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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문 대통령이 ‘족보’ 있다는 소주성→“검증 안 된 이론모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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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재인 대통령은 1일 현 정부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소주성)’에 한 번 더 힘을 실어줬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초청 간담회에서 소주성에 대해 “성공하고 있다고 선을 긋듯이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면서도 “고용된 노동자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것은 틀림없는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소주성이란 말은 상당히 세계적으로 족보 있는 이야기”라며 “원래 국제노동기구(ILO)가 오래전부터 임금주도성장을 주창해 왔고, ILO가 주창한 임금주도성장은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주성이 경제학적으로 근거 없는 ‘실험’이란 지적에 대한 반박이다. 소주성 이론의 ‘경제사(史)’적 의미를 들여다봤다.

케인스주의 학자 일부의 이론 #포르투갈 등 실험, 재정위기 초래 #“생산성 향상 없인 성장 불가능”

소주성 이론은 정부가 개입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릴수록 총 수요가 증가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소득 증가→소비 증가→기업 이윤 증가→고용 확대→소득 증가’라는 선순환을 통해 국가 경제가 성장한다고 본다. 현 정부에선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제안했고, 장하성 전 정책실장이 설계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소주성의 ‘족보’를 따지면 일단 경제학계에선 비주류다. 성장보다는 분배에 무게를 둔다. 뿌리는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후기 케인스주의 경제학자 일부가 주장한 ‘임금 주도 성장(Wage-led growth)’ 이론이다. 후기 케인스주의는 ‘큰 정부’를 강조한 케인스주의에 분배 이론을 접목했다.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 등 소수 학자가 이론 모형으로 주장했지만 검증되지 않은 가설로 평가받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평가가 혹독한 이유다.

“생산성 향상 없이 인위적으로 소득만 올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발상은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허구이자 사기다.”(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소득은 생산의 결과물이지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없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분배 차원에서 나름대로 장점을 갖지만 소주성이 경제를 획기적으로 활성화하는 결과(성장)를 가져올 순 없다.”(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문 대통령이 근거로 삼은 ILO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온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ILO는 임금 인상이 총수요를 늘리는 측면만 강조했을 뿐, 총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며 “빈곤 퇴치와 분배 개선을 위해서라면 저소득층 임금 인상을 고려해볼 수 있겠지만 이를 통해 성장을 견인하려는 건 잘못된 기대”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검증되지 않은 실험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에서 실시한 소주성은 생산성 악화와 경쟁력 상실, 마이너스 소득 창출로 이어져 재정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 ‘뉴딜’을 비슷한 성공 사례로 꼽지만,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풀어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춘 뉴딜과 소주성은 결이 다르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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