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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는 날짜를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5일 전북 주시 전주천변에 심어진 벚꽃이 예상 개화시기보다 빠르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뉴스1]

지난달 25일 전북 주시 전주천변에 심어진 벚꽃이 예상 개화시기보다 빠르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뉴스1]

지난 3일 서울에 벚꽃이 피었다. 기상청 공식 발표다.

서울 벚꽃 개화는 서울 종로구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지정한 왕벚나무가 기준이 된다.
송월동 벚꽃은 지난해 4월 2일보다는 하루 늦고, 평년값(1981~2010년 30년 평균)인 4월 10일보다는 7일 이른 것이다.

기상청은 벚꽃 개화를 발표하지만, 예보는 하지 않는다. 2016년부터 민간 기상정보업체에 업무를 넘겼다.

민간 기상정보업체인 케이웨더는 지난 2월 21일 벚꽃 개화를 예보했다.
서울에서는 4월 3일 개화할 것으로 당시 예보했는데, 정확히 맞춘 셈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사실 벚꽃 예보는 쉽지 않다. 최선을 다해 분석하지만, 운도 따랐다”고 말했다.

벚꽃 개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중요하다.
여의도 벚꽃 축제 등 지역 축제나 행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자칫 행사 시기와 벚꽃 개화 시기가 어긋나면 낭패다.

그렇다면 벚꽃 개화 시기는 어떻게 예측하는 것일까.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활용

다소 쌀쌀한 날씨를 보인 1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벚꽃길에 일부 개화한 벚꽃이 상춘객을 반기고 있다.[연합뉴스]

다소 쌀쌀한 날씨를 보인 1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벚꽃길에 일부 개화한 벚꽃이 상춘객을 반기고 있다.[연합뉴스]

김용구 경북대 통계학과 교수팀은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통계학적인 방법으로 벚꽃의 개화를 예측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2월과 3월의 평균기온, 최저기온, 최고기온, 월 강수량, 일조량 데이터를 활용했다.
김 교수팀은 회귀분석을 통해 지역별로 언제 벚꽃이 필 것인지 예측한 것이다.

김용구 경북대 교수팀이 제시한 벚꽃 개화 예측 결과. 수치는 1월1일부터 계산한 날짜를 말한다. 90일은 3월 말에 해당한다.

김용구 경북대 교수팀이 제시한 벚꽃 개화 예측 결과. 수치는 1월1일부터 계산한 날짜를 말한다. 90일은 3월 말에 해당한다.

반기성 센터장은 “벚꽃 개화 예측을 위해서는 기온·강수량 등 기상관측 자료뿐만 아니라 식물 자체의 특성, 지역 상황 등 다양한 요소를 최대한 고려한다”며 “개별 요소를 참고하지만, 전체적인 기상 흐름을 파악해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계학적인 방법(회귀분석)으로 예측할 때는 당연히 과거 수십 년 벚꽃이 개화한 시기도 참고한다.

벚꽃 개화 시기는 보통 2월과 3월의 기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웨더 측도 2월 상순과 중순 지역별 관측기온을 바탕으로, 또 2월 하순과 3월 기온 전망을 토대로 예측했다.

케이웨더는 지난 2월 올해 벚꽃이 평년보다 4~7일 일찍 필 것으로 전망했다. 여의도에서는 4월 10일쯤 만개할 것으로 예상했다.
벚꽃은 개화 후 만개까지 약 일주일 정도 걸리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지난 2월 21일 케이웨더가 발표한 벚꽃 개화 예상 시기 [자료 케이웨더]

지난 2월 21일 케이웨더가 발표한 벚꽃 개화 예상 시기 [자료 케이웨더]

당시 케이웨더 관계자는 "남은 2월과 3월도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는 가운데, 일시적으로 북쪽에서 대륙고기압이 확장하며 꽃샘추위가 나타나 기온이 다소 큰 폭으로 내릴 때가 있겠으나,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3월 기온 예측이 틀리면 개화 예상 시기도 빗나가게 된다.
실제 지난달 상순 기온은 평년보다 높았지만, 중순과 하순은 평년과 비슷했다.

기상청이 2016년 봄꽃 개화 예보 업무를 민간에 넘길 때 명분은 “다양한 업체의 경쟁을 통한 ‘날씨 경영’ 시장 확대”였다.
장마 시작이나 개화 시기 예보처럼 잘 맞지 않은 것은 피하겠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일본 기상청도 2010년 벚꽃 개화 예보를 그만뒀다.
지난 2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한 민간업체는 전국 시민 1만 명의 도움을 받고 있다. 벚꽃 눈 사진을 정기적으로 받고 1만3000곳의 자동기상 관측 자료를 수집한다.
이 업체는 지난 15년간 수집한 200만 건의 빅 데이터를 예보에 활용한다. 인공지능(AI)도 예보에 활용한다고 주장한다.

