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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판 '보이스' …납치된 그 여성에겐 무슨일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56)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건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를 위하는 마음 때문일까요?

최근 개봉한 북유럽 영화 두 편을 보고 머릿속에 앞선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오직 소리로만 사건을 추적하는 독특한 소재의 덴마크 영화 '더 길티'와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선택해야만 하는 조난자의 이야기를 그린 아이슬란드 영화 '아틱' 입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라, 영화 '더 길티'

영화 '더 길티'에서 긴급 신고 센터에 근무 하는 경찰 아르게르 역을 맡은 야곱 세데르그렌. [사진 모비]

영화 '더 길티'에서 긴급 신고 센터에 근무 하는 경찰 아르게르 역을 맡은 야곱 세데르그렌. [사진 모비]

주인공 아르게르(야곱 세데르그렌 분)는 긴급 신고 센터에 근무 중인 경찰입니다. 자전거 타다 넘어졌다는 전화에서부터 욕설 전화까지 하루에도 수백통의 전화를 받는 그에게 이상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옵니다.
"엄마야 아가,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만 괜찮아."

잘못 걸렸거나 장난 전화쯤으로 알고 끊으려던 찰나 아르게르는 이상한 느낌을 받아 이렇게 질문합니다. "혹시 납치되셨나요?" "네"
이때부터 오직 전화상 소리로만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 영화는 시공간적 배경이 늦은 밤 긴급 신고 센터라는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합니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 차창을 닦는 와이퍼 소리, 초인종 소리 등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 관객이 상상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과 동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영화 '극한직업'으로 천만 배우가 된 배우 진선규는 "전화벨이 울리면 나도 모르게 같이 숨죽여 침묵했다"며 국내에서 리메이크한다면 꼭 해보고 싶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전화상 소리로만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 영화는 시공간적 배경이 늦은 밤 긴급 신고 센터라는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사진 팝엔터테인먼트]

오직 전화상 소리로만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 영화는 시공간적 배경이 늦은 밤 긴급 신고 센터라는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사진 팝엔터테인먼트]

작품을 보다 보니 생각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하정우 주연의 영화 '더 테러 라이브'와 청력에 근거하여 범죄를 분석하는 '보이스 프로파일러'를 소재로 한 OCN 드라마 '보이스' 인데요.

두 작품 모두 한정된 공간에서 전화로 인해 사건이 벌어지지만, 그 공간 안에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외부 인물을 통해 사건 현장을 보여줍니다. 반면 이 영화 '더 길티'는 장면이 센터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오직 들려오는 소리로부터 사건을 상상해야 하므로 관객의 입장에서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죠.

납치된 여자를 구하기 위해 업무 매뉴얼을 거스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던 아르게르는 역시 전화를 통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데요. 이를 계기로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는 영화의 흐름상 큰 반전으로 등장하니 어떤 내용인지는 영화를 통해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리메이크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접전 끝에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과 동시에 제작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할리우드판 '더 길티'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집니다.

더 길티

영화 '더 길티' 메인포스터. [사진 모비]

영화 '더 길티' 메인포스터. [사진 모비]

감독: 구스타브 몰러
각본: 구스타브 몰러, 에밀 니가르 알베르트센
출연: 야곱 세데르그렌, 예시카 디나게
촬영: 재스퍼 스패닝
음악: 카를 콜레만, 카스파르 헤셀라게르
장르: 스릴러
상영시간: 88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9년 3월 27일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 영화 '아틱'

영화 '아틱'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북극에 조난된 오버가드 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 [사진 모비]

영화 '아틱'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북극에 조난된 오버가드 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 [사진 모비]

이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영화 내내 지겹도록 보는 건 새하얀 눈뿐이죠.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북극에 조난된 오버가드(매즈 미켈슨 분)는 구조만을 기다리며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냅니다. 정해진 시간에 구조 신호를 보내고, 북극의 지형을 조사하고, 식사를 해결하죠. 밤이 오지 않는 곳이라 오직 손목시계의 알람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구조 신호를 보내던 중 눈앞에 헬기가 나타납니다. 이제 살았다 싶어 구조를 기다리는데요. 헬기는 갑자기 부는 거센 바람 때문에 착륙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하게 되죠. 조종사는 사망했고 생존자인 젊은 여성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상황. 부상자를 그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그녀를 자신의 거처로 데려옵니다. 그녀를 안아 자리에 눕혀주다 살포시 안게 되는데요.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온기를 느낀 그의 표정은 복잡미묘합니다. 오버가드 역의 매즈 미켈슨은 이 장면을 '제일 사랑하는 장면'이라며 매우 부드럽고 감성적인 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오버가드는 추락한 헬기에서 생존한 젊은 여성을 구해 자신의 거처로 데려온다. [사진 모비]

오버가드는 추락한 헬기에서 생존한 젊은 여성을 구해 자신의 거처로 데려온다. [사진 모비]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돌보지만 상태는 점점 악화됩니다. 이대로 두면 죽을 수도 있는 그녀를 살리고 자신도 살기 위해 지도 한장에 의지한 채 임시 기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영화는 매일 정해진 하루를 보내던 오버가드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추락한 헬기에서 부상자를 구출하는 것에서부터 그녀를 데리고 임시 기지까지 가는 것까지. 그가 만약 혼자였다면 과연 이런 선택을 했을지 의문입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극적인 장면이라고 하면 임시 기지로 향하던 중 동굴에서 쉬고 있는데 북극곰이 다가와 두 사람을 위협하는 장면입니다. 사납게 위협하는 장면을 실감 나게 연출하고자 고민한 감독은 유튜브에서 북극곰과 수영하고 있는 한 남자의 영상을 보게 되고 그에게 연락합니다.

부상자를 데리고 임시 기지를 찾아가는 오버가드. 그는 부상자에게 이 말을 되풀이 한다.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사진 모비]

부상자를 데리고 임시 기지를 찾아가는 오버가드. 그는 부상자에게 이 말을 되풀이 한다.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사진 모비]

그는 자신의 북극곰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허락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곰은 애교가 많은 곰이었죠. 좀처럼 사람을 위협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고심 끝에 주인은 곰이 입을 벌릴 때마다 칭찬과 함께 오레오 쿠키를 주었고 쿠키 맛에 빠진 곰은 열연을 펼쳤다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귀여운 에피소드의 주인이 내가 본 그 곰이 맞는지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

가도 가도 험난하기만 한 길 위에서 오버가드는 부상자에게 계속 이 말을 되풀이합니다. "괜찮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었겠지만 어쩐지 저는 본인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틱

영화 '아틱' 메인포스터. [사진 모비]

영화 '아틱' 메인포스터. [사진 모비]

감독: 조 페나
각본: 조 페나, 라이언 모리슨
출연: 매즈 미켈슨, 마리아 텔마 스마라도티르
촬영: 토마스 외른 토마손
음악: 조셉 트래패니스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98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9년 3월 27일

오늘 소개해드린 두 영화 모두 한 남자가 다른 사람을 돕는 내용이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은 남을 도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돕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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