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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연애소설> "그 누나, 충격으로 한동안 실어증 걸렸대"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28회

또 해가 바뀌었다. 마흔 번째 맞는 새해였다. 첫 주말에 바람이라도 쏘일 겸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나는 일단 집에서 가까운 옥수역으로 갔다. 노선도를 한참 들여다보는데 양평 가는 경의중앙선이 들어왔다. 해도 바뀌고 마음도 많이 정리됐기에 누나를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졌다고 다시 보지 않을 사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전철을 한참 타고 가다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상봉역인데, 그쪽으로 바람 쐬러 가는 길이에요."
"앗 저런....난 언니 보러 원주로 가고 있는데 어쩌지...?"
"아 그렇구나. 길을 나섰으니 그냥 찬바람이라도 쐬고 오죠, 뭐"
누나 아버지 장례식을 함께 치른 그 이복언니를 말하는 것이었다. 20년 이상 아무 연락 없이 살아왔다는....

"이제 두 분이 좀 가깝게 지내는가 봐요."
"글쎄말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언니를 내게 붙여준 거 같아. 서로 의지하며 살라며"
"그래요. 정말 그러면 좋겠어요."
"이럴 땐 다시 천이가 고마울 뿐이야. 아버지의 아바타로서, 그때 언니에겐 연락해 보라 해서 한 거니까."

"어쨌든 너무 다행이에요. 세상에 내 혈육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외로울 텐데 말이죠."
"그래, 정말 그래. 내가 나이 드나봐. 호호"
"네, 두 분이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내 덕에 다시 만난 누나와 언니
두 자매가 만난다는 얘기를 들으니 내 마음도 무척 푸근해 졌다. 양수리까지 갔다 빈 길을 돌아오면서 만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을 어떻게 사귀고, 또 헤어질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슨 공식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사상의학이나 성격 유형에 따라 남녀를 몇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조합별로 만날 때 유념할 점과 헤어질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같은 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연애상담사 같은 직업이 왜 활성화 안 되는지도 궁금했다. 찾는 사람은 꽤 많을 텐데 말이다. 오늘 나처럼 이 시점에 누나를 보러 가는 게 현명한지 어쩐지... 그러자 심리상담사를 하는 대학 선배가 바로 생각났다. 전에 누나 문제로 한번 상담해 본 적도 있다.

누나와의 결혼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엄마 입장도 헤아려 봤느냐고 반문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그 선배에게 연락했다. 마침 별일 없다고 해서 바로 저녁 약속을 잡았다.

"내가 보기에도 두 사람은 그 정도가 최선인 것 같아."
그동안 누나와의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다 털어놓자 그 선배는 그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그 선배도 거의 같은 의견이었다.
선배는, 더 이상 양평 같은 데 기웃거리지 말고 새 길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새로운 길?"
"그럴 땐 일에 온정신을 쏟거나 새 여자를 만나라고 교과서엔 쓰여 있지."

너무나 힘든 연애를 한 직후라 적어도 이 시점에 후자는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마흔 전에 장가간다는 꿈은 보기 좋게 깨졌지만 사실 서른 아홉과 마흔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인위적인 금이 족쇄가 된다면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게 현명하다 싶었다.
-그래, 그냥 다 잊고 일이나 하자.

결혼을 석 달 앞둔 장팀장은 전과 다름없이 대해줬다.
"결혼해도 회사 나올 거야?"
"글쎄, 그게 고민인데...너라면 어떡하겠어?"
"내게 물으면 답은 뻔하지.사모님은 회사에서 나의 최대 지지자니까. 하하하"
"일하는 건 좋은데, 사장 부부가 같이 출근하면 직원들이 아무래도 불편해 할 거 같아. 그래서 그만두려고."
"장팀장이 집에서 살림만 한다고?"
"일은 차차 다른 걸 찾아야지. 사장님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마련해 주겠대."
은근히 남편 자랑을 하는 장팀장이 부러웠다.

"잘 지내?" 4월에 받은 누나의 메일
시간은 참 잘 간다. 목련꽃 피는 4월 어느날 누나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잘 지내지?
아이들 돌보는 일은 힘들기는 하지만 보람은 있어. 맞춤법은 엉망이라도 글도 곧잘 써. 사실 맞춤법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쉽지 않잖아.

아이들을 보살피다 보면 자연히 애들 엄마들과도 접촉하게 돼. 그새 10여 명 엄마들과 꽤 친해졌어.엄마들 얘기를 들어보면 역시 사는 게 녹록지 않아. 남편의 술과 폭언, 구타로 힘들 게 사는 엄마도 있어. 아이들을 돕기 앞서 엄마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가 불행하고 우울하면 아이들이 웃음을 잃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야. 어른들의 불화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걸 확인한 셈이지.나처럼.

그래서 부탁인데 전에 대학 선배 중에 심리상담하는 분 있다고 했잖아. 그 분 도움을 좀 받았으면 해서. 언제 시간 내서 이쪽으로 올 수 있는지 한번 물어봐 줬으면 좋겠어."

나는 바로 선배에게 연락했다. 선배는 그런 일이라면 기꺼이 봉사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누나 핸드폰과 주소를 그 선배에게 전해줬다. 그 얼마 뒤 선배는 양평을 처음 다녀오는 길이라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린 바로 만났다.

"상담은 아이들 엄마, 아빠도 필요하지만 당장 누나가 더 필요한 것 같았어."
"무슨 소리야..... "

"네가 전에 그랬지? 좀체 웃지 않고 가시돋힌 말도 자주 한다고? 만나보니 전형적인 그런 타입이더군, 상처가 안에서 곪고 있는.... 그래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성격은 좀 좋아진 것 같았어. 엄마들에 대한 연민도 자신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고. 그런데 동남아출신 엄마들을 하녀처럼 대하는 남편들에 대한 분노가 그녀를 다시 병들게 하고 있었어. 얼마 전에는 한 아빠와 만나 한바탕 했다고 하더라고.

'당신 애를 낳아준 여자인데 어떻게 그렇게 막 대할 수 있느냐'고 호통쳤대. 그러자 그 남자가 '당신이 뭔데 지랄이냐'며 탁자를 들러 엎고 하는 바람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대."

그런 얘기를 들으니 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내가 가서 누나를 좀 도와주면 어떨까?"
"헤어졌다고 하지 않았어?"
"누나가 좋은 일을 하는데, 그런 일까지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 모르면 모를까...."

선배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내가 아직도 누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걸 아니까.
4월 마지막 주말에 나는 다시 양평으로 향했다. 저번처럼 미리 알리지 않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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