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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 선수 눈속임도 잡아내는 AI 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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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해 11월 국제체조연맹이 AI 기반의 기계체조 판정시스템 시범 설명회를 열었다. 오른쪽 사진은 AI가 분석한 자료를 보고 있는 맨시티의 스털링, 포든, 다닐루(왼쪽부터). [사진 국제체조연맹, 맨시티]

지난해 11월 국제체조연맹이 AI 기반의 기계체조 판정시스템 시범 설명회를 열었다. 오른쪽 사진은 AI가 분석한 자료를 보고 있는 맨시티의 스털링, 포든, 다닐루(왼쪽부터). [사진 국제체조연맹, 맨시티]

스포츠와 첨단기술의 결합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선수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장비 또는 시스템이 일종의 ‘어시스턴트’였다면, 인공지능(AI) 심판이나 로봇 지도자 등 ‘플레이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도쿄올림픽에 인공지능 심판 검토 #야구 스트라이크 판정에도 활용

1936년 베를린올림픽 당시 펜싱에 전자 채점 장비가 도입됐다. 이를 시작으로 테니스의 호크아이, 태권도의 전자 호구 시스템, 축구의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 등 오심을 막기 위한 장비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AI가 심판 판정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국제체조연맹(FIG)과 일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후지쓰는 2년여에 걸쳐 개발한 AI 기반의 기계체조 판정시스템을 선보였다. FIG는 오는 10월 세계선수권대회 등 다양한 대회에서 시험해 본 뒤 합격점을 받으면 내년 도쿄올림픽에 적용할 방침이다.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준비중인 기계체조 AI 판정시스템. [사진 후지쓰]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준비중인 기계체조 AI 판정시스템. [사진 후지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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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AI 판정 시스템은 2개의 3차원(3D) 레이저 센서가 초당 200만 회의 레이저를 쏴 선수의 움직임을 기록한 뒤, 이를 데이터베이스 자료와 비교해 기술의 성공 여부와 가·감점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시스템 개발사인 후지쓰는 AI가 기계체조 선수 1300여 명의 연기를 머신러닝을 통해 학습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AI는 선수들의 눈속임 동작도 대부분 잡아낼 만큼 정교해졌다. 와타나베 모리나리(일본) FIG 회장은 “2년 전 후지쓰 측과 만났을 때 ‘로봇이 도쿄올림픽에서 심판을 볼 것’이라는 농담으로 시작한 사업”이라면서 “AI가 판정의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올림픽과 월드컵에선 로봇이 경기장 안팎에서 관객 안내, 치안 등의 업무를 수행했는데, 앞으로는 심판 업무까지 맡게 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 초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와 업무 제휴를 하면서 로봇에게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맡기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빅리그 도입 전 독립리그에서 충분히 실험한다는 게 메이저리그의 계산이다. 과학·기술 전문매체인 퓨처리즘은 “AI·로봇 판정이 순조로운 것으로 평가받을 경우, 피겨 스케이팅 등 다른 종목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는 감독의 영역도 넘본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 등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 코칭스태프는 지난 2015년부터 계약한 한 소프트웨어 제휴기업의 도움으로 올 시즌 AI 기술이 가미된 시스템을 활용했다. 특히 이번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 벤치에 전자기기 반입이 허용됨에 따라, 맨시티 코칭스태프 AI가 분석한 선수의 움직임과 컨디션 자료 등을 활용해 전술을 변경하거나 선수를 교체하고 있다. 22년간 아스널(잉글랜드)을 맡았던 아르센 벵거 전 감독은 “로봇이 먼 미래엔 감독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AI가 인간 고유의 영역을 다루고 평가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예술성 평가와 관련해 지적이 많이 나온다. 체조 역사상 최초로 10점 만점 연기를 펼쳤던 나디아 코마네치(루마니아)는 “체조는 복합성이 존재하는 스포츠다. 만약 AI 알고리즘에 없는 연기를 펼치면 어떻게 점수를 줄 건가”라고 반문했다. 해킹 등 사이버 보안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와타나베 회장은 “인간의 장엄함, 리듬감, 감정적 요소는 여전히 평가하기 어렵다. 그래서 AI 심판은 보조 역할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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