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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끼 로봇 후예들 우주 발전소 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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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국 위협하는 제조 중국 ③ 로봇 

지난 1월 중앙일보가 찾은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19’. 중국 로봇업체 ‘유비테크’ 부스에 들어서자 관람객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 회사가 전시한 유아용 로봇 '알파 미니' 15대가 마치 군무를 추듯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는 것을 본 관람객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 약 25㎝ 크기의 앙증 맞은 로봇의 재롱에 호응이 뜨거웠다.

9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유비테크 부스에 휴머노이드 로봇 알파 미니가 전시돼 있다. [중앙포토]

9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유비테크 부스에 휴머노이드 로봇 알파 미니가 전시돼 있다. [중앙포토]

유비테크는 CES에서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얼굴엔 디스플레이를 갖춘 보행보조 로봇 '워커'도 공개했다. 워커는 "콜라 좀 갖다줘"라는 명령에 뚜벅뚜벅 냉장고로 걸어 가서 문을 열고 음료를 꺼내왔다. 음악을 틀어달라고 주문하면 곡을 찾은 뒤 춤을 춰 보이기도 했다. 이 밖에 교육용 교육용 로봇 '지무', 바퀴가 달려 민첩하게 돌아다니는 안내 로봇 '루저' 등도 한꺼번에 선보였다.

1000t 넘는 태양광 부품·설비 #로봇과 함께 쏴올려 조립 계획 #중국은 산업용로봇 최대 수입국 #거대 내수 발판 최대 생산국 박차

유비테크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슝요우쥔(熊友軍) 박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이 인간의 삶을 바꿀 것”이라며 “중국 스타트업들의 로봇 기술은 일본 소니, 한국의 삼성전자ㆍLG전자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세계 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유비테크의 로봇은 전 세계 40개국 약 7000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유비테크가 만든 교육용 로봇 ‘지무’는 애플 스토어에 입점했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애플 스토어에서 지무 로봇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코딩 교육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올해 CES에 처음 출전한 이 중국 로봇 제조업체의 기술력에 CES를 찾은 각국 전문가들은 놀라워했다.

중국 산업로봇 10조원 거대 시장 됐다 

중국이 제조업 재도약의 길을 로봇산업에서 찾고 있다. 중국은 2015년에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전략 육성 산업의 하나로 로봇을 포함시켰다.
로봇은 크게 생산현장에 투입되는 산업용 로봇과 인간의 일상생활 편의성을 높이는 서비스 로봇으로 나뉜다. 중국은 이 가운데 산업용 로봇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전자학회에 따르면 중국 로봇산업 시장규모는 최근 5년간 연평균 29.7%씩 커져 2018년에 87억4000만 달러(약 10조원) 규모가 됐다. 이 가운데 71%(62억3000만 달러)가 산업용 로봇 시장이다. 중국은 이같은 거대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로봇 소비 대국에서 로봇 생산 대국으로 변신을 추진 중이다.

산업연구원 박상수 연구원은 "중국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로봇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 최고 수준과는 2년 정도 차이가 난다"며 "제조 2025에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민간기업이 힘을 합쳐 이 격차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에 로봇 쏘아 올려 태양광 발전소 짓기로

중국의 로봇 산업에 대한 자신감은 곳곳에서 배어 난다. 중국 국영 우주방위산업체인 항천과학기술그룹(CASC)은 최근 충칭(重慶)에 우주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위한 전진 기지를 짓기 시작했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어 그 전력을 지구로 보낸다는, 상상 속에서 있을 법한 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우주에 태양광 발전소를 지으려면 1000t이 넘는 부품과 설비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이들 장비를 약 15년쯤 뒤에 우주로 쏘아 올릴 계획인데, 이때 이를 조립할 로봇도 함께 쏘아 올릴 계획이다. 사람 대신 로봇이 우주 공간에서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작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로봇 기술로 한발짝씩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야심은 올 초 이미 일부 실현됐다. 중국이 지난 1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의 뒷면에 탐사선(창어 4호)을 안착시킨 달 뒷면에 첫 발자국을 새긴 존재는 탐사 로봇 ‘위투(玉兔.옥토끼)’였다. 위투는 토양과 광물 성분을 분석하고 감자와 애기장대라는 식물을 기르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우주의 정복자가 되겠다는 중국 '우주 굴기(崛起)' 뒤에는 로봇 굴기가 있는 셈이다.

