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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 김00, 타일 박00…현판에 빼곡히 이름 새긴 건축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순의 시골 반 도시 반(4)

“양 부장, 안녕? 단지 밖에 공원을 조성하느라 나무들을 잔뜩 뉘어놓고 헬멧을 쓴 노동자들 몇 명이 공사할 구간과 일정을 짜고 있는 것이 보이네. 이 광경이 책을 만드는 것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아.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참 멋지고, 다이내믹하고, 야성적으로 보인다.”

시골 아틀리에에 들어와 주말을 보내느라 직원들의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가 끊이지 않는다. 데크에 나가 보면 잔 나뭇가지들이 떨어져 있다. 어떤 때는 산수유 열매 씨가 떨어져 있기도 하고 산수유 열매 붉은빛이 창문에 죽 흘러 있기도 하다.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이 활짝 핀 가운데 가을에 맺힌 빨간 열매가 여전히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이 활짝 핀 가운데 가을에 맺힌 빨간 열매가 여전히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나는 데크의 잔가지와 산수유 열매를 주우며 사무실로 문자와 이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아마 나와 가장 많은 문자를 주고받는 사람은 편집부원일 것이다. 가열차게 일하다가 주말에는 애틋한 주말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래, 수고 많았어. 잘 쉬어.” “이제 좀 쉬시겠네요. 저도 고기 먹으러 갈게요.”

공사 현장에 눈길 두게 된 세번째 집짓기

이제는 이메일로 저렇게 건축과 책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책 동네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건축 현장은 참으로 낯설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치만큼 세상을 이해한다고 한다.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공사 현장에 오래 눈길을 주어본 적은 없다. 어찌어찌 집 두 채를 지어보는 경험을 한 후 이제는 공사 현장에 눈길을 오래 두게 되고, 작업 과정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나, 얼마나 더 걸릴 것인가, 이쯤에선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까를 생각하기도 한다.

건축 공사 현장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건물이 너무 올라가지 않아 참고 참다 현장으로 쫓아간 적도 있다. 하지만 차가운 시멘트벽에 걸려 있는 인부들의 겉옷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 나오기도 했다. 또 나는 이유를 다 알 수 없으나, 텅 빈 공사 현장에 드나드는 바람 소리가 현장 소장의 한숨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건축가와 현장 소장은 내가 알지 않아도 될 일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끼리 처리하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얼핏 옆에서 보아도 내가 알지 않는 편이 훨씬 내 건강에 좋으리란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소소하고 크고 작은 일들이 매일 벌어지는 곳이 공사 현장이었다. 때로는 얼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우리 집을 짓는 일을 하고는 서로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때로는 얌전한 청년들이 굵은 쇳덩이를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용접하고, 묵묵히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루치의 삶을 부려놓았던 그들은 해가 지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 한순]

한루치의 삶을 부려놓았던 그들은 해가 지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 한순]

현장의 불합리한 일 처리를 보았을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건축가와 현장 소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현장 인부들에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하시면 안 되고요, 이렇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마치 슈퍼에서 물건을 잘못 집었을 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화를 건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현장 사람들과 소통 방법을 몰랐다. 그분들과 대화를 해본 적도, 이렇게 집을 짓기 전까지는 가까이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들의 물성이 물컹거리는 삶 앞에서 어쩌면 주눅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삶 남기고 간 현장 인부들 

그래서 건축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니 유명 건축가의 건물과 리뷰 자료는 많이 있었다. 그런데 현장 사람들과의 소통 방법과 그들과 조화를 이뤄나가는 대안에 대한 글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좀 실망했다. 어떤 건축물이 기념비적으로 남았을 때 건물이 주는 특정한 분위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그곳에 잠깐의 삶을 남기고 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돌인지 벽돌인지 시멘트인지는 바로 눈으로 구별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아버지가 한때 작은 짐을 부려놓았던 노동의 흔적’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페터 춤토르는 그의 저서에서 “공사장에서 들리는 못 박는 소리, 공구 돌아가는 소리,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에 미소를 짓는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을 단순히 공사 현장의 소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합리와 불합리가 뒤섞이고 사람들이 조율하고 농담하고 하루의 노동을 파는 현장까지 포함한 내용으로 이해할지는 각자의 경험치에 따를 것이다.