추위를 겪어야 피어나는 봄꽃

여의도 벚꽃 축제를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벚나무가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의도 벚꽃 축제를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벚나무가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봄꽃이 피는 시기는 2~3월 기온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북반구 온대지역의 낙엽 식물이 봄꽃을 준비하는 것은 한 해 전 여름부터다.
하지(夏至)가 지나고 낮이 짧아지면 식물의 조직 일부가 꽃눈으로 분화한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9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꽃눈 조직은 가을까지 자라다가 날씨가 차고 건조해지면 잠에 빠져든다.
‘내생휴면(內生休眠)’이다.

이 잠에서 깨어나 꽃을 피우려면 일정 시간 추위를 겪어야 한다.
추위의 총량, 즉 냉각량(冷却量·저온요구량)을 채워야 한다.
가을에 철모르고 꽃을 피웠다가 뒤이은 추위에 얼어 죽는 낭패를 피하게 해주는 식물의 생체시계다.

냉각량은 식물 종마다 다르다.
식물 고유의 기준온도, 하루 중 최저·최고·평균기온 등에 의해 하루 치 냉각량이 결정된다.
이 값은 일기장에 기록되듯 겨우내 차곡차곡 쌓인다.

겨울이 깊어지고 냉각량이 정해진 수치에 도달하면 식물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다.
개화를 막는 장애물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추위가 남아 있으면 강제휴면(환경 휴면) 상태가 유지된다. 겉으로는 잠을 계속 자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개화엔 따뜻한 온도가 필요

꾀꼬리 한 마리가 대전 구봉산 입구 아까시나무에 앉아 휴식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꾀꼬리 한 마리가 대전 구봉산 입구 아까시나무에 앉아 휴식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강제휴면까지 해제되고 꽃이 피려면 ‘따뜻한 온도’에 일정 시간 노출돼야 한다.
냉각량처럼 정해진 만큼의 가온량(加溫量·고온요구량)이 쌓여야 한다.

지난 2014년 국가농림기상센터 김진희 박사는 개나리의 냉각량을 ‘-90’, 가온량을 ‘128.5’로 산출했다.
벚꽃 냉각량은 ‘-100’, 가온량은 ‘158’이라는 것이다.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의 개화 예측 모델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의 개화 예측 모델

2013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실제 관측된기온 변화와 벚꽃 개화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점선은 냉각량과 가온량의 축적 상황을 보여준다.

2013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실제 관측된기온 변화와 벚꽃 개화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점선은 냉각량과 가온량의 축적 상황을 보여준다.

벚꽃이 피려면 개나리보다 더 오래 추위를 겪어야 하고, 따뜻한 날도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런 수치를 활용하면 장기 관측자료가 없어도 지점별 개화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가을부터의 기온과 봄의 예상 기온만 있으면 된다.

이에 앞서 서울대 이은주 생명과학부 교수와 허창회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등은 2006년 논문에서 식물 종마다 기준 온도가 있다고 밝혔다.
그 기준 온도와 일평균 기온 차이가 누적되고, 그 값이 일정량에 도달하면 꽃이 핀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벚꽃의 경우 기준온도가 영상 5.5도이고, 성장온도가 106도에 이를 때 꽃이 핀다는 것이다.
성장온도(Growing degree-day, GDD)는 매일 일평균온도에서 기준온도를 뺀 값을  누적한 값이다.

개나리와 진달래, 배꽃, 아까시나무의 기준온도는 각각 4.1도, 4도, 5.3도, 8.3도로 산출됐다.
또, 성장온도는 각각 84.2도, 96.1도, 138도, 233도였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맨 먼저 피고, 그다음 벚꽃과 배꽃이, 마지막에 아까시나무가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꽃샘추위가 물러간 직후 갑자기 기온이 크게 상승하기도 한다.
높은 기온이 며칠 이어지면 봄꽃이 순서대로 피지 않고, 진달래·개나리·벚꽃·목련이 한꺼번에 피어나기도 한다.
때 이른 더위에 성장온도가 채워졌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적 연구도 필요

식물 연구에서 많이 사용되는 애기장대. 유채꽃과 한해살이 풀이다. [중앙포토]

식물 연구에서 많이 사용되는 애기장대. 유채꽃과 한해살이 풀이다. [중앙포토]

식물이 개화 시기를 조절하는 과정을 더 파고 들어가면 낮의 길이와 기온 변화를 감지하는 식물의 여러 유전자와 거기서 생산된 단백질들이 등장한다.

분자생물학자들은 이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식물 연구도 그렇지만 개화 조절에 대한 연구에도 '애기장대(Arabidopsis thaliana)'란 식물이 등장한다.
유전체(게놈) 크기가 작아 연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유채꽃과 한해살이 식물인 애기장대에서 확인된 개화 조절 유전자는 FLC(Flowering Locus C, 개화 유전자C)다.
FLC는 식물이 추운 겨울을 거치기 전까지는 개화를 억제한다.
애기장대의 씨앗이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면 FLC 유전자는 스위치가 꺼져버리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유전자 스위치가 꺼지는 것은 염색체의 '히스톤'이란 단백질에 메틸화(메틸기의 결합)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전물질인 DNA의 이중나선이 실이라면 그 실이 감싸고 있는 실패가 히스톤이다.
히스톤이 달라지면 DNA가 잘 풀려나오지 못하게 된다.

