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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문양, 연꽃 문양…가구 품격 높여주는 장석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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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5) 

닦달 망치로 작업중인 원호식(67) 장인. [사진 이정은]

닦달 망치로 작업중인 원호식(67) 장인. [사진 이정은]

원호식(67)장인. 한평생을 오직 장석만 만들면서 살아온 고집쟁이다. 장석은 목가구나 건조물에 장식·개폐용으로 부착하는 금속을 말한다. 세상에 알리지 않고 작업만 하는 자신을 어떻게 찾아 왔냐며 쌀쌀맞게 대하지만 첫인상이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이것도 인연이랄 수 있다. 그는 앞으로 보물이 될지 모를 기물을 오늘도 변함없이 만들고 있는 두석장이다. 두석장은 장석을 만드는 장석 장인을 말한다.

금속공예에 속하는 장석은 목공예와 함께 오랜 역사를 가졌다. 경남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칠기에도 장석이 들어 있다. 장석은 고대에는 실용적인 철재로 만들었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장식성이 우수한 황동제로 제작됐다. 조선 말기 이후부터는 각종 문양이 나오면서 재료도 백동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장석 형태는 이러한 변천사를 거쳤다.

가구 제작의 마지막 화룡점정

작업 중인 원호식 장인. 장석은 두석장의 솜씨에 따라 전체 제품의 가치와 품격에까지 영향을 준다. [사진 이정은]

작업 중인 원호식 장인. 장석은 두석장의 솜씨에 따라 전체 제품의 가치와 품격에까지 영향을 준다. [사진 이정은]

어느 멋진 나전칠기 가구가 탄생하기까지엔 소목장의 노고와 옻칠장의 땀, 나전장이 있고 마지막의 화룡점정은 장석이다. 장석은 두석장의 솜씨에 따라 전체 제품의 가치와 품격에까지 영향을 준다.

전통 목가구는 백동의 장식에 따라 이름이 지어진다. 본래 장석엔 전주, 나주, 남원, 서울, 평양, 강화도, 통영 등 지역 이름이 붙여졌다. 강화반닫이, 나주 반닫이, 언양 반닫이, 남해 반닫이 등이다. 정부는 1980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 통영과 파주에 인간문화재가 있다.

시우쇠. 시우쇠는 무쇠를 불에 달구어 단단하게 만든 쇠붙이의 하나로 대표적으로 두석장이 하는 분야이다. [사진 이정은]

시우쇠. 시우쇠는 무쇠를 불에 달구어 단단하게 만든 쇠붙이의 하나로 대표적으로 두석장이 하는 분야이다. [사진 이정은]

“장석은 철기문화 시대부터 시작했습니다. 시우쇠는 무쇠를 불에 달구어 단단하게 만든 쇠붙이의 하나로, 대표적인 두석장이 하는 분야죠. 나는 금속을 손으로 다루는 것은 모두 할 수 있어요. 그저 50년 세월 동안 이 작업만 해왔어요.”

서울 홍제동에서 태어난 원 장인은 서울 토박이다. 14살부터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학교도 못 다녔지만, 그에겐 장인의 길로 이끌어준 귀한 인연이 있다. 외삼촌 후배인 고 윤희복 장인이 주인공으로, 그의 홍은동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다가 일찍이 독립했다.

원 장인은 홍제동 집에서 일하다 서울 성동구의 작은 지하 공방으로 옮겨 장석 제작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장석을 제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왔다. 지금은 가구 장식보다는 기물을 만들고 있다. 공방을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띈 기물은 절에서 쓰는 풍경이었다. 풍경을 보자 아름다운 소리가 저절로 들리는 듯했다.

중국 수입산에 밀려난 한국 골동품

신주로 된 풍경. [사진 이정은]

신주로 된 풍경. [사진 이정은]

장인의 공방은 보물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오래된 골동품 가게 같았다. “1988년부터 중국에서 골동품이 유입되면서 점점 한국의 골동품에 대한 외국인들의 수요가 급격히 수요가 줄었어요. 50년 이상 된 문화재는 무조건 해외 유출이 안 돼 팔 수도 없죠. 하지만 한국에서 일본이나 중국의 골동품을 사는 것은 허용돼 있어요. 요즘은 장석과 기물은 수요가 거의 없어요. 황동이든 백동이든 만들 재료도 귀해졌습니다.”

어떻게 맥을 이을 것이냐고 물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제자가 2명 있습니다. 꾸준히 한 우물을 파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이 전통 장석 기술을 쓰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으니 이 귀한 것을 누군가가 계승해주면 좋겠어요.”

백동 장석과 신주 장석. [사진 이정은]

백동 장석과 신주 장석. [사진 이정은]

장석의 종류로는 부착하는 물건에 따라 궤장석, 의걸이 장석, 전통장석 등이 있다. 경첩은 장, 농, 왜궤, 문갑, 반닫이 등 문이 달린 가구의 몸체와 문판을 연결해 여닫이 기능을 담당하는 장석이다. 목가구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문에도 같은 역할을 한다. 목가구, 목공예품, 생활용품 및 건축물을 제작할 때 장식적 효과와 실리적 기능을 위해 장석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문을 여닫는 기능, 내용물을 보호하는 잠금장치, 이동을 위한 손잡이 등에 장석이 필요하다.

장석 문양은 나비, 부귀영화, 수복강녕을 상징하는 동식물과 문자 등을 형상화했다. 과거 장석은 그 자체가 완전한 하나의 물품이 되지 못하고 한갓 부품에 지나지 않아 소목장의 주문에 따라 특별 제작됐다. 요즘은 각종 생활 가구에 쓰임새가 많은데, 예술품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수복강녕 장석. 가구의 장석은 자연물의 문양과 문자 모양, 기하학적 문양 등으로 사람들의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수(壽)자와 복(福)자 문양은 오래 살고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소망을 상징한다. [사진 이정은]

수복강녕 장석. 가구의 장석은 자연물의 문양과 문자 모양, 기하학적 문양 등으로 사람들의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수(壽)자와 복(福)자 문양은 오래 살고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소망을 상징한다. [사진 이정은]

가구의 장석은 자연물의 문양과 문자 모양, 기하학적 문양 등으로 사람들의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나비 문양은 사랑과 행복을 상징한다. 연꽃, 국화, 소나무, 모란, 사군자, 복숭아, 버드나무 등 식물 문양도 있다. 수(壽)자와 복(福)자 문양은 오래 살고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소망을 상징한다.

우리 조상은 전통 목가구의 백골(나무가구 골조)에 백동이나 황동 금속판을 붙여 각게수리, 반닫이 등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 장석의 문양은 악귀를 쫓고 복을 염원하는 표상인 셈이다.

골동품을 사랑하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소멸해 가는 옛것의 가치를 쓸모 있게 아름다운 보물로 승화시키는 일은 무척 어렵지만 고귀한 일이다.

이정은 채율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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