집을 세 번 지어야 ‘세상을 좀 안다’는 세속의 말이 있다. 각자의 욕망 크기 조절과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이해와 도모, 낯선 사람들의 하루 밥벌이가 현장을 이어갔다. 집이 다 지어졌을 때 나는 아주 조그마해져 있었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세계는 참으로 좁았고 이 집을 스쳐 간 수많은 손길에 절로 감사의 마음이 솟았다. 그것은 집이 완벽하게 지어져서 생긴 마음이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공정과 사람들의 마음과 열정과 밥벌이와 꿈이 합쳐져야 집이 된다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이것저것 공부하다 만난 반가운 책이 있다. 『아파트와 바꾼 집』(박철수․박인석 지음)이란 책이다. 이 책은 참으로 친절하고 사람의 향기가 물컹 나는 책이다. 아파트 전문가 교수 둘이 살구나무집을 지은 이야기다.

『아파트와 바꾼 집』, 박철수ㆍ박인석 지음. [사진 한순]

『아파트와 바꾼 집』, 박철수ㆍ박인석 지음. [사진 한순]

건축 과정에서 미리 준비해야 할 것, 설계자와 설계 단계에서 고민해야 할 것, 집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미래의 삶에 대한 예측에서부터 실용적이고 경험이 풍부한 여러 대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을 가장 사로잡은 페이지가 있었다. 232페이지에서 나는 그동안 다른 건축 책이나 인터넷 정보를 뒤지며 내내 목말라 있던 감성을 발견했다.

이 책의 저자 두 사람은 집이 완성된 후 그럴듯한 이름의 화려한 현판 대신, 그들 집의 공사에 참여해 정성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도 빼지 않고 현판에 기록했다. 공사 기간 내내 밥을 주문해 먹은 식당까지 한 페이지 안에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공사에 참여한 사람 이름 모두 기록한 현판 

나는 이 책의 백미는 바로 232페이지라고 생각했다. 공사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 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절충하고, 하루하루 낯선 이들의 노동이 쌓이고, 공사의 말미에 현장을 떠난 그들과 마음의 손을 잡고 이름을 기억할 즈음 집은 완성되는 것이었다. 물질로 보이는 모든 재료 외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의 손과 마음이 포개져 지어지는 것이 집이었다.

화려한 현판 대신 그들 집의 공사에 참여해 정성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을 한명도 빼지 않고 현판에 기록했다. [사진 한순]

화려한 현판 대신 그들 집의 공사에 참여해 정성을 보탠 사람들의 이름을 한명도 빼지 않고 현판에 기록했다. [사진 한순]

우리 집터를 닦고 기초공사를 할 때, 얌전한 중년 남자가 “이곳에 볕이 잘 듭니다. 동남향으로 아주 터가 좋습니다. 이곳에서 살면 더 건강해지겠습니다”하고 덕담을 건넸다. 겨울 공사를 한 터라 공사 현장에 있는 사람을 보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갈 때마다 덕담을 더 해주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현장 컨테이너 하우스도 멀리 떨어져 있고 전기도 들어오기 전이라 그 흔한 믹스커피 한잔 대접하지 못했고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우리 집을 찾은 손님들을 길게 배웅했다. 손을 흔들며 차가 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대문 앞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이 집을 스쳐 지나간 많은 손과 그들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겹친다. 그래서 더 오래오래 손을 흔들고 있게 된다.

가난한 이들의 소박한 마음 앞에서 나는 많이 정제되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맥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참 신기하다. 자주 만났던 사람들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이렇게 신비한 마음을 만들어내다니. ‘토닥토닥’ ‘투닥투닥’ ‘우당탕쿵광’ 하는 공사 현장에서 말이다.

“양 부장! 이제 손님들이 가셨네. 새가 자기 집을 짓기 위해 수많은 잔가지를 물고 가다가 떨어뜨리는 것을 보았어. 우리의 손길이 얼마나 더 가야 이 책이 완성될까. 될 때까지 해보자고. 수고!”

한순 시인·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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