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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집·옆집에 비밀 '개구멍'···영화 뺨친 수십억 주부도박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빌라 3채에 비밀통로를 만든 도박장 내부 모습. 3층 2채의 벽을 뚫어 만든 통로(왼쪽)와 2층 천장과 3층 바닥을 뚫은 후 사다리를 설치한 모습. [연합뉴스]

빌라 3채에 비밀통로를 만든 도박장 내부 모습. 3층 2채의 벽을 뚫어 만든 통로(왼쪽)와 2층 천장과 3층 바닥을 뚫은 후 사다리를 설치한 모습. [연합뉴스]

빌라 3채에 도박용 ‘비밀통로’

지난달 27일 오후 3시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한 빌라 2층. 2개월에 걸친 잠복 끝에 주택가 도박장을 급습한 경찰관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콘크리트 구조인 베란다 쪽 천장과 3층 바닥 사이에 50㎝ 이상 구멍이 뚫려 있어서다. 지난해 8월 도박장을 개설한 일당이 뚫어놓은 통로에는 3층을 오르내릴 수 있는 철제 사다리도 설치돼 있었다.

[이슈추적] 집 3채 뚫어 연결…외부엔 CCTV #경찰, 업주와 주부 12명 조사 중 #주민신고·국민신문고 제보 속출

벽쪽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3층에 올라선 경찰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옆집과의 베란다 벽 사이에도 50㎝가 넘는 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어서다. 지하층을 포함해 총 6채의 집 가운데 2·3층 3채가 모두 비밀통로로 연결된 것이다. 구멍 난 천장과 벽 모서리에는 이동 중 부상을 막기 위해 문과 나무까지 덧대져 있었다. 이광행 광주 북부경찰서 강력2팀장은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한 명이 간신히 오갈 수 있는 속칭 ‘개구멍’을 만들어놓고 도박을 한 현장”이라고 말했다.

도심 속 빌라들을 미로처럼 연결해놓고 도박을 해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3일 “빌라에서 도박판을 벌인 혐의(도박개장)로 이모(58·여)씨를 구속하고 신모(46·여)씨 등 주부 12명을 입건해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빌라에 차려진 도박장에서 이른바 ‘고스톱’ 도박을 한 혐의다.

빌라 3채에 비밀통로를 만든 도박장 외부 모습. 도박단은 2층과 3층의 베란다 천장과 3층 벽을 뚫어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빌라 3채에 비밀통로를 만든 도박장 외부 모습. 도박단은 2층과 3층의 베란다 천장과 3층 벽을 뚫어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2층 천장·옆집 벽 1m씩 뚫어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7월 빌라 3채를 매입한 뒤 비밀 도박장으로 리모델링했다. 도박장 3곳의 베란다 천장과 벽면을 뚫어 미로처럼 통로로 연결한 것이다. 평범한 주택처럼 꾸며진 도박장 외부에는 감시용 폐쇄회로TV(CCTV)도 설치했다.

공사 당시 이씨는 우선 2층인 202호와 3층 302호 사이의 베란다 천장을 뚫어 계단을 설치했다. 이어 3층인 302호와 301호 사이에는 가로 30㎝·세로 60㎝ 남짓한 벽을 뚫어 집 3채를 모두 통하도록 했다. 공사를 마친 이씨는 주민들이 눈을 피하기 위해 2층과 3층을 각각 가정집과 옷가게로 위장했다.

도박장 개설 등 전과 3범인 이씨의 용의주도함은 도박장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도박장 외관을 완벽하게 위장한 뒤 도박장 업주와 도박자금을 빌려주는 속칭 ‘꽁지’ 역할을 동시에 했다. 도박장을 제공하는 것과 별도로 카드단말기를 이용한 ‘카드깡’을 통해 돈을 빌려준 뒤 높은 이자를 받아 챙겼다.

신씨 등 주부들은 미로 같은 도박장에서 수십억 원대 도박판을 벌였다. 조사 결과 이들은 4명이 한 팀 이뤄 1000만 원이 넘는 판돈을 걸고 고스톱을 쳤다. 주부들은 도박판을 제공한 대가로 이씨에게 판당 42만원을 건네거나 딴 돈의 10%를 수수료로 건넸다.

범죄 일러스트. 중앙포토

범죄 일러스트. 중앙포토

주민 제보·경찰 잠복 끝 ‘꼬리’

7개월간 은밀하게 운영되던 도박판은 주민들의 제보와 경찰의 잠복수사 끝에 꼬리가 밟혔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0월부터 7차례나 주민 신고를 받고도 번번이 허탕을 쳤다. 건물 바깥에 감시용 CCTV가 설치된 데다 비밀통로를 통한 도주로가 사방팔방 뚫려 있어서다. 인근 주민들은 지난 2월에도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려 빌라에서 도박장이 운영되고 있음을 알렸다.

경찰은 제보가 이어지자 잠복수사에 나섰다. 주부들이 실제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현장을 잡기 위해서다. 잠복 결과 40~60대 여성들이 고스톱을 치기 위해 빌라를 드나드는 모습이 수시로 포착됐다. 경찰은 2개월에 걸친 수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달 27일 현장을 급습해 이들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전에 도주로를 차단하고 도박장에 들어가 보니 곳곳에서 화투와 돈뭉치가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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