유럽·남북미 합친 것보다 산업용 로봇 더 팔려 

중국의 로봇 굴기는 숫자도로 쉽게 확인된다. 국제로봇연맹(IFR)이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산업용 로봇은 한해 동안 38만1000대(2017년 말 기준) 팔렸다. 이 가운데 36%(13만8000대)를 중국기업들이 구입했다. 중국 내 판매량이 유럽과 남북미 대륙을 합한 숫자(11만2400대) 보다 많다.
중국은 이같은 거대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로봇 생산 대국으로의 변신을 꿈꾼다. 중국 제조 2025에는 이를 위한 목표와 구체적인 전략도 적시돼 있다. '기업이 주체가 되고, 생산·학습·과학연구·실전응용(産·學·硏·用)이 긴밀하게 결합한 로봇 산업 시스템을 육성한다'는 게 목표다.

달성 과제로는 2025년까지 주요 로봇 제품의 핵심 부품을 50%까지 중국 기술로 자체 생산하고, 평균 8만시간 써야 고장이 날 수 있는 정도까지 내구성을 높이기로 했다. 서비스 로봇의 대량생산 시대를 열고 세계 10대 로봇 기업 가운데 2~3개를 진입시키기로 했다.

인구 보너스 효과를 스마트 보너스로 대체

전문가들은 중국이 로봇 산업 육성을 서두르는 데에는 위기에 빠진 중국 제조업의 현실이 반영됐다고 분석한다. 중국의 생산 가능인구는 201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생산 가능 인구가 늘어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이른바 '인구 보너스 효과'가 사라진 셈이다. 여기에 노동자 인건비는 최근 10년간 세배 가까이 올랐고 고령화까지 겹쳤다.

이런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고성능 산업용 로봇을 개발해 줄어드는 생산 가능인구를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 박상수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무뎌진 성장세의 타개책을 '산업용 로봇 제조 능력 향상→생산성 향상'에서 찾은 것"이라며 "인구 보너스 효과를 '스마트 보너스 효과'로 대체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생산성 향상 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로봇산업은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 요소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과 접목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다. 이들 요소가 많이, 다양하게 결합할수록 제품이 고도화되고 응용 분야가 넓어진다. 박 연구원은 "로봇은 향후 자동차, 의료, 국방, 교육, 해양 등 전·후방 산업과의 연계해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미래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기술격차 M&A로 빠르게 따라잡는 중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일본과 중국 사이엔 아직은 2년 정도의 기술 격차가 있다. 이 조사에서 일본의 로봇 기술을 100으로 가정할 때 미국의 기술력은 98.9, 한국은 85, 중국은 76.3으로 평가됐다. 한국도 중국 보다는 앞섰지만 일본과는 1년 이상 기술 격차가 있는 셈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 기업들은 이 격차를 인수·합병(M&A)을 통해 줄이고 있다. 중국 최대의 가전 업체인 메이디그룹이 2017년에 독일 로봇기업인 쿠카 (KUKA)를 45억 유로에 인수하면서 중국 산업용 로봇 시장의 강자로 부상하기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안후이(安徽)성에 있는 스마트 장비 회사 이포트는 이탈리아 도장 로봇 전문생산 업체인 CMA와 금속가공 로봇 생산업체인 ‘이볼루트(EVOLUT)’를 잇따라 인수했다. 이포트는 이후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65kg 반송이 가능한 로봇 개발에 성공했다. M&A가 기술 도약의 지렛대가 됐다.

10여개 도시 경쟁적으로 로봇 클러스터 구축 

중국 정부는 로봇산업 발전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나눴다. 중앙정부는 산업용 로봇의 핵심 부품 개발, 로봇을 중심으로 한 생산 자동화 구축 등 중장기 지원 계획을 수행한다. 지방정부는 로봇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일을 맡았다. 상하이·하얼빈·선양·충칭 등 10여곳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로봇 클러스터 구축이 한창이다.

박 연구원은 "중국 로봇 육성책이 산업 근간인 제조업을 중흥시키기 위한 조치인 만큼 정책적 역량이 총동원될 것"이라며 "제조 경쟁이 불가피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생산성 경쟁에서 크게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베이징·선전·충칭·항저우·텐진=장정훈·박태희·강기헌·문희철·김영민 기자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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