씨앗 세포에서 FLC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면, 씨앗이 자라면서 새로 생기는 모든 세포에서도 FLC 유전자가 꺼진 생태가 이어진다.
이렇게 DNA 자체가 바뀌지 않았지만, 유전자 활성만 달라지는 것을 후성유전학적 변화라고 한다.

2010년 국제학술지 '셀'에 게재된 논문에서 소개한 애기장대 개화조절 기작. 개화 시기 조절에 수많은 유전자가 간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0년 국제학술지 '셀'에 게재된 논문에서 소개한 애기장대 개화조절 기작. 개화 시기 조절에 수많은 유전자가 간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화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꺼졌다고 해도 그냥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환경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환경조건이 적당한가를 판단하는 데도 여러 유전자가 간여한다.

개화를 조절하는 자이겐티아(GIGANTEA)라는 단백질, 식물의 광수용체(생체 내에서 빛을 인지하는 단백질)인 FKF1 단백질, 기온 변화를 인지하는 'FLM' 유전자 등 수십 개 유전자가 있다.

그렇다면 벚나무 등 다년생식물은 어떻게 될까.
봄에 꽃을 한번 피우고 나면 FLC 유전자가 다시 활성화돼야 한다. 그래야 다음 겨울을 넘길 때까지 꽃이 피는 걸 막을 수 있다.
다년생식물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세포의 히스톤 구조를 원래대로 다시 바꾸는지는 지금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데니얼 샤모비츠 『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

지구온난화도 중요한 변수

거제 대금산 진달래 [중앙포토]

거제 대금산 진달래 [중앙포토]

벚꽃의 개화 시기는 해마다 달라지는 기상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봄꽃이 피는 시기도 앞당겨진다.

실제로 2010~2013년 서울에서 벚꽃이 개화한 것은 4월 중순(12~15일)이었다. 당시 3월 평균기온은 3.6~5.1도였다.

그런데 2014년 3월 평균기온은 7.9도로 상승했고, 그해 벚꽃은 3월 28일에 피었다. 서울에서 3월에 벚꽃이 핀 것이다.

2015년 이후 올해까지 서울에서는 벚꽃이 4월 초순(2~6일)에 핀다.
같은 시기 3월 평균기온은 6.3~8.1도로 2010~2013년과는 차이가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912~2017년 사이 10년마다 0.18도씩 상승했다.
1912~1941년과 1988~2017년을 비교하면, 봄은 13일이 빨라졌다.
또, 겨울은 109일에서 91일로 18일 짧아졌고, 봄은 3일이 늘었다.

춘분을 이틀 앞둔 지난달 19일 부산시 동래구 안남로변에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해 시민들에게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날 부산지방 낮 최고기온은 19도, 미세먼지는 보통 수준을 기록해 완연한 봄날씨를 보였다. 송봉근 기자

춘분을 이틀 앞둔 지난달 19일 부산시 동래구 안남로변에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해 시민들에게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날 부산지방 낮 최고기온은 19도, 미세먼지는 보통 수준을 기록해 완연한 봄날씨를 보였다. 송봉근 기자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은 서울 홍릉수목원에서 최근 15년(2005~2019년)과 과거( 1968~1976년)의 개화 시기를 비교했다.
그 결과 생강나무는 9일, 산수유는 6일 정도 개화 시기가 앞당겨졌다.

지금처럼 온난화가 계속되면 서울에서 3월에 벚꽃을 보는 게 익숙하게 될 것이다.
대신 21세기 말에는 따뜻한 겨울 탓에 냉각량을 채우지 못한 경남 진해의 벚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할 수도 있다.
피더라도 한꺼번에 예쁘게 피지 않아 벚꽃 축제도 점차 사라질 거란 얘기다.

또 다른 변화는 제주도 등 남쪽 지방과 서울 등 북쪽 지방 사이의 개화 시기 차이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보통 제주도 서귀포에서 벚꽃이 피는 시기는 3월 24일, 서울은 4월 10일로 17일 차이가 난다.
하지만 2015년 봄에는 3월 25일과 4월 3일로 고작 9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2016년 5월에는 아까시나무 개화 시차가 줄면서 벌꿀 생산량이 급감했다.
남쪽과 북쪽 지방의 아까시나무 꽃 개화 시기 차이가 평년의 절반 수준인 10~15일로 줄었다.

양봉 농가에서는 평상시 개화 시기에 맞춰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면서 꿀을 채취한다.
개화 시기 차이가 줄면서 벌꿀 채취 기간도, 채취량도 크게 줄었다.

결국, 지구온난화는 식물의 개화 시기를 변화시키고,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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