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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곳은 인천 흉물, 1곳은 핫플···600m 거리 두 백화점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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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에서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에서 고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프롤로그
#.지난달 15일 오후,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평일이지만 백화점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량 행렬로 인해 인근 도로는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이날 오후 인천 지역에 비가 내리면서 더 많은 인파가 백화점 안으로 몰렸다.
백화점 내 1층 화장품 행사장은 몰려드는 고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볐다. 지난 1월 4일 문을 연 이 매장엔 두 달 동안 200만명이 찾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인천종합터미널과 붙어있는 데다가 지하철역과도 연결된 장점 때문이다. 영업면적 5만 1867㎡(1만 5690평)의 매장엔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까지 입점하면서 지역 쇼핑 명소가 됐다.
이곳에서 만난 한지영(35ㆍ인천)씨는 “최신 브랜드가 속속 입점하면서 지역 내 다른 백화점보다 볼거리가 많고 다양한 식음료 매장이 있어 먹거리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매장도 넓어 쾌적하게 쇼핑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신세계 백화점이었던 롯데 인천터미널점 #인천의 명소였던 인천점의 뒤바뀐 운명

롯데백화점 인천점 1층에서 특가진행을 위한 짐정리가 한창이다.                최연수기자

롯데백화점 인천점 1층에서 특가진행을 위한 짐정리가 한창이다. 최연수기자

#.지난달 14일 오전 11시 롯데백화점 인천점. 철창으로 반쯤 닫힌 롯데백화점 인천점 정문에는 ‘롯데 시네마 인천 정상영업 중’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입구에 들어서니 대여섯개의 세움 간판이 1층에 있는 빈 매장을 가려놓고 엘리베이터 쪽으로만 길을 터놨다. 간혹 영화관을 찾는 고객 때문이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정상영업 중인 7층 롯데시네마 매표소엔 사람이 없었다.  ‘매표소가 아닌 매점에서 티켓을 판매한다’는 안내 문구가 직원을 대신했다. 백화점 1층엔 행사가로 판매할 상품을 나르는 사람들이 오갔다. 행사장을 찾는 손님은 없었다. 미화원 서너명이 손님없는 백화점 주변을 쓸고, 또 닦았다.
인천점 근처에서 핫도그를 판매하는 최모(40)씨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주말에 놀러 나온 젊은 친구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많지만, 백화점 근처 작은 가게들은 영업타격이 크다”고 했다.

롯데 인천터미널점이 아직 신세계 백화점이던 시절 모습.                     [중앙포토]

롯데 인천터미널점이 아직 신세계 백화점이던 시절 모습. [중앙포토]

◇ 과거
#. 인천터미널점의 오픈은 유통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 백화점업계 양대 산맥인 롯데와 신세계가 해당 부지와 건물을 두고 수년간 자존심을 건 법정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자리였다. 신세계는 인천시와 계약을 통해 백화점 자리를 2017년까지 20년 임차하는 계약을 맺고 1997년부터 영업을 해왔다. 인천 핵심 상권에 자리 잡은 이 매장은 연 매출 6000억원 이상을 기록하며 신세계 효자 점포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인천시가 2012년 9월 터미널 부지를 통째로 롯데에 9000억원에 팔면서 문제가 커졌다.
유통업계는 신세계 측이 기존 터미널점 임대계약 연장을 낙관했지만, 인천아시안게임 유치로 적자에 허덕이던 인천시가 갑자기 롯데에 터미널 부지를 넘긴 것이라고 분석한다. 롯데는 2013년 4월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치면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세입자인 신세계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집주인이 인천시에서 최대 경쟁자, 롯데가 된 것이다. 신세계는 법원에 인천시와 롯데의 터미널 부지 매매계약이 무효라며 소유권 이전 등기 말소 소송까지 냈다. 하지만 대법원이 2017년 11월 롯데의 손을 들어주면서 분쟁은 일단락됐다.
이후 신세계는 바뀐 집주인 롯데에 매달 임대료 10억원을 냈다. 지난해 12월 영업종료까지 낸 임대료 680억원은 롯데가 인천터미널점 인수를 위해 빌린 돈의 이자와 맞먹는 수준이다.

