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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가끔은 세상의 거울에 비추어 보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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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호 31면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 누군지 참 잘 지었다. 이보다 우리를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한국은 그야말로 역동적이다. 매사 숨 쉴 틈 없이 돌아간다.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전 국민이 늘 전력투구한다.

국제화와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우리 생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봐 #국제사회에도 눈·귀와 생각 있어 #우리 주장에 객관성·합리성 중요 #옳은 데도 자칫 상대에 당할 수도 #한 템포 늦추고 냉정히 대응해야

위기에서 역량은 더 돋보인다. 국가 금융위기에 어느 국가 국민이 집안 금붙이를 내놓는가. 우리는 그랬다. 각 가정 장롱에서 무려 227톤, 21억 달러의 금이 나왔다. 위기도 갑자기 찾아왔지만 극복도 전광석화였다. 위기가 오면 또 뭉칠 것이다.

열심인 우리가 그런데 딱 2% 부족한 것이 있다. 바로 우리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마 우리끼리 오래 살아서 그렇지 않을까? 흔히 우리 중심이다. 한 예를 보자. 1997년 11월의 일을 지금도 “IMF 사태”라 부른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우리에게 급전을 융통해 주었다. 돈 빌려준 은행 이름으로 ‘사태’라고 부르는 건 영 이상하다. IMF는 위기에 빠진 바 없고, 그 사태를 초래하지도 않았다. 일종의 유체이탈 화법이다.

얼마 전 대망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고지를 넘었다. 명실상부 선진국 클럽이다. 성취에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법적으로 한발은 개도국에 살짝 걸치고 있다. 개도국에 주는 통상협정 특혜가 못내 아쉽기 때문이다. 3만 달러 국가가 개도국이라면 국제사회가 어떻게 볼까? 우리 중심 관조법이다.

1960~70년대 국가대표 축구경기 라디오 중계에선 우리가 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수많은 슛이 골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심판 편파 판정도 유례없다. 실제 경기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중요한 국제협상과 결정을 전하는 목소리는 지금도 이와 비슷하다.

주변에도 보인다. 한남동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을 ‘Namapeurika Gonghwaguk Embassy’로 쓴 도로표지판에 어리둥절해 하는 외국인이 몇 년 전 KBS 뉴스에 나왔다. ‘광화문 사거리(Gwanghwamun Sageori)’ 표지에 길 잃은 외국 관광객을 인터뷰한 건 MBC다. 알아보건 말건 우리 편한 대로 썼다. 올 3월 국토교통부는 전국 표지판 정비 계획을 다시 밝혔다. 영어로 번역된 우리 법령은 수수께끼 같아 오히려 읽으면 오해가 생긴다.

지난해 비행기를 탄 우리 국민은 3000만명, 서울로 온 외국인은 1500만명. 세계 곳곳으로 한류가 찾아가고, 우리 방송엔 외국인이 넘쳐난다. 이런 국제화 홍수에도 ‘우리끼리’ 성향은 여전히 뿌리 깊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볼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검은 머리 외신기자” 언급도 그렇다. 이젠 웬만한 제3세계 국가에서도 듣기 힘든 표현이다.

이런 경향 속에서 일이 닥치면 대개 ‘원인은 외국에 있고, 우리는 그저 억울하다.’ 비장함 속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세계 7위 교역 규모, 11위 경제 규모 국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자리매김이다.

이런 부분이 있다. 사실 중요한 일일수록 큰 그림에선 대체로 우리 생각과 입장이 옳다. 그런데 우리가 옳으면, 우리 의도가 선하면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문제다. 국제사회에도 눈과 귀가 있고 생각이 있다. 우리가 어떻게 비치고, 들릴까 하는 점엔 무신경하다. 때론 과감하다. 판단이 서면 어떤 일에 대해선 찬물을 끝까지 틀고, 어떤 나라에 대해선 뜨거운 물을 마지막까지 돌린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물은 대개 중간 정도 온도로 돌아간다.

조약이나 국제문서를 새길 때도 그렇다.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짐작하고 그렇게 믿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도,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규정도 우리에게 유리한 최상의 시나리오로 희망의 해석을 한다. 북한, 이란 제재조치엔 특별한 대우를 기대한다. 우리 사정이 남다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우리 사정 이해 못 하는 국가들은 덕이 모자라고, 인정 없는 국제사회는 야속하다.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여러 현안을 대하는 방식도 비슷하게 흐른다.

긍정적 사고, 물론 중요하다. 창의성, 불변의 덕목이다. 우리 국익을 위해 팔 걷고 나서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상대를 설득하고 진정으로 실리를 챙기자면 우리 생각·주장이 객관성과 합리성이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자료와 데이터, 논리와 판례를 그들 눈앞에 펼쳐야 한다. 사람에게 평판이 중요하듯 국제사회 눈매도 날카롭다. 중요한 일일수록 냉정하게 우리 스스로를 평가하고 때론 객관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자. 그래야 이긴다. 진정 잇속을 차리는 길이다.

이를 놓치면 분명 우리가 억울한데도 자칫 상대의 되치기 한판에 넘어간다. 우리가 몰아붙일 일인데 시간이 지나면 공수가 바뀌어 있다. 우리가 피해자인데 국제여론전에서 밀린다. 분통 터질 일이다.

국내외가 어지럽다. 중요한 기로에서 가끔씩은 우리를 세상의 거울에 비추어 보자. 국제화니 선진화니 거창한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다. 한 템포만 늦추고 냉정히 따지자.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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