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외교부 또 대형사고···이번엔 구겨진 태극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1차 한-스페인 전략대화 행사의 의전용 태극기가 많이 구겨져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1차 한-스페인 전략대화 행사의 의전용 태극기가 많이 구겨져 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17층 양자회의실에서 열린 한ㆍ스페인 전략대화에서 의전용 태극기가 구겨진 채로 행사가 진행됐다. 의전용 태극기는 약 160cm 정도로 대형이며, 이날 행사에 사용된 태극기는 약 10cm 정도 너비로 접어서 보관을 했던 탓인지 사선으로 구김이 선명했다. 행사 직전 태극기 상태를 눈치챈 외교부 남성 직원 2명이 급히 손으로 구김을 펴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조현 1차관은 구겨진 태극기 옆에 서서 스페인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외교차관을 맞았다. 상대국인 스페인의 국기는 구김없이 잘 보관된 상태여서 상대국을 향한 외교 결례 논란은 피했다.

구겨진 태극기가 공식 외교 회의장에 등장한 데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태극기는 세탁을 해도 안 되고 보관을 소중히 해야하는 게 상식 아니냐”고 묻자 외교부 당국자는 “총리 훈령에서 세탁은 할 수 있게 돼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가 언급한 총리 훈령은 433호로, “국기가 훼손된 때에는 방치하거나 다른 용도에 사용해서는 안 되며 깨끗하게 소각해야 한다. 때가 묻거나 구겨진 경우에는 국기의 원형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세탁하거나 다려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1차 한-스페인 전략대화 행사의 의전용 태극기가 많이 구겨져 있어 직원이 손으로 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제1차 한-스페인 전략대화 행사의 의전용 태극기가 많이 구겨져 있어 직원이 손으로 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한ㆍ스페인 전략대화는 지난 2월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 이후 열리는 터라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의전용 태극기를 미리 살피지 않고 행사 직전에야 꺼내 뒤늦게 구김을 펴려 한 데 대해선 외교부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뜨겁다. 정부 관계자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국기홍보중앙회 이래원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몰상식한 일이 벌어졌다”며 “이렇게 해이한 정신 상태로 어떻게 나라 일을 한다는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이날 조현 1차관은 한ㆍ스페인 전략대화 모두 발언에서 “중요한 시기에 스페인과 차관급 회담을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고, 발렌수엘라 차관은 “우리가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찾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스페인 측은 주스페인 북한공관 침입 사건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며 “스페인 측은 이 건에 대해 내부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며, 앞으로 이 건과 관련해서 필요할 경우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4일 한-스페인 전략대화가 열린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 양자회의실에 태극기가 구겨져 있다. [뉴스1]

4일 한-스페인 전략대화가 열린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 양자회의실에 태극기가 구겨져 있다. [뉴스1]

외교부는 지난해에는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라고 오기했으며, 지난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 중에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를 해 외교 결례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에 대해 국회 외교ㆍ통일ㆍ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외교부로서는 참 아픈 실수”라며 “외교부 관련 사안에 실수해 우려를 드린 것에 대해 심심한 사죄를 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엔 구겨진 태극기가 등장하는 실수가 노출됨에 따라 기강이 무너진 외교부라는 비판을 자초하게 됐다.

강 장관은 이날 직원 간담회를 열고 “최근 발생한 실수들에 대해 외교 업무 특성상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만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명감과 직업의식을 바탕으로 업무에 빈틈없이 임해달라”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강 장관은 프로페셔널리즘과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해 실무자와 관리자간의 지속적 협의와 소통을 해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