14일 오후 12시 영업종료한 롯데백화점 인천점의 모습. 최연수기자

14일 오후 12시 영업종료한 롯데백화점 인천점의 모습. 최연수기자

#. 인천점은 2002년 8월 23일 문을 열었다. 인천 구월동 로데오 거리에 있는 인천점은 이 지역 주민에게 만남의 광장으로 통했다. 4년간 로데오거리에서 사주 카페를 해온 전모(63)씨는 “2년 전만 해도 연말이면 젊은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왔었다”며 “인천 로데오거리는 서울의 명동과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롯데쇼핑이 인천터미널점을 손에 넣으며 인천 로데오의 전성기도 끝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 롯데가 신세계 인천점 인수로 이 지역에서 롯데백화점 점유율이 50% 이상으로 상승했다며 인천 및 부천 지역 2개 점포를 기존 백화점 용도로 매각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렸다. 2017년 롯데와 신세계의 법적 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롯데백화점은 4년 넘게 인천점 매각에 손을 놓고 시간만 보냈다.
그러다 인천터미널점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부랴부랴 매각에 나섰다. 올해 5월 19일까지 인천점을 매각하지 못하면 롯데는 이행강제금을 내야 할 처지에 몰린다.
인천점은 지난 2월 28일 영업 종료로 본사 소속 직원의 승계 작업이 이어졌다. 브랜드 점주와는 계약 해지 합의서가 작성됐다. 인천점에서 근무하는 직원 가운데 일부는 실업 급여나 퇴직금과 같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며 하소연했다. 롯데백화점 인천점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졌다”며 “각자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났지만 수년간 일했던 직장이 문을 닫았다는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인천점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롯데 신동빈회장이 12일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과 롯데마트 인천터미널점을 방문해 영업현장을 점검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신 회장(왼쪽)이 롯데백화점 강희태 대표(오른쪽)와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의 매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 롯데그룹]

롯데 신동빈회장이 12일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과 롯데마트 인천터미널점을 방문해 영업현장을 점검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신 회장(왼쪽)이 롯데백화점 강희태 대표(오른쪽)와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의 매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 롯데그룹]

◇현재
# 인천터미널점은 오픈 이후 지난 1~2월 월평균 매출이 700억원 안팎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이런 추세라면 연 매출 1조원 기록도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유통업계는 전망한다.
전국 30개 롯데백화점 점포 가운데 인천터미널점은 오픈 직후 본점, 잠실점, 부산 본점에 이어 매출 4위 자리에 단숨에 올라. 롯데는 인천터미널점에 그룹 차원의 지원사격도 하고 있다.
 지난 1월 12일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복귀 후 처음 현장경영에 나선 곳도 인천터미널점이다. 당시 신 회장은 현장직원에게 “고객을 위한 편안한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최상의 쇼핑환경을 구현하는 데 힘써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인천터미널점 김선민 점장은 “오는 5월 리뉴얼한 푸드코트와 식품매장 개장을 시작으로 상품기획 구성도 순차적으로 진행해 인천 지역 대표 백화점 자리에 오를 것”이라며 “3000억원을 투자해 기존 인천터미널 리뉴얼이 완료되면 인천터미널점은 인천의 새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롯데 백화점 인천점의 맞은편 거리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이 없이 텅빈 모습이다. 최연수기자

롯데 백화점 인천점의 맞은편 거리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이 없이 텅빈 모습이다. 최연수기자

#. 인천점은 최근 10차례의 공개매각과 33차례에 걸친 개별업체 접촉에도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천점의 감정평가액을 50% 수준까지 낮춰 2299억원에 시장에 나왔지만, 응찰자가 없었다.
롯데쇼핑은 2017년부터 10차례에 걸쳐 인천점과 부평점 공개매각을 추진하며 30여 개 업체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부평점(632억원)은 상황이 낫다. 부평구청이 이곳을 매입해 일자리와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인천점의 영업종료를 보여주는 안내판의 모습. 최연수기자

롯데백화점 인천점의 영업종료를 보여주는 안내판의 모습. 최연수기자

지난 2월 28일부로 영업을 종료한 뒤 인천점은 텅 빈 상태다. 지난해 11월부터 롯데백화점 인천점 바로 앞에서 붕어빵을 파는 김모(67)씨는 “인천점에 백화점이 아니면 못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백화점보다 싼 물건을 들여오면 사람들이 찾아줄 것 같은데 나라에서 규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힘들다는데 어떻게 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지금 롯데가 빠진 지한 달밖에 안 되어서 버티는 중이지만 앞으로의 일을 알 수가 없어서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인천점이 종료된 이후 김씨의 노점 매출은 반 토막이 났다.
인천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60억원에 불과하다. 반값에 내놓아도 임자를 찾지 못한 핵심 이유다. 백화점 용도로만 매각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어 당분간 팔릴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러는 동안 인천점은 조용히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롯데 백화점 인천점 문앞에 걸려져있는 현수막에는 '롯데 시네마 인천 정상영업중'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최연수 기자

롯데 백화점 인천점 문앞에 걸려져있는 현수막에는 '롯데 시네마 인천 정상영업중'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최연수 기자

 ◇에필로그
도보 5분 거리의 두 백화점은 서로 다른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롯데는 인천터미널점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넣었지만, 인천점이 5월 19일까지 매매 완료되지 않으면 하루 1억 3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롯데가 또 다른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외관.                                [사진 롯데쇼핑]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 외관. [사진 롯데쇼핑]

롯데의 욕심이 지나쳤다는 뒷말도 나온다. 신세계와 싸우면서 무리하게 인천터미널점을 인수해 상권을 흔들었고 이 과정에서 인천점 매각 타이밍도 놓쳤다는 비판이다.
열쇠는 공정위가 쥐고 있다. 백화점으로 운영할 매수자가 나오면 최상이다. 문제는 이를 기다리는 동안 망가지는 상권과 애꿎은 사람들이 입는 피해다. 백화점에서 다른 시설로 용도 변경을 하면 매수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게 유통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롯데 측도 은근히 이를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매각 자산을 백화점 이외 용도로 이용하는 것을 허용할지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인천= 곽재민ㆍ최연수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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