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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자마자 닥친 생활고, 50·60 가족까지 파괴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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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추락하는 중산층 <중>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이모(68)씨는 외환위기 이후 사업 실패로 2008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는 가끔 안부만 주고 받는다.[강정현 기자]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이모(68)씨는 외환위기 이후 사업 실패로 2008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는 가끔 안부만 주고 받는다.[강정현 기자]

서울에 사는 이모(60)씨는 14년 전까지 공공기관에 부식을 납품하는 사업을 했다. 밤 12시에 물건을 떼서 납품했다. 일이 힘들었지만 30% 수익이 나 어려운 줄 모르고 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20만~30만원이 남았고, 연 1억원 정도 벌었다. 부자는 아니지만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돈이 모이자 해외 청바지 공장 등에 투자했고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자산이 빠져나갔다. 시골의 부동산을 팔아서 구멍을 메웠지만 한계에 봉착했다. 결국 사업과 투자에 모두 실패했다.
 3년 전 부동산 관련 회사에 취직했다. 200만원 정도 월급에다 상여금이 나왔다. 그런대로 먹고 살았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둬야 했다. 이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게 택시 운전이다. 정식 기사가 아니라 일용직 기사였다. 주로 야간에 운전했다. 월 100만~150만원 벌었고, 한 달에 20일 꼬박 채워 150만원을 벌었다. 12시간 맞교대로 근무하며 건강이 더 나빠졌다. 현재는 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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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는 지금은 직장에 다니는 아들에게 월 100만원씩 받아 생활한다. 그는 "아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학교를 마쳤고 본인이 갚고 있다. 아버지에게 짜증 한 번 안 낸다. 참 고맙다"고 말했다. 100만원 중에서 한 달에 30만원가량 경조사비가 나간다. 이씨는 "부담이 매우 큽니다. 현시점에서 매우 큽니다. 그래도 기본은 해야죠"라고 말했다.
 이씨는 14년 전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아내와 이혼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과거의 곪은 상처가 터졌다. 서로 서운하게 여긴 것들을 쏟아내면서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씨는 먼저 이혼을 제안했고 합의 이혼했다. 그는 친한 친구 몇 명만 만난다. 10여년 동안 네트워크가 점차 줄어들었다.
 “애들 키우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인생 60년 동안 최근 15년에 쓴맛을 다 봤어요. 앞으로 애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살아야 하는데. 하층을 벗어날 수는 없고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목표입니다. 계기가 생긴다면 더 올라가면 좋고요."

급격한 사회변화에 낀세대 고통 #이혼·별거에 사회관계도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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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지난달 심층 인터뷰한 ‘추락한 5060 중산층’ 24명은 가장 큰 어려움의 하나로 ‘관계 단절’을 토로했다. 퇴직이나 실직, 사업 실패 후 어려워지자 가족과 헤어지고, 종전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점점 고립됐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이모(68)씨는 외환위기 이후 사업 실패로 2008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는 가끔 안부만 주고 받는다.[강정현 기자]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이모(68)씨는 외환위기 이후 사업 실패로 2008년 기초수급자가 됐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는 가끔 안부만 주고 받는다.[강정현 기자]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모(68)씨는 외환위기 당시 경영하던 건어물 유통업체가 부도나고 동업자 빚보증 등으로 인해 약 20억원의 재산을 날렸다. 부동산 중개업에 손댔다가 실패했고, 2008년에 기초수급자가 됐다. 이 과정에 이혼했다. 이씨는 “어려울 때는 빚을 갚기 바빴지 가족의 소중함 같은 걸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 숨을 돌렸을 땐 이미 아내·딸과 멀어져 있었다. 서른이 넘은 딸은 아내와 지내지만, 가끔 안부만 주고받는다.

생활비가 쪼들리면 예전의 취미생활은 엄두를 못 낸다. 택시기사 홍모(62)씨는 계단 걷기가 현재 유일한 취미다. 30년 활동한 야구 동호회는 나갈 생각을 못 한다. “직장을 그만두니 돈이 들어가는 취미생활은 엄두가 나지 않더라”며 “이 나이에 돈 쓰지 않고 건강을 챙길 방법은 계단 걷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8년 전 공기업을 퇴직한 김모(65)씨 역시 연봉 9000만원이던 시절과 월 100만원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현재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 김씨는 “아이들이 취업을 못한 상황에서 수입이 급격히 줄어 막막하다”며 “회사 다닐땐 술자리도 많았는데 지금은 아예 술을 끊었다. 건강이 아니라 돈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직 은행원 서모(58)씨도 “회사 다닐 땐 영화·연극·콘서트를 틈만 나면 봤지만 이젠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게 문화생활의 전부”라고 말했다.

김근홍(전 한국노년학회장)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5060세대는 급작스러운 사회변화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후를 맞은 낀 세대”라며 “관계 단절은 우울증이나 치매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5060세대의 삶은 결국 현재 2030세대 노후생활의 바로미터”라며 “노년 중산층을 지원해 국가가 내 미래를 최소한은 보장해 준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젊은 세대의 사회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신성식·이에스더·이승호·김태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수정 : 기사가 나간 뒤 기사의 맨 앞부분에 인용한 퇴직자가 자신의 사례를 제외해달라고 요청해 본지가 취재한 이모씨 사례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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