다. ‘빨리빨리’식 사업 추진에만 몰두하지 말고 주민이 원하는 도시재생이 추진되고 있는지, 계획과 시행 과정에서 부족함은 없는지 잠시 숨 고르기로 내실을 다지면서 점검해야 한다.

서민호 국토연구원 도시재생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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