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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꺼져도 재난방송하는 NHK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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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지난해 9월 6일 새벽, 진도 7의 강진이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를 덮쳤다. 지역 화력발전소가 지진으로 타격을 입자, 일순간 홋카이도 전역에 전기공급이 끊기는 ‘블랙 아웃’이 발생했다. 자체 발전시설을 돌린 NHK는 곧바로 재난방송 체제로 들어갔다. 그런데 NHK 아나운서의 이례적인 호소에 귀가 쫑긋했다.

“지금부터 전하는 정보를 피해지역에 있는 분들께 전해주십시오.”

홋카이도 주민들은 ‘블랙 아웃’으로 TV를 켤 수 없으니,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SNS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정보를 전달해달라는 얘기였다. 재난방송은 피해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상식을 깬 발상이었다.

실제로 전기는 끊겼어도 통신망은 살아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재난정보는 휴대전화나 SNS를 타고 재해지역으로 들어갔다. “전국적으로 전달하는 게 결국은 피해 지역을 위한 것”이라는 NHK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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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재해가 잦은 일본에선 재난방송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돈과 인재와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언론계에선 “재난·재해 담당 기자가 에이스 기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민영방송사도 예외가 아니다. 홋카이도 지진 당시 TV아사히의 아나운서가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지진 발생 뒤 겨우 4분 뒤였다. 오전 3시 8분 지진이 발생했고, 기상청으로부터 진앙지와 진도 등 지진 정보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2분 뒤. TV 화면엔 이미 문자 정보가 흐르고 있었고, 3시 12분엔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정보가 전달됐다.

재난 상황에선 SNS가 더 활약하는 것 같아도 여전히 TV 방송국의 역할은 유효하다. 특히 거짓정보와 가짜뉴스가 넘쳐날 때, 중심을 잡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건 TV의 몫이다. “외국인이 물건을 약탈한다”는 등의 악의적인 가짜뉴스뿐 아니라, 어느 주유소가 문을 열었는지, 언제부터 물 공급이 재개되는지 같은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정보도 재난방송은 모두 포함하고 있다.

지난주 강원도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에 대한 방송사들의 보도행태를 놓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소방당국이 대응 최고 수준인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의 소방차가 긴급 동원되고 있는 재난 상황에도 지상파 방송들은 한가롭게 드라마나 예능을 틀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홋카이도 지진 재난방송 사례를 보면, 문제는 예산이나 인력, 장비 부족은 아닌 듯 하다. 우리 방송사가 갈 길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